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뜻을 정하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자녀를 위해 매일 눈물로 기도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정말 자신이 없다면 30분만이라도 기도하십시오. 그 기도가 매달 천만 원짜리 과외를 시키는 것보다 자녀의 영혼과 범사에 더욱 유익할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은 다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믿음의 선배이지요. 포로 신분의 다니엘이 왕이 준 귀한 음식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이 주는 진미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신앙 양심상 도저히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믿음의 대선배인 다니엘은 이방 우상에게 절한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리라고 뜻을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왕의 성찬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을 보시고 그에게 큰 사랑과 복과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지혜와 총명을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중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 수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 되려고 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느냐?"
제 동생 경한이는 의사입니다.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임상훈련을 쌓았습니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의사도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느라 밤잠을 못자는데 하물며 영혼의 병을 고치고 돌볼 목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목회자가 되려면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총신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왜 열심히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는 충분합니다.
--- pp 81~82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좀더 넓은 아파트에 살고 고속 승진하도록 돕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아이가 대학시험에 합격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가진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주는 대상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피조된 이유는 하나님을 평생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내 삶을 향유하기 위해 지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라고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 p.86
암기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제가 실제로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가르쳐보는 것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설명하고 가르쳐야 한다면 저는 먼저 그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선 빈 강의실을 찾아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오늘 배운 내용을 칠판에 적어가며 차근차근 강의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하지만 자꾸 해보면 제가 모르는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계속 생각하게 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학생의 입장과 선생님의 입장에서 동시에 그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프리젠테이션 방식의 수업이 많습니다. 어떤 책을 자기가 충분히 숙지한 다음 그것을 다수 앞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본인의 실력 향상에도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부분 이것을 싫어하지요. 앞에 나가서 발표하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아니면 안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부러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발표를 자원해놓으면 그때부터는 공부를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겁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수업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이 포르노에 중독되어 부모님 몰래 보는 것을 부모님들이 어떻게 일일이 쫓아다니며 막을 수 있겠습니까? 혹 집에 있는 컴퓨터를 치운다고 합시다. 그렇더라도 PC방이나 친구의 집에서 보는 것을 어떻게 다 막을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동거 사이트가 판을 치고 있고, 대학생들이 섹스를 위해 동거를 일삼는다 하더라도 지방에 계신 학부형들이 어떻게 다 알고 예방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과연 안전지대가 있습니까?
저 역시 청소년 시기를 보내면서 많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저라고 왜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민감한 시기이니만큼 유혹이 많고 죄 지을 상황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쉽게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새벽기도하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습이 꼭 눈앞에서 아른거렸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뻔하다가 돌아선 적이 많았습니다.
크리스천 학부형들도 부디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철저하게 양육하겠다는 원칙을 세우시기를 강권합니다.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만이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녀가 잘 때 자녀의 이마에 손을 얹고 눈물로 기도해주십시오. (...) 영적 권위는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권위는 하나님께서 부모님들에게 준 특별한 선물입니다. (...) 더이상 말로 하는 훈계는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에 적어도 한두 시간 이상씩 텔레비전을 보시죠? 그런 학부형들이 자녀를 위해 눈물 뿌리며 기도하는 시간은 십 분도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녀들에게 영적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9시 뉴스 보고, '여인천하'니 '상도' 같은 드라마를 보면 두 시간은 쉽게 지나갑니다. 그 시간에 털레비전을 보지 않고 자녀를 위해 골방에서 기도해 보십시오. 자녀들은 곧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신뢰를 부모님께 보일 것입니다.
--- pp 117~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