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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이별과 이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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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관 | 삼인 | 2016년 03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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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416g | 148*210*20mm
ISBN13 9788964361139
ISBN10 896436113X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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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전영관
다만 사랑에 열심이었다. 사랑을 사랑했던 거라고 돌아보기도 한다. 주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것이 다를 수 있음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시인으로 살면서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를 내고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라는 산문집도 냈다. 세월호의 아픔을 기록한 『슬퍼할 권리』를 냈다. 사랑에 대해 아는 척 건방을 떨기도 한다. 사랑에 관한 한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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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비가 오네요”라고 더는 젖을 것도 없이 흥건한 한 줄이었다. 그때 비구름이 합승해 찾아갈 걸 그랬다. 비 때문이라고 어깨를 털며 어색하게 웃어볼 걸 그랬다. 남녘으로부터 비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비와 함께 들이닥칠 것들을 감당할 수 없으니 비만 올라오기를 바란다. 기압골의 가파른 기울기에 미끄러지며 손을 저어도 잡히는 게 없다. 울기 좋은 밤인데 우산을 접어 가로등 허리나 툭툭 치며 걷는다. 그곳에 비온다는 소식에 나는 범람의 중심을 헤매는 밤이었다.
--- p.17

내생엔 뿌리에 진력하느라 사랑을 잃은 대나무는 되지 않으려네. 그대부터 붙들고 보는 으아리 넌출로 돌아오겠네. 서둘러 흰 꽃 팡팡 터뜨리며 함께 웃어보려네. 발에 걸린다는 어느 농부의 낫을 맞아도 그만이겠네.
--- p.39

갑각류처럼 뼈를 겉으로 꺼내놓았다면 포옹의 전류는 미미했을 테지. 그대의 손이 스칠 때마다 새로운 발전소가 하나씩 생겨났으니 나는 수시로 절망하는 폭포였다가 침잠에 든 호수였다가 때로는 흥얼거리는 여울인 거지. 우리가 갑각류였다면 견고함을 찬양했을까. 무늬란 사랑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한 상처라고 미소 지을까.
--- p.46

심장은 한 번도 고르게 뛴 적이 없다. 내일을 다가올 과거라며 시틋해했다. 산에서 바다를 보면 날개가 아쉬웠고 바다에 손을 담그면 아가미가 절실했다. 결국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고 수시로 몸을 바꾸는 울렁거림이다. 그러니 그대들의 현기증도 이해하겠다. 아니, 공감한다고 고백하련다. 시월이라 흔들리고 흔들리니까 시월이다.
--- p.69

당신밖에는 보이지 않네. 당신만 보고 살았던 까닭이라 힐난한다면 수긍하겠네. 습성이 천성으로 깊어지고 끝내는 숙명으로 굳어버려 나 이제 바꿀 수 없겠네. 당신 없으니 보이는 것도 없어 눈이 먼 셈이네. 풍경이 지워지고 햇살도 폭설도 보이지 않네. 얼음장 우는 소리가 실패한 나를 데려가려는 천군만마의 발굽소리로 들리네. 기꺼이 무기수로 영어의 몸이 되겠네. 수의엔 당신 이름을 새겨 넣겠네.
--- p.102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신호들이 모이는 계기판이다. 또한 눈빛으로 상대의 감정을 흔들 수 있으니 스위치도 된다. 내 입술로 상대의 혈류를 최대치까지 올리기도 하니까 이런 경우는 내 입술이 밸브이고 펌프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그중 얼마는 받아내지 못하고 서로의 전신이 스위치가 되고 때로는 고장 나기도 한다. 그대들은 상대의 둔감함에 절망한 적 없었나. 그대들은 진정 예민한 스위치라고 자신할 수 있겠나. 바람에 실려 오는 비 냄새를 아는가. 그니가 움츠릴 때 단지 추위 때문이라고만 생각한 건 아닌가. 스스로 손수건을 꺼내는 경우와 손수건을 건네줄 때까지 뚝뚝 눈물을 떨구는 차이에 대해 생각한 적 있는가.
--- p.119

젊고 어여쁜 여자를 만나면 서글프다. 연애지대로 함께 들어갈 비자를 발급받기 곤란하리란 상식 때문이다. 함께 밀입국하자고 손을 내밀까. 잔주름 무성한 눈꼬리로 웃어나 볼까. 욕심만큼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몰약도 없다. 향기는 맹렬한데 효능도 실감하지 못한 채 부작용만 떠안는다. 예보를 비웃는 이 눈은 어디서 오는가.
--- p.171

너도 무죄고 나도 면책이다. 다만 서로를 탐닉했을 뿐이다. 대리석보다 더 매끈한 나신을 보여주겠다며 속옷 자국이 지워질 때까지 욕조에서 나오지 않는 너를 기다렸다. 등은 하나만 켤까 환하게 다 밝힐까
몇 번이고 스위치를 만지작거렸다. 누운 내 눈 앞에 찰랑이는 네 머리칼을 움켜쥐며 전율했다. 뒤로 젖힐 때마다 윤곽을 드러낸 가슴까지 매만지고 싶어 손이 두 개는 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천 개의 손을 가졌더라도 모자랐을 것이다. …… 불 지른 내가 유죄인지 기름을 끼얹고 손짓한 네가 유죄인지 가늠할 일 없다.
--- p.182

누가 제 가슴을 버리고 갔다. 이별한 사내다. 무너지는 소리가 가까이로부터 멀리까지 들린다. 번개가 먹빛 하늘을 뻐개버린다. 늑골이 부러지면 나는 소리다. 대퇴골이 으스러지는 순간 터지는 빛이다. 분노와 서글픔과 허탈이 순서 없이 몰려온다. 우르르 쾅쾅 두드리니 분노다. 나무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니 역시 분노다. 사위를 적시니 서글픔이다. 바닥에 닿는 순간 순해지며 흐르기만 하니 또한 서글픔이다. 하르르 쏟아지는 이파리들은 허탈의 잔재들이다. 절망으로 들어가는 출입증이다. 가만두어도 저절로 비워지는 11월 밤에 감정의 조각들이 쏟아진다.
--- p.224

무릇 목숨 가진 것들은 약한 부위가 있습니다. 나무는 가지가 벌어지는 지점일 테고 잠자리는 예의 그 아스라한 날개일 테며 척추를 가진 짐승은 반대편 배 아니겠습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와 풀도 꽃을 피우고 암술에 수술이 닿으면 격렬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짐승들의 사랑은 후배위가 대부분이죠. 물론 고래는 서로를 마주본 채로 심해로부터 떠오르며 교미를 한답니다. 사람은 좀 더 철학적 분석이 가능합니다. 가장 약한 부분, 배를 맞대죠. 이게 섹스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포옹이라고 하죠. 어떻습니까. 이응 받침이 주는 울림소리가 끌어안은 두 사람의 박동처럼 입안에서 맴돌지 않습니까?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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