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욕망, 그 탐욕의 다스림을 위한 스포츠
오랜 기다림을 통한 내적 치유의 세계, 낚시
유혹과 몰입의 기술 『낚시』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된 이후, 한국 비평계의 선두에 서서 섬려하고 고유한 미적 감식안으로 문학과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궁구하는 작업을 해왔던 문학평론이자,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낚시광 전영태 교수의 신작 에세이다.
전영태 교수는 전국을 누비며 낚시를 다니느라 처음 구입한 새 차를 3년 만에 폐차할 만큼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낚시광이다. 이때 그가 3년 동안 기록한 거리는 20만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문학평론가로서나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게을렀던 것도 아니다. 저자는 낚싯대만 잡으면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며칠을 꼬박 새우곤 하지만, 하나의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짚어내고자 몇 날 며칠을 책상에 앉아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며 지난 십수 년간 문학평론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물고기를 낚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는 것이 낚시라면, 평론이 하나의 텍스트 안에 갇혀 있는 파편화된 수많은 문장의 연결고리와 그 고유의 의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끄집어내기 위한 오랜 인고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 둘을 상당 부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낚시를 대표하는 집중력과 인내가 단순히 자신의 직업적인 부분에서 뿐만이 아니라, 과도한 경쟁과 대립이 난무하는 무한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느껴야만 하는 실패와 좌절, 분노를 적절히 다스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집중력과 인내는 우리 삶의 비루한 현실을 극복하는 요소로서, 인간의 욕망을 적절히 다스리는 정신력을 함양시켜준다.
이 책에는 그동안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 문학이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왕성한 욕구는 잠시 누르고, 낚시꾼으로서의 삶과 그 삶이 추구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경쟁과 대립으로 점철된 우리 인생의 고달픔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시대의 낚시꾼 전영태 교수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탐욕은 멸종을 초래한다
16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브뢰겔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가장 추악한 속성인 탐욕의 끝을 과장적으로 묘사했다.
그림을 보면 탐욕스러운 큰 물고기의 배와 입에서 무수한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부 두 명은 도끼와 칼을 이용해 조금 큰 물고기 배에서 작은 물고기를 꺼낸다. 또 다른 어부는 작은 물고기를 미끼로 큰 물고기를 낚으려고 하고, 물속의 큰 물고기들은 쏟아진 물고기 중의 한 마리를 물고 있거나 삼키는 상태에서 머리를 돌리고 있다. 들짐승도, 새들도 포식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 삼지창으로 찌르고 거대한 톱으로 배를 가르는, 물고기 해체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몇 마리 물고기는 건조를 위해 나뭇가지에 매달려지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은 탐욕스러운 존재라는 것이 브뢰겔의 메시지인 듯하다.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흔히 자기 자신은 탐욕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악평이 난 사람들조차 자신의 욕심은 적당한 수준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면서도 좀처럼 내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욕망, 그것이 바로 탐욕의 본질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소문난 낚시광인 저자는 미술과 음악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자랑할 만큼 박학다식한 면모를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 물고기를 소재로 한 다양한 국내외 명화를 함께 수록하여 물고기와 낚시꾼의 삶을 동서양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표현해 왔는지, 생계를 위한 낚시와 취미를 위한 낚시의 변모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브뢰겔의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와 같은 그림을 통해 낚시와 물고기를 소재로 탐욕스러운 인간군상을 풍자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예로 들어 욕망과 탐욕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 삶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낚시는 유혹의 기술이다
낚시는 힘과 힘의 대결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략과 지력의 대결 또한 아니다. 낚시는 유혹의 기술이다. 낚시꾼은 낚싯바늘에 미끼를 걸어두고 물고기가 입질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유혹을 한다. 미끼를 사이에 두고 물고기와 낚시꾼이 벌이는 대결은 오랜 인내를 견뎌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이다. 그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진 낚시꾼은 영민한 물고기에 미끼를 헌납하게 되고, 당장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물고기는 미끼 속에 숨겨진 낚싯바늘에 걸려 낚이고 만다.
물고기가 미끼를 문다고 해서 바로 낚시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낚싯대가 커다랗게 휘어질 만큼 힘과 힘의 대결이 시작되고, 줄이 풀리면서 다시 물고기다 달음질을 치고, 다시 줄을 감아 물고기를 제압하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된다. 이 과정은 미끼를 문 물고기의 몸체가 크면 클수록 더욱 여러 번 반복된다. 수면을 가르며 요동치는 물고기가 눈앞에 보인다고 해서 단숨에 끌어당기면 줄이 끊어진 낚싯대를 들고 황량한 수면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렇듯 낚시는 유혹과 그 유혹을 뿌리치는 행위의 무한 반복이다.
저자는 한 마리 물고기를 낚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며 우리의 삶이 이것과 많이 닮아 있음을 시인한다. 경쟁과 대립의 구도 속에서 늘 힘과 힘의 대결에 편승하는 우리 삶의 치열함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그것이 가지고 오는 결과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