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의 설렁설렁한 맛’. 여기 이르러 절로 무릎을 탁 친다. 조선 임금이 선농단에서 제를 올리고 끓인 선농탕에서 설렁탕이 유래했다는, 이제 음식 문화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론하지 않는 낭설이 다 부질없어지고, 조선 시대 몽골어 학습서인 『몽어유해』 속에서 곰탕에 해당하는 몽골어 ‘슈루’의 흔적 더듬기도 하릴없다. ‘설렁설렁’이랬다. 설렁설렁이란 바람이 가볍게 자꾸 부는 모양을 드러내는 부사다. 커다란 솥에서 탕국이 끓어오르며 가볍게 이리저리 이는 물결을 수식할 때에도 딱이다. 팔이나 꼬리를 가볍게 자꾸 흔들 듯이 가벼운 움직임, 가벼운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을 수식하는 말도 ‘설렁설렁’이다. 설렁탕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설렁설렁 끓고, 사람들은 설렁설렁 밤길을 걸어가, 설렁탕 한 뚝배기 설렁설렁 해치운다.
--- p.20~21, 「설렁설렁 설렁탕」중에서
다시 『산가요록』 앞으로 다가앉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치미, 나박김치, 물김치 계통이 550년 전에 이미 오롯하다. 책장을 더 넘기니 과일을 소금에 절여 풍미를 증폭하고, 꿀로 단맛을 끌어올리고 수분까지 넉넉하게 잡은 복숭아김치, 살구김치가 등장한다. 살구김치에는 생강과 차조기로 풍미를 더하기도 했다. 이윽고 수박김치에 이르러서는 침샘이 터질 지경이다. 문헌으로 보거나, 칠순 어르신께 한 세대를 건넌 이야기를 듣거나 참 아깝다. 그 계절 감각, 지역 감각, 다양한 맛의 기획이 아깝다. 아까워하는 그 마음으로 김치라는 음식을 헤아린다. 문헌 속에서 한 가지 김치라도 더 확인하고, 세대가 다른 분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듣자고 달려든다.
--- p.37, 「김치 회상」중에서
한여름 하늘 아래, 얼음과 꽃잎과 과일을 기다리던 사람이 살았고, 고추장에 파뿌리가 고마운 사람이 살았다. 여름은 이전에도 상하귀천을 갈랐다. 갈라도 이렇게 극명히 갈랐다. 모두에게 빙수 한 그릇, 빙과 한 조각이라도 돌아간 지 얼마 안 된다.
--- p.46, 「빙수 한 그릇」중에서
국수의 시작이란 전에는 소면 한 뭉치 사오기, 밀가루 한 포 사오기가 아니었다. 시작은 자가제분이었다. 그것도 동력 장치의 힘을 빌릴 수 없는, 하루 종일 여성 노동으로 감당한 제분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조리서 속의 국수 항목을 보면 국수를 어떻게 맛나게 말아라, 반죽에 어떻게 맛을 들여라 하는 소리 이전에, 흰 가루 얻기부터 설명한다.
--- p.49, 「간단하게 국수나?」중에서
내가 빵집에서 실제로 빵을 집었는지 과자를 집었는지 돌아보자. 우리는 실은 빵으로 오해한 과자를 먹으며, 당과 유지를 잔뜩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간식을 먹겠다면서 밥 몇 공기 열량의 식빵 한 덩어리를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기도 한다. 빵과 과자가 뒤섞인 감각의 혼란이 분식에서 주식과 기호식의 뒤섞임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 p.52, 「빵과 과자는 다릅니다」중에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살고, 하필 이렇게 유난스러운 음식 담론에 다다른 내력을 음미하는 가운데, 우리는 인류와 사람과 나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의 끝이라도 쥘 수 있지 않을까.
--- p.114, 「음식이 만든 풍경들」중에서
그동안 우리는 다만 “옛날에 그랬다”만 되풀이하는 음식 문헌 읽기를 할 뿐이었고, 논증 불가능한 영역에서 복원을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았다. 이제는 좀 달라질 때도 됐다. 기록 속에서 내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 상상력을 바탕으로 조리의 실제에서 오늘의 자원과 오늘의 기술을 십분 활용해 다양한 시도를 해봄 직하다.
