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인쇄)에서 비롯된 타이포그래피의 개념은 디지털, 디자인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서 완전히 다르게 발전하였다. 이 책은 그러한 오늘날 시각문화의 뼈대와도 같은 타이포그래피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적용되어 왔으며, 연구되고 있는지를 자세히 안내해 준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타이포그래피의 전통적인 규칙과 관습을 연구하고 낯설게 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비옥한 전통의 토양에서 피어난 실험의 꽃이 아름답다고 하건, 신은 (혹은 장인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건, 이 땅의 시각 문화는 수량과 속도를 잠시 잊고, 가치와 완성도를 위해 곰곰히 숙고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시각 예술과 디자인에 관련한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그간 국내에 번역된 많은 타이포그래피 관련 서적들이 독일, 스위스, 미국 등에서 출간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이 책은 영국에서 교육자로, 실무자로, 집필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저자가 썼다. 덕분에 그간 많이 접하지 못했던 영국 그래픽 디자인을 만나보는 기쁨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책의 미덕이다.
- 김경선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교수)
『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인가?』는 이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은 물론 전문 디자이너에게도 유익한 책이다. 포괄적인 역사적 전망과 실용적인 조언, 추상적인 논의와 구체적인 사례들이 균형 있게 버무려져 있다. 특히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도판들은 신선하고 자극적이다. 18세기에 발행된 문학서적에서부터 21세기에 나온 현대 미술 도록, 도로표지판에서 담벼락의 낙서, 타이포그래피의 의미론에서 대문자 조판의 자간 조절 요령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다루고 논의하는 주제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아마 오늘날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이 마주하는 가능성의 폭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어쩔 수 없이 로마자 타이포그래피만을 다루지만, 많은 통찰은 한글에도 응용할 수 있다 (또는 그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활용했으면 좋겠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저자와 그의 타이포그래퍼들이 풍성하게 예증하는 원리, 태도, 접근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 최성민 (서울시립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기능적 역할로만 받아들여지던 타이포그래피 영역이 지금은 표현과 창조의 영역으로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문자와 그것을 다루는 타이포그래퍼 또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은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디자이너들에게, 읽기, 쓰기, 말하기 등이 디자이너의 독점적 영역이 아님을 강조하며, 이미 익숙해진 문자다루기 방식에 대해 다시 낯설게 접근하는 태도를 가져볼 것을 권하고 있다.
저자는 기능, 언어, 기호, 수사, 정보 등 문자의 이면에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개념들을, 타이포그래피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가볍게 연결해 이야기함으로써, 문자를 공유하고 있는 여러 분야와의 적극적이고 폭넓은 소통과 토론이, 아직도 뚜렷하게 정의되지 못하고 이론적인 토대가 부족한 타이포그래피 영역에 보다 탄탄한 기초를 만들어 주는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거시적 담론을 던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음으로써, 장인적 태도를 지니고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당황케 하지 않으며, 전통과 관례를 이해시키되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조형적 판단에만 몰입하는 디자이너에게는 시야를 좀 더 넓게 가져보라고 이야기한다. 그 외에 철자, 단어, 그리드, 괄호, 글줄 등 문 표현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세밀히 관찰함으로써 기능과 표현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디자이너들에게 구체적인 판단 요소들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민병걸 (서울여대 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