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층적 수준에서 바라본 한국인의 마음결은 각양각색이다. 심지가 곧은 것 같으면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냄비 근성’을 자주 드러내며, 전통적이되 전통과 무관한 원조元祖 만들기에 열심이며, 한을 흥으로 전환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가부장적 굴레하에서도 여성의 힘이 고조되는 역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가 하면, 도전적이지만 동시에 자포자기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많다. 또 혼인이나 출산에 연연하면서도 가정에 냉담한 사람들이 많고, 순응적이되 변혁에 투신하는 경우도 많으며, 명분을 따지다가도 실리에 연연하는 실로 다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p.15
한국인에게 “당신은 일중독자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반수 이상이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루 여덟 시간을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게임 중독자이지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화를 내며 “아니요!”라고 외치지만,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는 사람에게 “당신 일 중독이지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빙긋 웃으며 기꺼이 대답한다. “네, 전 일중독자인가 봐요.”(…)
우리에게 일이란 이렇듯 일상적 삶의 전반에 편재되어 ‘경계와 범주화로부터의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우리는 현실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기 전에, 일과 삶의 구분부터 선결해야 한다. 그래야 일중독을 논할 수 있는,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형성할 수 있다.--- p.57
한국인들은 자기를 일차적인 참조 대상으로 하는 자부심 같은 자기중심적 정서보다는 관계 속의 타인을 일차적인 참조대상으로 하는 공감 등의 타인 중심적 정서에 더 민감하다. 또한 한국의 문화권에서 ‘나’와 ‘너’는 ‘우리’라는 정情의 공간 속에서 분리된 존재가 아닌 하나의 단위로 여겨진다. (…)
한국인의 사회적 행동의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강하고 상대에게 이를 확인시키려는 동기와 목적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동기가 바로 타인 지향적 동기다. 한국인들이 흔히 보이는 의례적인 언행, 체면치레, 같은 편임을 확인시키려는 행동, 응석, 자기 비하적 겸손, 눈치 보기 등은 모두 이러한 타인 지향적 동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추론해 볼 수 있다.--- p.164
직장에 다니는 것이 여성들에게 가사 책임을 면제시켜 주지는 못했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든 다니지 않는 여성이든 결혼 결정에 즈음하여 가사노동과 멀리 않은 장래에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걱정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는 여성은 퇴근 후에 다시 가정으로 출근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 번째 근무’(the second shift)라고 이름 붙인 알리 혹실드는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의 참여가 아직 저조한 현실을 “지체된 혁명”(stalled revolusiton)이라고 꼬집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들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출산을 미루거나 자녀수를 줄이는 것, 또는 결혼 자체를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p.248
한국의 사회·역사적 조건은 인권 의식이 성장하기에 비교적 불리한 상태였으나, 민주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권 의식이 성장하고 개인주의 성향의 신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의 인권 의식은 꾸준히 향상되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안보, 안전, 정보화 사회의 편리함에 인권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성 소수자나 외국인의 인권에 대한 낮은 의식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차별에 대한 인권 의식 수준이 꾸준히 향상되어 왔으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p.384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까? 일리노이 대학교 심리학과의 애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2010년 한국심리학회의 국제 학술 대회에서 한국인이 불행한 주요한 원인으로 세 가지를 언급했다. 그중 첫 번째로 뽑은 것이 한국인들의 높은 물질주의 성향이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물질적인 것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물질을 획득하려는 노력에만 몰두할 경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나 취미 활동을 한다든지,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활동들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극단적인 물질 추구는 공중도덕, 긍정적인 인간관계, 공동체의식 등 많은 개인들의 노력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들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pp.429-430
몇 차례의 경제 위기로 인한 상처는 우리 한국인의 도전 효능감을 축소시켰다. 한국인들은 과거에는 거침없는 도전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는 그 자신감을 위축시켰다. 이 도전의 효능감을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과거의 도전 효능감이 ‘무작정, 무조건, 닥치고’식의 것이었다면 미래의 도전 효능감은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현황을 정확히 분석·평가하고 합리적 전략에 기초한 발전된 효능감이어야 할 것이다. 부모 세대는 이런 새로운 개념의 도전 효능감을 원초적으로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정성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젊은이의 도전 효능감은 달라야 한다.--- pp.508-509
개인이 자기 몸을 지각하고 관계 맺는 방식, 타인의 몸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방식은 그 몸들이 존재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나아가 우리가 우리 몸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시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외모 낙인이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는 편협한 외모 기준에 벗어난 많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개인의 자아존중감이 객관적인 몸 상태보다는 주관적인 외모 만족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외모 규범 일탈자로 낙인찍힌 자들은 우울증과 자존감 하락을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차원에서도 불필요한 외모 낙인을 조장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감시 등 외모 차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 p.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