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기다릴게.”
“응. 금방 갈게. 뛰어갈게.”
어릴 적,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지막 장면은 그저 설레었다. 마코토와 치아키는 서로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지만, 애틋한 말 한마디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다. “내가 왜 이러지?”라고 말하며 울음을 참지 못한 채 힘껏 우는 마코토를 보고 마음이 아파질 찰나에, 치아키가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서 마코토를 붙잡는다. 둘의 얼굴이 겹쳐질 때까지 가까이 다가가서 “미래에서 기다릴게”라고 속삭이는 치아키의 대사는 설레기에 충분했다.
긴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마지막 장면을 봤을 때는 “응. 금방 갈게. 뛰어갈게”라고 말하는 마코토의 대답이 더 마음에 남았다.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모든 것이 모호한 미래에도 치아키에 대한 마음은 확신할 수 있었던 거니까.
--- p.4, 「프롤로그」 중에서
만나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바쁘지만, 그러다가도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에 잠시 멈춰 서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겹쳐져 있던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커다란 행복이 아니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음 짓고, 가끔 멈춰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기를. 그 정도의 소소한 행복이 곁에 있기를.
--- p.32, 「이제는 다른 모양이 된 우리」 중에서
하지만 내가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스스로 인정한 순간 감정은 빠르게 커져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생각났던 게, 그가 무얼 하고 있을지 혼자 그려보던 게, 만날 시간이 다가오면 조금씩 가슴이 뛰던 게, 이따금 그가 꿈에도 나오던 게. 그게 다 사랑으로 수렴되는 것을 느꼈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는 마음을 몽땅 털어놓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던 그때. 그저 벅차기만 해서 어찌할 줄 몰라 허둥거리던 그때.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시큰해져 자주 울고, 그러다가도 너무 쉽게 웃었다.
--- p.48, 「모든 게 처음이었어」 중에서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생각이 많아 시작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는 누군가를 놓치고서야 마음을 깨달았던 적이 많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자주 길고 굵은 선을 하나 그어놓고 상대를 하염없이 바라봤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친 그 사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나버리면 쉽게 섭섭해했다. 그리고는 네 마음이 겨우 그 정도였냐고, 따지고 싶었다. 정작 나는 한 걸음도 떼지 못했으면서,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으면서, 바라보기만 했으면서.
--- p.70, 「마음을 모른 척했어」 중에서
억지 부리는 나를 보며 한 번 더 참아줄 때,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
귀엽다는 말을 참지 못하고 툭 내뱉을 때,
그러면서 아주 크게 웃을 때,
내가 해달라고 하면 해주려고 할 때,
고쳐달라고 하는 건 고치려 노력할 때,
먼저 손 내밀어줄 때,
함께할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때,
매 순간 나를 사랑한다는 걸 눈으로 말할 때.
--- p.123, 「너의 행동이 모두 사랑일 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