북한의 핵 문제는 첫 번째 핵 실험 이후 본질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국이 싫든 좋든 이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협상의 대전제로 삼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북미 양국이 각각 관철시키려는 협상 의제의 순위에도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들의 협상 전략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이 여섯 차례의 핵 실험과 무수한 미사일 발사 시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북미 협상의 테이블에는 새로운 우선순위와 의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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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략은 ‘미국으로부터의 안전 보장’이라는 명료한 목적 아래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군사력의 강화, 다시 말해 핵을 개발해서 미국의 군사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억지력과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경로인 외교는 미국과의 반목을 줄이는 동시에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서의 안전 보장을 추구한다. 우선 한국 전쟁 말미에 체결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여 전쟁을 종식하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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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조건 없는 대화로 선회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지미 카터에게 있었다. 그 스스로가 주한 미군의 철수 계획과 공산 국가와의 수교 의사 등을 밝혔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굳이 이를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977년 1월 카터의 취임식이 열리던 날, 김일성은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부토 총리를 통해 카터의 주한 미군 철수 결정을 환영하며, 북미 대화가 하루속히 개최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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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대북 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시도가 다시 시작됐다. 1988년 10월 31일 레이건 행정부는 북미 접촉의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대북 온건책’을 발표했다. 미국이, 그것도 지극히 반공주의자로 알려진 레이건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유화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원인과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 그의 투철한 반공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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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과 북한은 베이징에서만 모두 열여덟 차례의 대화를 가졌다. 그럼에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관심과 주목은 물론이고, 그토록 원하던 대화와 정권의 안정을 보장할 일련의 정치적 담보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증거로서 받아낸 일련의 합의서들이 북한 정권의 안정을 완벽히 보장해 줄 순 없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통해 핵이 북미 대화를 견인해 낼 주요한 매개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나아가 미국과의 ‘성공적인’ 흥정을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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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만든 폭력과 위험의 발전과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교역 대상은 이미 중동을 비롯한 분쟁 지역과 하마스, 헤즈볼라 같은 무장 단체로까지 확장되었으며, 그 규모와 영향 역시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2012년 1월 유엔 안보리의 콩고 조사 위원회는 유입된 3,400톤의 북한산 무기 중 상당량이 반군과 인근 국가로 흘러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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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능화에는 크게 ‘높은 수준’과 ‘낮은 수준’의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이른바 ‘높은 수준’의 불능화는 핵 시설에서 핵심 부품을 분리한 뒤 ‘파괴’하는 것이다. 반면 ‘낮은 수준’은 핵 시설에서 핵심 부품을 분리한 뒤 이를 ‘북한 내에 보관’하는 것이다. 미국이 처음부터 요구한 것은 사실상의 핵 시설 폐기를 의미하는 ‘높은 수준’의 불능화였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들이 얻어낸 것은 ‘낮은 수준’의 불능화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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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이라니, 무슨 개방을 말하는 거요? … 먼저 이 용어의 의미부터 제대로 정의해야 할 거요. 왜냐하면 개방은 나라마다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오. 우리는 서구식의 개방을 수용할 수는 없소. 개방이 우리의 전통을 훼손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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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붕괴론에 대한 확신은 1990년대 중반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1995년 말 스탠리 로스 국가 안전 보장 회의 특보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맥락에서 수립되었다”라고 발언했다. 1996년 3월 미 하원 국가안보위원회에서 게리 럭 주한 미군 사령관 역시 북한의 심각한 경제 상황과 식량난을 볼 때 “문제는 북한의 붕괴 여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붕괴하는가, 즉 내부로부터의 붕괴인가, 외부로부터의 붕괴인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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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로 접어들면서 미국은 북한 붕괴론에 정권 교체를 가미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북한 정권이 경제 제재 등의 압박으로 자연스레 교체될 것을 희망했으나, 북한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었다. 그러자 미국 내부에서는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2003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전문가들은 학술적 담론 차원에서 북한 정권의 교체 구상을 분석해 소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른바 정권 교체와 정권 변화를 둘러싼 두 개의 학파가 부상하여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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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의 제재 의지가 견고해지면서 페리 국방 장관은 군사 수단의 필연성을 역설했다. 1994년 6월 10일 페리 장관은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모에서 이제는 핵 위기의 엔드 게임을 고려할 때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옵션을 군사적 준비, 즉 선제타격에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의 점진적 또는 갑작스러운 붕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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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간에 격한 설전도 벌어졌다. 9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은 보다시피 사람을 아사시키거나 사형시키는 미친놈”이라며 “겪어 보지 못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트위터 글을 남겼다. 다음날 북한의 리용호 외교 부장은 유엔 총회 연설 도중 트럼프를 “악마 대통령”이라고 묘사했다. 그러자 즉각 트럼프의 답변이 날아들었다. “방금 북한 외교 부장이 유엔에서 연설했다고 들었다. 그가 ‘꼬맹이 로켓 맨’을 대변한다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도 미국도 모두가 노골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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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중국 주석은 1994년 3월 28일 김영삼 대통령과의 베이징 회담에서 대북 압박이나 제재를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금 분명히 피력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중국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았고, 결국 미국과 절충안을 찾는 쪽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즉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 반대가 아닌 기권표를 던지는 대신에 미국이 작성한 결의안을 안보리 의장 성명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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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만난 자리에서 폼페이오가 던진 첫 질문은 그의 비핵화 의지였다. 한국 정부를 통해 전한 비핵화 약속이 진심인지 미국은 확답이 필요했다. 이에 김정은은 “난 아버지요. 나는 내 아이들이 핵무기를 평생 안고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스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두 사람은 양국 모두 긴장 국면이 상승하길 원치 않음을 확인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인식이 일치한 것이다. 이는 북한과 미국 두 나라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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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우드워드 편집장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자마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회고했다. 회담장에서 그가 “하나로는 안 되오, 두 개도, 세 개도, 네 개도 도움이 안 되오. (폐기 대상 시설이) 다섯 개 모두여야 하오”라고 밀어붙이자, 김정은은 영변의 시설이 제일 크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설의 규모가 아니었던 트럼프는 “그게 제일 오래된 시설이란 건 이미 알고 있소. 사실 난 모든 시설을 다 알고 있소. 당신이 아는 미국 측 인사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단 말이오”라고 상대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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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발버둥(핵과 미사일 시험)을 치면 칠수록 결국 제재라는 늪에 더 깊이 빠지고 있다. 북한 스스로가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드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북한은 단번에 비핵화 합의를 완성하겠다는 꿈을 버려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단방에 해결할 수 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사라졌다. 대북 제재의 실타래는 북한의 자충수로 더 엉켜버렸고, 실마리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더욱이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이미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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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목표와 의제는 협상 대상의 대내외적 여건과 국제 정세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제적 궁핍에 허덕이던 핵 개발 초기 단계의 북한이 추구했던 전략 목표는 핵무기의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린 지금의 목표와 절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는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능동적이고도 유연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때로는 국민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확고부동한 최종 목표와 강한 목적의식, 원칙만 있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견 모순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외교 행위를 납득할 것이다. 죽은 듯 굳어버린 몸과 머리로는 결코 살아서 펄떡이는 외교를 쟁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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