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 너무 낙관적이라고. 우리가 현실정치에 얼마나 강력한 도덕을 요구하든 우리는 언제나 정치 바깥에 서 있으며, 정치세계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그 주변에서 정치 스캔들을 비웃을 수야 있겠지만 참여는 할 수 없다고. 정작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우리에게 도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이런 관점이 상당히 유행하고는 있지만,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첫째, 정치의 핵심 문제는 권력의 정당성 문제다. 루소의 말을 빌리면, 통치자가 권력을 권리로, 복종을 의무로 바꾸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한 통치자라 하더라도 오래갈 수 없다.
개방적인 현대사회에서 국가 통치의 정당성은 오랫동안 폭력과 공포, 거짓말 위에서 존립할 수 없으며, 신비한 종교나 오랜 전통에 기댈 수도 없다. 반드시 도덕적 신념에 호소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도와 법률, 정책과 보편적 공권력 행사가 우리가 지지할 만한 것임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국가는 정당성 위기에 빠진다. 따라서 정상적인 현대국가에서 도덕규범은 필연적으로 권력 정당성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2장. 우리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중에서
물론 자연능력이 불평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 자체가 야기할 온갖 정치적·경제적 불평등이 공정한지 아닌지는 도덕적 논증을 거쳐 밝혀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 있는 자의 말이 옳다’는 논리를 받아들이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 글의 관심사는 아니다. 여기서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모든 이의 인격과 권리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회에게 살면, 강자는 필연적으로 손해를 입는가?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평등과 존중 자체는 중요한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도덕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존중함과 동시에 타인에게서도 같은 정도로 존중받는다. 이 대등한 존중은 권력과 금전에 기반을 두지 않고, 각종 외재적 경쟁에 기반을 두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도덕적 인격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근거한다. 이 평등과 존중 아래 세워진 사회에서 우리는 든든한, 외부의 도움을 구할 필요 없는 존엄을 누린다고 느낀다. 우리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이 존엄감 덕분에 우리는 가장 깊은 층위의 도덕적 의의에서 우리가 ‘함께 산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낀다. 같이 산다는 것은 절대 모든 차이를 없애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며, 우리가 각자의 독립성을 잃을 것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이는 우리가 같은 도덕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며, 서로의 도덕적 인격을 긍정하고,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함께 살면서 서로의 운명을 함께 책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공공생활이 모든 이에게 중요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4장. 정의를 요구할 권리」중에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사리 그리고 단순하게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운이 나쁘다거나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모두가 특정 개체가 겪는 특수한 상황이니 제도와는 무관하며, 다른 사람도 이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개체의 빈곤이 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롤스가 말했듯, 한 사람의 천부적 능력이 뛰어난지 그렇지 않은지와 그가 어떤 사회 계층으로 태어났느냐는 순전히 우연한 자연적 사실이며, 그 자체에는 흔히 말하는 공정·불공정이 없다.
하지만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이런 사실에 대응하느냐는 공정과 관련이 있다. 한 국가의 정치와 경제 제도, 세금제도와 복지정책, 교육과 의료체계 등이 모두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이 얻을 기회와 자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개인의 처지를 제도의 맥락에서 완전히 분리시키는 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빈곤의 배후에 있는 제도라는 근원을 볼 수 없게 만든다.
---「18장. 빈곤은 누구의 책임인가」중에서
물론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다고 해서 개체가 매번 정확한 선택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누구나 언제든 비이성적이거나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로 가부장제나 독재를 허용할 수는 없다. 합리적인 방법은 국가가 양호한 환경을 제공해서 시민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자아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하고 이를 장려하는 것, 아울러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 알게 하는 것이다. 실수는 인간을 성장시킨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같은 이치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다고 해서 사회가 사람들에게 다양하고 양적으로도 충분한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을 선택지로 제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심각하게 독재화되고 과도하게 상품화된 사회는 모두 각자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소임을 다하는 사회문화를 배양하는 데 불리하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경제시장의 자유방임에 반대하며, 마찬가지로 문화시장의 자유방임에 반대한다. 문화 패권과 문화 다원성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3장. 개인이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