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충실한 동물의 삶이 인간의 눈에는 순수하게 비친다. 순진하고, 정직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평불만 없이 지금 이 순간을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삶을 사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라 믿고 존경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인간은 같이 사는 반려동물을 통해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삶, 현실에 충실한 삶을 구체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진무구한 모습에서 인간은 위안을 얻고 치유를 받는다. 어쩌면 삶의 진실을 느낄지도 모른다. --- p.44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과 인연을 맺는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인연을 맺는다고 해서 특별히 깊은 관계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그저 의문점을 갖고 깊이 생각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일도 세상과 인연을 맺는 일이다. 심지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버리는 일조차 얽히고설킨 세상의 연결고리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 세상과 인생의 쫀득쫀득한 관계를 논한 철학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다면,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 독일의 철학자)를 떠올릴 수 있다. 하이데거는 그의 대표 저서인 『존재와 시간』에서 세계와 인생의 연결고리를 이렇게 규정한다. “세계란 우리가 저마다 관심을 갖고 관여하는 대상으로, 그 세계가 인생을 구성한다.” --- p.51
때와 장소, 배려 혹은 이해관계, 아니면 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 등 모든 요소가 인간의 내면을 좌우할 텐데, 이런 모든 요소를 총칭해서 말하자면 개인의 지성이 주축이 되어서 감정이나 욕구의 순간적인 폭발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성이란 학교 공부로 습득한 지식이 아니라, 인생의 시간에서 터득한 ‘인간 지성’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 지성과 도덕은 서로 포개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덕, 지성, 매너, 예절 등은 본질적으로 근원이 같은데, 단지 표현 언어만 다를 뿐이라고. 지성이나 도덕, 예의범절은 모두 착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착한 것들이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융통성 없이, 되게 근엄하게, 되게 재미없게 사는 삶이 아니다. 진정으로 착하게 산다는 것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험한 꼴을 당하지 않고, 엄청난 시련이나 슬픔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삶이다. 이는 인생의 쾌락이자, 모두가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 pp.98-99
언어는 추상적이지만, 이 언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말을 이해하고 게다가 상대의 기분까지 공감한다. 심지어 언어는 인간의 생리적 반응까지 끌어낼 때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단지 추상적인 언어를 해독하고 있을 따름인데, 더군다나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가능성도 없는데, 우리는 눈물을 흘리거나 손에 땀을 쥐거나 여행의 노곤함을 느낀다. 이는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다. 추상적인 언어를 상대하고 있지만,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 p.182
중세 유럽의 회화를 뚫어져라 감상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어린이, 청소년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갓난아이는 있지만 소년 소녀는 없다. 당시 일곱, 여덟 살이 되면 이미 어른들과 함께 ‘노동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아이들은 없었다. 그러니 당시 시대와 사회가 아이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시대가 변천하고 사회와 문화가 변모하면 인간의 가치관도 변하기 마련이다.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