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는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들을 애매하고 어려워지도록 고쳐 썼어요. 저도 최근에 그렇게 한 게 있어요. 「휩쓸리다」는 1991년 『미국최고단편집』에 수록됐어요. 어떤지 보고 싶어서 선집을 꺼내서 다시 읽었는데, 정말 후줄근하게 느껴지는 단락을 발견했지 뭐예요. 순간 펜을 들어 여백에 고쳐 썼어요. 그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펴내게 되면 참고하려고요. 그 단계에서 교정을 여러 번 했는데 나중에 보면 실수한 거였어요. 이야기의 리듬 속에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소설 전체를 다시 읽어보면 고친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지요. 그러니 이런 고쳐쓰기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어요. 그만두는 게 해답일지 몰라요.
--- p.21 「앨리스 먼로」 중에서
작가가 쓰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자전적이지만, 실제 사건이나 인물로부터 착상을 얻기도 해요. 『풀잎 하프』는 실화에 근거한 작품인데, 다들 그 이야기 전부를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이 자전적이라고 추측했죠. 지금까지는 제게 가장 쉬운 글만을 써왔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것을 자유롭게 써보고 싶어요. 머리를 좀 더 쓰고, 좀 더 많은 색깔을 활용해보고 싶습니다. 헤밍웨이는 누구든 일인칭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말했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정확히 알겠어요.
--- p.80 「트루먼 커포티」 중에서
유머 작가들은 막내인 경우가 아주 흔해요. 어린 시절, 제일 꼬마인 제가 저녁 식탁에서 주목을 끌 수 있는 방법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뿐이었어요. 전문가가 되어야 했지요. 전 라디오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고, 농담하는 법을 터득했지요. 그게 제 책의 내용이고, 이제 저는 농담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즉 어른이 되었지요.
--- p.127 「커트 보니것」 중에서
소네트나 전원시를 쓸 때는 형식이 있으니 그걸 채워야 해요. 또 하고 싶은 말을 그 형식을 통해 하는 법을 찾아내야 하고요. 하지만 늘 발견하는 사실은, 형식에 맞춰 작업한 시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것처럼, 그 형식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유도한다는 거예요. 놀랍고 신기하지요. 소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장르는 어떤 의미로는 형식이고, 분야를 정하지 않고 작업하고 있었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생각으로 이끌어주지요. 우리의 정신을 구성한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해요.
--- p.165 「어슐러 K. 르 귄」 중에서
위대한 책은, 이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 능력이나 성격 묘사, 문체 같은 특징을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해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아니면 둘 다에 대해 새로운 진실을 말해준다고 인식되는 책이지요. 전에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진실, 즉 공식적인 기록이나 정부 문서,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은 진실 말입니다.
--- p.179 「줄리언 반스」 중에서
내 글에 영향을 미친 선불교의 부분은 하이쿠에 담긴 선불교지. 내가 말했듯이 3행 17음절로 이루어진 그 시는 수백 년 전에 바쇼, 이샤, 시키 같은 사람들에 의해 쓰였고, 최근의 대가들도 있지. 내 글에서 생각이 순식간에 도약하는 짧고도 기분 좋은 문장은 일종의 하이쿠이고, 그걸로 나 자신을 놀라게 하는 데 커다란 즐거움과 자유가 있어.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오르듯 생각이 도약하게 내버려두는 거야.
--- p.243 「잭 케루악」 중에서
물질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과학과 화학에 정말 시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릴레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비록 그렇게 여겨지지는 못했지만, 제가 갖고 있는 그의 책들은 정밀성과 간결성이 뛰어나지요. 또 그는 할 말이 있었습니다. 작가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하지요. 어떤 작가가 정직한 사람이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면, 나쁜 작가가 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명확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옮길 수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할 말이 없는 작가라면, 글이라는 도구가 있다 해도 그는 이류랍니다.
--- p.294 「프리모 레비」 중에서
문학은 정말로 삶에 대해 가르쳐줘요. 책이 없었다면 전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을 테고,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 거예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위대한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는 중이에요.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은 마음을 단련시키지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요. 문학은 자기 성찰로 이끌지요.
--- p.321 「수전 손택」 중에서
머리를 타자기에 박고 있을 때는 독자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일련의 기준이 있을 뿐이죠. 하지만 출판되어 세상에 나온 제 작품을 생각하면, 이렇게 상상하고 싶어집니다. 주변에 책이나 글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전혀 없는 어떤 이가, 어쩌면 작가 지망생일 수도 있고 어쩌면 조금 고독한 탓에 자신을 유쾌하게 만들어줄 특정한 종류의 글에 의지하는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서 그 책을 읽고 있다고 말입니다.
--- p.353 「돈 드릴로」 중에서
전 플롯을 가지고 작품을 쓰지 않습니다. 직관, 이해, 몽상, 개념으로 작업합니다. 인물과 사건은 동시에 떠오르지요. 플롯에는 내러티브와 수많은 허튼소리가 들어 있어요. 도덕적 신념을 희생하여 독자의 흥미를 끌려는 계산된 시도지요. 사람들은 지루해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을 유지할 요소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좋은 내러티브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에 있어요.
--- p.399 「존 치버」 중에서
당시 저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어요. 음악가가 되는 건 실패했죠. 그래서 라디오 드라마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우연히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의 맬컴 브래드버리가 가르치는 문예창작 석사 과정에 대한 작은 광고를 발견했어요. 오늘날에는 유명한 과정이지만 그 시절에는 대단히 미국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발상에 지나지 않았죠. 지원자가 충분하지 않아 전년도에는 개설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언 매큐언이 10년 전에 그 과정을 밟았다는 사실도 누군가에게 들었고요. 전 지원서와 함께 라디오 드라마 한 편을 맬컴 브래드버리에게 보냈어요. 합격했을 때는 약간 어리둥절했죠.
--- p.424 「가즈오 이시구로」 중에서
책이 완성되면 인물들에 대한 흥미가 싹 사라져요. 그리고 도덕적 판단은 결코 내리지 않아요. 제가 하는 말이라고는 그 인물이 익살맞다거나 쾌활하다거나 따분했다는 정도예요. 등장인물들에게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건 몹시 지루한 일이에요. 전혀 흥미롭지 않아요. 소설가에게는 자신의 ‘미학’에 대한 도덕성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전 책을 쓰고, 마무리하는 데만 관심이 있어요.
--- p.469 「프랑수아즈 사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