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작가가 절실하게 느낀 체험을 소설화하려고 할 때에 나의 경험으로 보면 너무도 그것이 절실한 체험이기 때문에 공상의 여유를 주지 않고, 체험한 그 사실 그저 그것만이 병에 물이 쏟아지듯 쉼 없이 붓끝으로 쏟아져 내려와 그 절실한 체험의 힘을 막아 낼 도리가 없어 저도 모르게 붓끝을 놀리다가 작품으로서 실패를 본 예가 있음을 기억한다. 작품이 이렇게 되면 한 개인이 느낀 사실만이 기록이 될 뿐 인생의 진실성 추구로서의 보편성을 잃고 말게 된다. 초심자는 특히 이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中
소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순화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먼저 ‘사건’으로 논하자면 그 소설의 진전과 그다지 관계가 없는 사건은 아무리 그 소설의 주인공의 행한 일이든지 아무리 주요 인물이 연관된 일이라도 제해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가볍고 작게 취급을 한다. 그 사건이 있기 때문에 소설이 이와 같이 전개된다든가, 소설 중에서 갑이 이렇게 언행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소설에서)가 생겨났다든가, 이런 자는 크게 과장을 한다. 이렇게 하여 가벼운 자는 그다지 독자들의 주의를 끌지 않게 하고 중한 자(소설 내용에 중대한 관계를 가진 자)는 독자에게 인상이 크게 한다. - 창작 수첩 中
포우의 말을 빌면 “첫 꼭두머리의 문장부터가 예상의 효과를 돕는 것이 아니면 벌써 그 소설은 제 1차의 실패를 한 것이다. 작품 그 어느 대문에서도 기정의 계획에 직접으로나 간접으로 불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써서는 안 된다. 이러한 수법과 배려와 연습에 의해서 비로소 만인의 가슴 위에 최상의 만족감을 주는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의 필요는 물론 인간심리의 긴장의 율도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장구한 긴장에 견디기 어려운 것이므로 시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산문에 있어서도 30분내지 한두 시간으로 통독할 수 있는 것이라야 독자가 그 작품을 대하는 동안 온전히 작자의 명령대로 쫓아서 장편을 읽는 때와 같은 흥미의 중단 혹은 권태와 염증을 초래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에 이데아가 조금도 이지러지는 법 없이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다.” - 장르별 소설쓰기, 단편소설 中
소설은 영원성을 띤 자라 시대풍이 과히 들면 그 시대만 지난 뒤에는 시대지의 작품이 되어 버린다. 역연한 사실로 수년 전까지 조선에는 한 사상적 청년이 활약을 하는 모양을 그린 소설이 전성하여 그렇지 않은 것은 소설로 보지도 않은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앉아서 그때의 그 소설들을 죄 재검토 하면 과연 영구성을 가진 자 몇이나 되는가. 시대성을 벗을 수는 없으되 벗을 수 있는 것은 벗어 보려 고는 하여야 할 것이다. - 소설가 지원자에게 주는 당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