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홀연 재즈라는 음악에 매료되어 그 이후 인생의 대부분을 이 음악과 함께하였다. 내게 음악이란 아주 소중한 것인데 그 중에서도 재즈는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때는 그것을 생업으로 삼았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 탓에 재즈에 관해 새삼스럽게 글을 쓰기가 망설여졌다. 너무 밀착되어 있어 무슨 말부터 쓰면 좋을지, 어디까지 쓰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와다 마코토 씨가 그린 재즈 뮤지션의 그림을 몇 장 보고는 '으음, 이런 식이면 뭐라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다 씨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뮤지션에 배어 있는 고유한 멜로디 같은 것이 내 머리에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생각을 그대로 문장으로 바꾸어놓기만 해도 족할 듯하였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즐겁게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경우 '우선 그림이 있고', 내가 거기다 문장을 덧붙이는 작업 순서가 매우 적절했던 것이다.
특히 나는 와다 씨의 그 선별력에 감탄하였다. 정말 재즈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렇게 스물여섯 명이 선별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도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였다. 소니 롤린스나 존 콜트레인은 없지만 (그 대신 빅스와 티가든이 들어 있다), 그 점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p.115-116
젊었을 때는 꽤나 빌리 홀리데이를 들었다. 그 나름으로 감동도 하였다.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가 얼마나 멋진 가수인가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옛날에는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걸쳐 녹음한 그녀의 음반을 즐겨 들었다. 나중에 미국의 콜롬비아 레코드 사는 그 대부분을 재녹음하여 음반을 내놓았다. 그 음반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충만한 상상력으로 넘실거리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높이 비상한다.
--- p.35
나는 지금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고 다양한 재즈를 탐닉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스코트 피츠제럴드야말로 소설(The Novel)이고, 스탄 케츠야말로 재즈(The Jazz)라고 생각하고 있다. 새삼스레 생각해보니 이 두 사람에게 몇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 듯도 하다. 그들 두 사람이 창조한 예술에서 결점을 찾아내는 것 또한 가능하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하자에 대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각인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들의 하자까지 유보없이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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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인생에도 '잃어버린 하루'는 있다. '오늘을 경계로 자신속의 무언가가 변해버리리라. 그리고 아마도 두 번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마음으로 느끼는 날 말이다. 그날은, 오래도록 거리를 걸어다녔다.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늘 다니던 친숙한 거리가 낯선 거리처럼 보였다. 사방이 완전히 캄캄해진 후에야 어디 들어가 술이라도 한잔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위스키 온 더 록을 마시고 싶었다. 조금 더 걷다가 재즈 바 비슷한 술집이 있길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와 테이블이 세 개쯤 있는, 길쭉하고 협소한 가게였다. 손님은 없었다.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 p.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