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인데.” 약간 거리를 두고 낮게 흘러내리는 섹시한 목소리가 연주의 기억과 신경을 동시에 건들이며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치 어린 영양이 자신을 노리는 사자의 움직임을 뒤늦게 알았을 때의 최고조 경보상태와 같이, 그 느낌이 일치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핸드백을 꽉 부여잡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선명한 남자구두 소리를 들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멈춰진 발소리에 이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한 시선을 느끼면서 연주는 그 얄미운 정도로 운율이 서린 느릿한 말과 맞은편에 앉은 맞선 남의 표정만으로도 김수창이란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그 압도당한 표정! 연주는 천천히 시선만으로도 뜨거워지는 한쪽 뺨을 돌려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를 눈으로 확인했다. 남자는 일단 184의 훤칠함을 4년 전과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었다. 비스듬히 잘 넘긴 검은 머리카락은 단정하며 윤기가 흐르고, 넓은 어깨는 여전히 딱 벌어져 있어 몸에 잘 맞게 재단된 감색의 줄무늬 양복이 그의 몸에 흘러 내려 그 인양 보였다. 검은 색 구두도 먼지 하나 없이 반짝거렸다. 그녀의 눈이 빛나는, 사악하면서도 분방한 부드러운 눈동자에 이르렀다. “그 동안 잘 있었어?” 다정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그녀는 굳어진 채 짧게 답했다. “잘 있었어.” “그래 보인다. 가끔씩 네 생각했는데 너도 그랬어?” “아니.” 불쌍하게도 눈에 띄게 경색된 연주의 얼굴과 다르게 김수창은 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 사람 마냥 편안하게 보였다. 아니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그의 까만 눈동자엔 못마땅함이 어른거렸다. 그러나 연주는 그의 얼굴을 보며 김수창이 지금 상황을 장난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섭섭하네.” 맞선 남이 김수창의 명품 옷차림과 자신만 아는 태도에 기죽은 모습을 보고, 그녀는 왠지 화가 나서 김수창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예상대로 이 남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하면 그만이었다. “뭐 하는 거야?” “가 줘.” “혹, 선보는 건 아니지? 오연주가 선을 보는 모습을 보다니, 오늘 일진 안 좋은데. 뭐 보던 거니까 좋은 결과 있길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