--- p.122, 「떡국 단상」중에서
오늘날 저마다가 심노숭이다. 제 기호와 취향을 드러내는 연출 방법과 말글의 수사에서 그렇고, 그 드러냄을 통해 음식에 대한 제2, 제3의 욕망과 선망을 만들어가는 데서도 그렇다. 문자를 뛰어넘는 영상 덕분에 심노숭보다 더한 점도 있다. 그러고서는, 기호와 취향을 드러낸 다음은 여전히 공백이다. 모색과 상상력의 미봉이 그의 찬란한 수사 덕분에 더욱 또렷해진다. 아쉬움이 이정표다. 옛글을 펼쳐놓고 미봉한 채로 흐른 200년을 음미한다.
--- p.136, 「심노숭 생각」중에서
그러고는 백 년쯤 흐른 오늘, 카스테라는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나쁜 화제로 떠올랐다. ‘대만카스테라’가 유행할 때에도, 그 유행이 지나서도, 이제 누가 무슨 말을 부치든 애초에 나쁜 화제를 만든 쪽만 좋은 일 시키고 있다. 대만카스테라를 팔고 빠진 쪽에서는 이미 빼 먹을 것 다 빼 먹었다. 이후에 카스테라는 원래 이래 하면서 훈수 두는 이들의 경우라면, 적당히 한마디하면서 제 조회수를 올리기나, 카스텔라 및 카스테라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면 그만이다. 어느 쪽이든 기획한 쪽에서 바란 ‘노이즈 마케팅’은 승리했다.
--- p.139, 「아리고 쓰린 카스테라 담론」중에서
저번보다 낫다니. 몇 차례 와인을 접한 사이에 관능의 비교를 행하는 데 이르렀다. 입에 넣고, 목구멍 지나서의 관능까지 묘사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finish, 와인에 관한 한국어 표현에서 요즘 뒷맛이니 끝 맛이니 하는 지점이다. 보다 섬세해진 관능 평가를 바탕으로 이기지는 와인에 절대적인 평가를 내렸다. 경장옥액이라고 하면 이른바 신선의 음료다. 그러니 경장옥액과 같은 음료라면 사람의 관능 표현이 이루 다 그려낼 수 없는 좋은 풍미를 쥐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장옥액보다 와인이 낫다고 했다. 감각이 불어남에 따라 미각, 관능 표현의 수사도 이렇게 불어났다.
--- p.157~158, 「이기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중에서
셰프.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온갖 매체에서 먹방과 맛집 사냥이 넘치고, 솁솁거리기가 울려 퍼지면서 너도 나도 이 말에 감염되었다. 셰프란 말은 한순간에 요리사 또는 제과사, 찬모, 주방장이란 말을 지워버렸다. 동시에 새벽 첫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가고, 실제로 하루 열두 시간은 업장을 지켜야 하는 식당 일의 세계, 구체적인 주방 노동의 세계를 가렸다.
--- p.229,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 원이냐?」중에서
사람은 내게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 이때 자원이란 농업을 기본으로 인간과 자연과 국제관계와 과학기술 등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결과다. 날것 상태의 자원이 먹을 수 있는 밥, 빵, 국수에서 장, 젓갈, 과자, 일품요리 등등이 되기까지 인류는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주고받고 이어왔다. 자원의 한계를 다만 감수할 뿐 아니라, 탐구하고 대응하는 가운데 교육도 문화도 인간다움도 태어났다. 음식은 사람답게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술이자 1만 년 농업사와 함께 이어진 문화의 꽃이다. 그 꽃은 갖가지 모양과 빛깔로 피어나 오늘에 이른다. 위도마다 대륙마다 민족 저마다 서로 다른 일상의 식생활은 지구 곳곳의 거대한 강줄기, 산맥, 또는 해양 못잖은 일대장관이다.
--- p.232, 「한식의 제일선에 있는 그 사람, 찬모」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