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없어 보일까 걱정한다거나 그렇지 않은 척 한다거나 가증스러운 에티켓 실수를 범할까 걱정하느라고 먹는 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게 되면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개의 코스로 나오는 작품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본문' 중에서
파인 다이닝이란 최고의 요리를, 최상의 서비스를 통해 즐기는 과정을 말합니다. 최고의 셰프가,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요리를 손님에게 제공하고, 손님들은 그 요리를 즐기면서 셰프와 교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스토랑의 스태프와 손님이 일체가 되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완성되는 퍼포먼스에도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큰 돈을 써가며 식사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술가의 그림처럼, 접시 위의 요리는 셰프의 작품입니다. 요리에 포함된 모든 재료와 아이디어는 바로 당신에게 유일무이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만들어진 셰프의 창작물입니다. 화려하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목적의 절반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전문가인 셰프에게 맡겨 두세요. --- '본문' 중에서
소믈리에게 도움을 받든 스스로 고르든 식사와 딱 맞는 '정답' 와인을 골라야만 한다는 생각에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을 고르세요. 와인 선택에 있어 불변의 법칙은 자신에게 맛있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와인이냐 아니냐는 마시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 '본문' 중에서
야채는 다양한 풍미와 식감을 시도할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한 번도 먹어 보거나 들어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야채를 접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이한 음식을 피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사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야말로 항상 먹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드물고 색다른 야채들이 프로 셰프의 손에서 맛있는 요리로 재 탄생하기 때문이죠. --- '본문' 중에서
그러나 파인 다이닝의 세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턱시도를 갖춰 입은 딱딱한 메트르 디, 크리스탈 핑거 볼, 스무 개의 식기로 이루어진 테이블 세팅은 지난 날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유럽 요리에 한정되어 있었던 요리의 장르도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이 다양한 세계의 요리를 수용하고 있는 추세이며, 최고의 서비스와 음식을 유지하면서 경직된 형식을 타파한 캐주얼 파인 다이닝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국적인 에스닉 레스토랑도 파인 다이닝 세계에 점차 발을 들이는 추세입니다. --- '본문' 중에서
먹는 행위를 화학적이고 신체적인 반응 이상으로 만드는 마지막 결정 요소는 바로 당신의 감정과 태도입니다. 파인 다이닝이라 할지라도 맛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식사는 음식을 나누는 공동 의식이고 삶의 한 부분이지요, 맛있는 식사를 즐기기 위해 미식가의 뛰어난 미각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즐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 '본문' 중에서
때는 2002년 크리스마스 이브 미국, 뉴욕의 한복판입니다. 저는 저에게 아주 의미 있는 사람과 센트럴파크 서쪽 60번가 모퉁이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장 조르주 레스토랑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맨해튼에서 가장 호화롭고 비싼 레스토랑 중의 하나이지요. 이렇게 사치스럽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정당화할 기회를 기다려 오던 중, 곧 뉴욕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된 우리들은 완벽한 구실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이것이 뉴욕 거주자로서의 마지막 파티인 셈입니다.
눈이 내리면서 세상의 모든 결점들을 하얀 가루로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초현실적으로 완벽합니다. 이 순간만을 그려왔던 바로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이렇게 현란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합니다. 지나치게 세련되고 공손한 종업원들이 우리를 안에 들이기를 거부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매니저는 우리를 힐끗 보고서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고 콧방귀를 뀌면서 쫓아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주 구석진 테이블로 인도되어 앉게 될 것이고 웨이터들은 우리를 싫어할 것입니다. 우리는 푸아 그라도 잘 발음하지 못 할뿐더러 와인 리스트에 있는 가장 싼 와인도 주문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법이 틀리거나 포크를 잘못 사용한다면 진짜 시골뜨기처럼 보일 것입니다. 웨이터들이 우리를 뚫?져라 쳐다볼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레스토랑에 갈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당시의 나는 말하자면 '고급 레스토랑 공포증'이라는 것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파인 다이닝에 대해 갖고 있는 증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파인 다이닝이라 하게 되면,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테이블을 떠날 때 냅킨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불필요한 걱정거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장 조르주 레스토랑의 무거운 유리문을 지나 걸어 들어가면서 음식에 대한 흥분된 기대는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되자 걱정으로 신경과민이 되는 바람에 시들해졌습니다. 바에서 테이블로 와인 잔을 가져다 준 웨이터에게 팁을 줘야 하는 것인지? 전화번호부 만한 와인 리스트에서 어떻게 와인 한 병을 고를 수 있을 것인지? 데이트 상대가 먹고 있는 삶은 쇠고기 볼 살 한 조각과 연어 한 조각을 바꾸어 먹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볼까? 저 스푼은 대체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지? 그 날의 요리는 엄청나게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 요리들을 먹을 때는 정말 신경이 곤두서고 말았습니다. 그 경험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모든 도구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나 구겐하임 미술관을 걸어 들어갈 때 느끼는 것처럼, 호사스러운 다이닝 룸을 거닐게 되면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소박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보르도 와인의 빈티지를 계산하고 있든, 모나리자의 미소를 분석하든지 간에 자신이 교양 없는 촌뜨기 같아진 느낌 때문에 스릴 있는 경험을 맛보는 것이 방해가 됩니다. 