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평이한 정치학 개론서 ... 비교정치학에서의 개념과 논점
--- 99/10/31 김선희(rosak@hanmail.net)
이 책은 저자의 25년 이상의 비교정치 강의경험을 바탕으로 정치학에 대한 입문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 책 속에서의 주제의 선정이나 서술형식에서 기존의 비교정치학 관련 서적들과 비교하여 별다른 특색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사실 비교정치학이라는 것이 정치학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학문이기 때문에 연구의 '주제'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교정치학에서 연구의 '수단'으로서의 '비교'를 강조할 경우 방법론에 치중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은 {비교정치학에서의 개념과 논점}인데,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은 비교정치학의 광범위한 쟁점과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결국 이 책은 무엇을 비교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고 있으나,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를 애초부터 안고 있다.
저자는 미국학생들로 하여금 '외국'의 정치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보여지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신흥공업국으로서 경제적 근대화는 성취했지만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데 고전하고 있는 국가. 또는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지 않고서도 강력한 자본주의 경제를 수립하는데 성공한 나라. 하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압력이 고조되고 있는 상태.
이것이 저자가 이해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이다. 물론 이 책은, 저자도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영국, 캐나다, 중국, 프랑스, 독일, 인도, 일본, 멕시코, 나이지리아 등 9개국을 주된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해는 주된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이같은 설명을 통해 이 책의 또다른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러 국가들에 대한 표피적인 모습만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는 모든 개론서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많은 국가들의 정치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이 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해보면, 우선 개념상의 문제점을 들 수 있겠다. 정치학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내리고 넘어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비교정치의 용어를 소개하면서 권력과 권위의 개념을 구분짓고는 있지만 본문을 읽다보면 그러한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권위'에 대한 독일인들의 복종(p.41), 프랑스인들의 정치'권위'에 대한 불신(p.51)과 같은 표현을 볼 때, 권력과 권위를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
또한 저자는 민족과 인종집단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것도 지나친 단순화의 논리라 할 수 있다. 소련 및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의 '민족주의의 부활'과 그로 인한 민족분규, 서구의 몇몇 국가들에서 표출되고 있는 극우적 성향의 민족주의 경향을 통해 볼 때 민족과 인종집단과 같은 개념들을 동일시할 경우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번역상의 문제이다. 이 책은 공동번역이 안고 있는 '일관성의 결여'라는 일반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극복하고 있다. 역자들의 말대로, 두 명의 역자들의 노력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군데에서 아쉬운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율'이라는 표현은 '금리(金利)'로(p.31), '무역사적인 미국인들'은 '역사적 뿌리가 결여되어있는 미국인들'로(p.40), '정치가치'는 '정치적 가치'로(p.54), '관개 필요'는 '농업용수 확보의 필요성'으로(p.57), '미국 이익들'은 '미국 이익집단들'로(p.68) 바꾸는 것이 올바를 듯하다. 또한 군데군데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데, 원서를 대조해보지 못한 관계로 누구의 책임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