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9세기 신학은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구획지어진 19세기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799년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출판으로부터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는 기간의 신학을 의미한다. 이는 형식과 내용, 특히 신학 방법론에서 그 전과 후의 정통주의 및 신정통주의 신학과 뚜렷이 구분된다. 이러한 19세기 신학은 여러 부류로 세분될 수 있으나, 구라파 특히 독일 신학계를 주도한 신학 사조를 흔히 자유주의 신학, 신개신교 신학, 혹은 현대주의 신학이라 한다. 이것은 1920년대가지 유럽 신학계를, 그리고 1930년대까지 미국 신학계를 주도?다.
자유주의 혹은 현대주의 그 안에 다양한 입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을 정확히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의미는 "제한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사상 체계나 입장을 절대시하거나 그것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 정신은 개방된 마음, 관용, 진리에 대한 겸허하고 헌신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19세기의 모든 사상, 즉 종교를 비롯한 과학, 철학, 경제, 정치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종교적 자유주의는 현대의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시대 정신에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하거나 재진술함으로써 기독교를 변호하려는 노력이었다. 10세기 들어 개신교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문제 제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현대에서 종교가 어떻게 가능하며 기독교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였다. 이것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 자유주의 신학이며 종교와 신학의 가능성 문제, 그리스도론의 가능성 문제 및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 문제가 그 주 관심사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어느 특정 신앙 고백이나 신조에 종속되지 않고 종교 개혁 신앙을 그 시대에 적절하고 타당하게 만들려고 한 시도였다. 그러나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경험이나 정황(Context)에 둠으로써 인간 중심적 신학이 되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자유주의 신학이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일어났는지, 무엇을 주장하며, 어떻게 발견하고 쇠퇴했는지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는 무엇인지를 해명함으로써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Ⅰ.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적 배경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자유주의 신학이 출현하게 된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자유주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어떠한 배경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내용 자체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 정신에 대한 개신교의 응답인 동시에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개신교는 18세기 에 여러 측면으로 변화를 겪었다. 정치적으로는 100년 전쟁, 영국 시민 전쟁,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 전쟁과 같은 수많은 갈등과 투쟁이 일어났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가 출현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산업 혁명이 일어났으며 사회 계급이 발생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신념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도전에 대응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와 조화하여 또는 계몽주의의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하려 했다. 계몽주의는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 전성기를 누리며 전 유럽 사상의 주류를 형성했던 자조로서 개인의 자유와 이성의 능력을 무한히 신뢰하고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 외에도 경건주의와 19세기 초의 독일 낭만주의가 자유주의 신학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며 자유주의 신학이 성장하고 발육한 토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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