아마도 약간은 과도하게 머리를 끄덕이거나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며, 냅킨을 무릎에 너무 일찌감치 펼쳐놓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와인 리스트를 읽고 있는 척 하겠지만 실제로는 가격 리스트만 훑고 있을 뿐일 것입니다. 프랑스 요리를 주문할 때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발음이 엉망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웨이터가 당신의 무지에 눈알을 굴리거나 피식 웃을까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그런 사실들에만 완전히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험이 없어 보일까 걱정한다거나 그렇지 않은 척 한다거나 가증스러운 에티켓 실수를 범할까 걱정하느라고 먹는 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게 되면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개의 코스로 나오는 작품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 책은 간단한 에티켓 가이드 이상입니다. 이 책은 저 자신의 만만찮은 방대한 경험에서 나온 파인 다이닝 지름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혼란과 의심 속에서 바가지 가격의 와인을 주문한 적도 있었고, 흉선(sweetbread) 요리 같은 알쏭달쏭한 요리(그것은 스위트 하지도 않았고, 빵도 아니었습니다)도 맛보았습니다. 냉소적이거나 남을 얕잡아보는 웨이터들을 불필요하게 신경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동안 많은 격식 있는 비즈니스나 사교적인 디너를 하면서 헤매고 있었는지, 아니면 단지 고급스러운 요리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을 뿐인지에 관계없이 파인 다이닝의 왕국에서 편하게 식사하거나 아는 척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여기 있습니다. 포트하우스와 T본 스테이크의 차이, 빵 접시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문제가 있는 와인 병은 어떻게 돌려보내야 하는지 등의 핵심적이고 구체적인 사항들입니다. 테이블 매너의 역사와 알쏭달쏭한 자리 세팅, 사람들이 당신이 실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여기게 할 만한 와인 주문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 레스토랑 직원들과 의사 소통 잘하기와 메뉴를 읽는 법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결코 매너에 관해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핸드북이 아닙니다. 어떠한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아뮈즈 부슈부터 디저트까지 맛있게 즐기고 만족하고 완전히 빠져들 수 있게 하는 실용적인 가이드입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이 책을 보고 "파인 다이닝이 대체 무엇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집어드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 "이 책을 보면 파인 다이닝을 더 잘 즐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파인 다이닝'이라는 말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미식 문화, 그리고 외식 문화에서 하나의 주요한 키 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외식 문화의 역사는 길어야 백 년, 짧게는 50여 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들은, 특히 한식의 경우 밥을 먹는다는 행위에 특별한 격식을 따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나름대로의 식사 예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식사하는 방법과 과정에 있어서 그다지 까다롭게 굴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양 요리, 특히 프랑스 풍의 요리가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포크와 나이프 같은 생소한 도구로,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요리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겠지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양식의 에티켓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한 책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책들이 도움이 되는 면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음식을 즐기려는 목적에서 벗어난, 형식적인 예절들을 나열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식사의 즐거움을 방해하기도 하는 거북스러운 이론서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양식 외에도 중식, 일식 등의 다양한 식문화가 발전하고 레스토랑 문화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면서 소위 미식가라는 커뮤니티도 만들어지고 파인 다이닝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파인 다이닝을 즐기기 위한 가이드입니다. 식사하면서 여러 가지 예절들을 신경 쓰느라 먹는 즐거움을 빼앗으려는 책은 아닙니다. 그럼, 파인 다이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파인 다이닝이란 최고의 요리를, 최상의 서비스를 통해 즐기는 과정을 말합니다. 최고의 셰프가,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요리를 손님에게 제공하고, 손님들은 그 요리를 즐기면서 셰프와 교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스토랑의 스태프와 손님이 일체가 되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완성되는 퍼포먼스에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레스토랑의 분위기, 음식을 담는 그릇, 서빙하는 사람들의 완벽한 태도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하며 요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나 다른 술들이 준비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손님들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파인 다이닝의 언어와 재료, 그리고 기타 레스토랑에서의 적절한 행동들을 알게 되면 고급 레스토랑의 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얼마간 느끼게 되는 공포감은 많이 누그러질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즐길 수는 없겠지만, 특별한 날에 의미 있는 사람과 함께 한 파인 다이닝은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주로 프랑스 음식의 파인 다이닝에 관한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에게도 프랑스 음식은 경원의 대상인 듯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인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 음식을 위한 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에 임하는 자세는 세계 어디에서도 공통일 것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여행 시 외국의 저명한 셰프의 요리를 맛보고 싶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다가 번역 상의 오류를 발견하시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역자의 책임이니 언제든지 질책의 말씀을 보내 주시면 감사하게 받아 들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 책과 함께 두려움 없는 미식 여행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 '역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