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프로이트ㅣ나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지한 대중이 보내는 비난의 화살에 상처받지 않았다. 유대인이라는 태생 역시 그의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박해와 모멸의 역사를 견디면서 수천년을 살아남지 않았는가! 물론 프로이트도 성공과 명예, 무엇보다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을 갈망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대중의 인정과 명예가 아니라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연구결과였다. --- p.24
윈스턴 처칠ㅣ용기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승부사
5월 13일, 하원에 출석한 처칠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했다. "제가 국민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피와 노고, 땀과 눈물뿐입니다. … 여러분은 제게 물을 것입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저는 대답하겠습니다.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바다와 땅과 하늘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동원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여러분은 또 물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냐고. 저는 한마디로 대답하겠습니다. 승리라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승리하는 것뿐이라고 말입니다." --- p.43
파블로 피카소ㅣ미노타우루스의 심장, 올빼미의 눈을 가진 남자
천재에게"당신은 어떻게 천재가 되었나요?"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은 마치 미인에게"당신은 어떻게 미인이 되었나요?" 라고 묻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던 피카소가 어떻게 그처럼 많은 그림을, 그처럼 빨리 그릴 수 있는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화폭에 무엇을 옮길지 사전에 모르고, 심지어 어떤 색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업하는 동안 내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림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자신을 공중에 던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언제 땅에 내려설지도 전혀 모른다." --- p.6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ㅣ뛰어난 지휘자, 그리고 더욱 탁월한 사업가
무엇보다도 카라얀은 상류층만의 음악, 철학과 심오함의 음악이던 클래식을 상업과 대중, 그리고 20세기적인 감각과 새로운 미감으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었다. '스타'카라얀은 자신의 수많은 음반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통해 클래식과 대중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카라얀을 통해 클래식 음악가들은'대중'이라는 무궁무진한 시장을 얻게 된 셈이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이 같은 일을 해준 대가로 카라얀이 동료들에게 감사인사 대신"고상하고 철학적인 클래식 본연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고향에서 푸대접 받는 것이 선지자의 운명이라면, 카라얀은 그 같은 선지자였다. --- p.95
이브 몽탕ㅣ아낌없이 사랑을 하고 간 남자
"돌이켜보면, 나를 일생 동안 움직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불안감이었다. 이런저런 인물 배역을 소화해내지 못할까봐 나는 불안했다. … 나는 항상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언제나 두려움에 휩싸여 살았다. 관객은 무대에 선 나, 확신에 차 보이는 키 큰 남자만 볼 뿐 내 속을 갉아먹고 있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한다. … 나는 활동을 멈춘 적이 없고, 진정한 휴가를 즐겨본 적도 없다." --- p.114
스티븐 호킹ㅣ그늘진 운명을 웃어넘기다
물론 호킹은 굳센 의지의 소유자인 동시에 드문 천재성을 갖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삶에 대한 낙천적인 가치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응용수학 및 이론물리학과의 학생이나 연구원들은 파티에서 밤새도록 전동휠체어를 빙빙 돌리며 노는 호킹 교수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 p.124
빌 클린턴ㅣ미국인들이 너무도 사랑하고, 또 미워한 남자
'자수성가한 남자'라는 어머니의 평가는 정확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배경도, 또 경제적 풍요나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아버지도 없었다. 조지타운에 입학할 당시 양아버지는 암으로 인해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지만, 빌은 어머니와 동생을 양아버지의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두고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이'자수성가한 남자'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일하며'정치가의 꿈'을 향해 한 발을 내딛게 된다. --- p.149
스티븐 스필버그ㅣ어른이 된 피터팬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들의 성공 요인은 스필버그의 독특하고도 천재적인 상상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놀라운 상상력, 아이처럼 순수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영화감독 스필버그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와 함께〈죠스〉를 촬영한 배우 리처드 드레이퍼스는 스필버그를 가리켜"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열두 살의 덩치 큰 소년 같다"고 말했다. 스필버그는 가끔 자신이'지구에 몰래 들어와 살게 된 착한 외계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어찌 보면 스필버그는 네버랜드에서 돌아와 어른으로 성장한 피터팬일지도 모른다. --- p.166
무라카미 하루키ㅣ죽기 살기로 쓰고 달린다
결국 이 남자의 쿨함은 진정한 쿨함이 아니다. 그는 그저 쿨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탄탄한 몸과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가진 이 남자는 사실 전심전력으로, 자신의 모든 영혼과 육체를 다 동원해서 소설 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이 힘들거나 고통스럽다고 엄살 부리지 않는다. 그는 다만"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달려가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달리는 것이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다시 한 번 쿨한 남자의 면모를 과시한다. --- p. 199
스티브 잡스ㅣ그에게 찾아온 세 번의 위기, 그리고 기회
한동안 인도를 떠돌던 스티브는 삭발한 머리에 노란색 법복을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은 차림새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은 스티브의 나머지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스티브는 불교도이자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억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크지 않은 집에서 살며 늘 검은 티셔츠와 리바이스501 청바지, 맨발에 캔버스 운동화를 고집하는 그의 절제된 생활은 이 같은 젊은 날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간결하고 금욕적인 삶의 방식은 그의 생활뿐만 아니라 아이맥과 아이팟 등 디자인 철학에까
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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