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JB의 「75주년 기념음반 The 75th Anniversary」(RCA 빅터). 여기에 수록된 <마구간 블루스 Livery Stable Blues>는 1917년에 녹음된 재즈 역사상 최초의 녹음인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존 맥도너프(John MaDonough)의 글은 흥미로운 사실 두 가지를 전하고 있다.
그 첫째는 재즈와 인종 간의 관계이다. 난 사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재즈를 미국흑인들의 음악이라고 여겨왔다. 물론 백인들 가운에서도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으며 그들이 만든 독자적인 스타일들(예를 들어 쿨재즈 또는 서해안 재즈)이 재즈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재즈는 '본질적으로' 흑인들의 음악이라고 여겨왔으며 그러한 나의 믿음은─그렇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믿음일는지도 모른다─아트 블래키, 호레이스 실버, 브라운ㆍ로치 퀸텟, 소니 롤린스, 듀크 엘링턴을 들으면서 보다 확고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은 한 가지 오해를 낳기 쉽다. 즉 재즈는 그 역사를 거슬러올라갈수록 흑인들의 전유물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해 ODJB의 이 음반은 보기 좋게 한 방을 먹인다. 그들은 백인들로 구성된 밴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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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 늘 그렇듯이 휴일에는 가게를 찾는 사람이 더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왜? 장사가 하도 안돼 이젠 맛이 갔냐고? 그랬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유를 대자면 나는 오늘 'Free Jazz'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러한 계기를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재즈라고는 거의 들어본 바 없는 한 문외한을 통해서 발견했을 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문외한이란 바로 우리 큰아버지이다.
나른한 오후 장수풍뎅이를 찾는 사람도 없고 해서 나는 며칠간 손대지 않았던 'Free Jazz'를 다시 꺼냈다. 사실 이 음반을 꺼낼 때는 어쩌면 이게 마지막 감상일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답답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이미 몇 장의 음반을 들으면서 진행되었던 '역사적 명반 10선 감상'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말 듣기 싫었지만 이 음반을 약간의 오기로 다시 꺼내 들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꿍쾅꿍쾅..... 삐리릭 삐리릭..... 또 '난리 부루쓰'다.
그런데 그때 가게에 큰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자주 들르시는 분이니까 나도 예사롭지 않게 인사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드렸다. 그랬더니 장사는 할만 하냐는 둥, 사촌형은 가끔씩 전화 온다는 둥 늘 하시던 말씀을 오늘도 먼 산 바라보시며 무표정하게 하시는 거다.
나도 그저 그렇게 늘 큰아버지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갑자기 큰아버지는 음악 나오는 스피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나는 양놈들, 저 째즈 저거 왜 듣는지 모르겠어. 그저 가락도 수평선처럼 일정하고 또 정신없이 쿵쿵거리는데 저걸 좋아하면서 들으니.... 통 이해가 안가."
그때 손간적으로 내 머리에는 두 가지 사실이 번갯불처럼 스쳐갔다.
첫째는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로 큰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시다가 어느 미군 장교 손에 구출되어 한동안 미군부대에서 생활했고 60년대 초까지 미군부대 PX와 식당에서 일하셨다는 사실.
둘째, 이 난해한 'Free Jazz'를, 그래서 이헌석씨는 재즈가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인지 재즈 팬들보다는 전위음악 팬들이 더욱 아끼는 'Free Jazz'를 큰아버지는 명백하게 재즈라고 부르신다는 점이다. 나는 약간 놀라면서 큰아버지에게 여쭸다.
"참, 큰아버님, 옛날 미군부대 계실 때 재즈 많이 들으셨나요?"
"아니, 그걸 뭐 들었다고 할 수 있나? 그냥 귀에 들린거지. 그땐 째즈라고도 했지만 스윙이라고 불렀지. 그 놈들은 맨날 음악 듣잖아. 춤출 때는 물론이고 밥 먹을 때도 듣고 하여튼 노상 듣는다고. 사병들 파티할 때 가보면 어떤 땐, 거 뭐야 기타 들고 징가징가하는 시끄러운 음악, 그거 들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땐 저 나팔 든 사람들 잔뜩 앉혀 놓고선 그 음악에 맞춰서 춤춘다고. 근데 그 음악이 맨날 같애. 노래가 구성진 맛이 있어야지. 그저 흔들흔들흔들 수평선 음악이야. 그걸 음악이라고 들으니... 저거 들어봐 저 음악도 노상 같잖아. 흔들흔들..."
"에이, 그러면 미군들이 춤출 때 이런 음악을 들었단 말이에요? 이건 춤곡이 아닌데요?"
"아니, 꼭 이 곡으로 춤췄다는게 아니라. 다 그게 그거라는 거지. 내가 뭐 아냐? 하여튼 이것도 째즈 아니야?"
이헌석은 재즈가 아니라는데 큰아버님은 이 곡이 재즈란다. 그러고 이 곡을 들으니.... 그렇다. 이것이 재즈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래, 재즈야. 명백하게 스윙하고 있다.
프레이즈의 스타일을 들어보라. 이것은 민속음악이거나 클래식도 록큰롤도 아니고 분명 재즈야. 재즈 말고 어떤 음악이 이렇게 연주하겠어. 물론 여기에 춤까지 출 수 있다면 과장이겠지만 이 음악 역시 큰아버지 말씀대로 술렁 술렁 술렁(아니 흔들 흔들이었나?) 스윙하고 있잖아. 일종의 추상적(?) 스윙!
"큰아버지, 이것도 그러고 보니 재즈네요."
스피커에 귀기울이고 있는 내 입가엔 아마도 옅은 미소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놈이 정신나갔나? 누가 뭐래? 야, 정신 나간 소리 말고 요 앞에 가서 설렁탕이나 한그릇 먹고 오자. 어여! 이놈아. 정신차려."
식사 뒤 나는 가게에 돌아와 다시 'Free Jazz'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무심코 봤는데 자켓 안쪽에 보니 잭슨 폴록의 '하얀 빛'이라는 미술작품이 실려 있었다.
순간 나는 전율했다. 왜냐하면 오래 전에 읽은 E. H. 곰브리치의 책에서 저자는 잭슨 폴록의 작품을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붓을 놀리는 중국회화 또는 인디언 미술의 전통에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 바 있는데 그 구절이 지금 내 머리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오넷 콜맨은 'Free Jazz'를 잭슨 폴록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으며 빌 에반스는 'Kind of Blue'를 일본회화에 비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곰브리치는 잭슨 폴록과 동양회화의 관련성을 이야기했고...
이러한 관계를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Free Jazz'와 'kind of blue'의 정서가 그리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쯤은 감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관현악단의 조율 소리에 감동했던 그 중국 재상에게 만약 'Free Jazz'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여줬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사람들이 잭슨 폴록을 사기꾼이라고 말할 때 그는 멋진 대가라고 했을지도 모르며, 'Free Jazz'는 재즈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 재상은 이건 완전히 미국재즈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니 머리 벗겨지고 배나온 평범한 노인인 우리 큰아버지가 중국 재상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뒷짐 지고 느릿느릿 이 거리를 걸으시는 모습도 그렇고... 내일 'Free Jazz'를 한 번 더 듣자.
--- pp. 140~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