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니까, 아내니까, 며느리니까, 엄마니까. 특히 엄마가 되고 나면 참고, 다스리고, 기다리고, 희생해야 할 일이 참 많아집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참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호르몬의 균형이 무너지고, 피로가 쌓이고, 몸이 내 몸같이 느껴지지 않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우아’를 받치던 줄이, 그렇지 않아도 낡고 얇아지던 그 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건 사고 속에 그만 끊어져 나가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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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새 오래 참지를 못하겠어.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일에 그렇게 서럽고. 얼마 전에 내가 먹으려고 사다놓은 요구르트를 애들 아빠가 먹은 거야. 근데 그거 갖고 싸웠잖아.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서러운지. 나중에 생각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더라고.” 수십 년을 참아주던 남편이지만, 이제는 잠시도 참아줄 수 없는 시절이 온 것입니다. 그러니 예전에 참던 기억으로 지금도 무작정 참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면 가슴의 불길만 더 키우게 됩니다. “참어, 참어! 참아줘. 나한테 대들지 말구, 그냥 너희들이 이해해. 너희들 사춘기 때 나보다 심했어. 지나가더라. 나도 지나가겠지.” 이런 시절을 겪고 있는 여성이라면, 다소 이기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빠져나오려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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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가리켜 ‘간(肝)이 사는 집’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간은 피로를 풀어주는 고마운 장기입니다. 간이 풀어내는 양보다 빠르고 두껍게 피로가 쌓이면 그 집이 두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 먹여 살리고 공부시키고, 부모님 모시고…… 그 과정에서 마초 근성을 버리면서 남에게 머리를 조아릴 일도 있었겠지요. 눈물을 꿀떡 삼키고, 분을 삼키고, 흔한 표현으로 간 쓸개 내어놓고, 배알도 없는 놈처럼 굴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배는 두터워지고 남자의 상징은 물기를 잃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잃은 물기와 나온 배를 두고 아내와 딸에게 “매일 30분씩만 뛰면 배가 왜 나와?”라는 타박을 들으면 남자는 그야말로 갈 곳을 잃은 기분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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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었겠지요. 일주일, 열흘, 한 달이 지나도록 맑은 공기 한 번 넣어주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참으라고, 그깟 일이 뭐가 슬프냐고, 그까짓 거에 무서워하면 무슨 일을 하겠냐고 윽박지르며 살았겠지요. 이제 더 이상은 버틸 힘이 없어 겨우 눈물로 그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드라마에 울고 유행가에 훌쩍이지만 실은 눌러온 자신의 세월을 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책’이라고 쏘아붙이고 외면하는 것은 그의 수십 년 인생을 부정하는 것일 테지요. 고마운 마음으로 눈물을 닦아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듬어 어느 날엔가 울지 않고도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면 어떨까요? 어린 시절 좋아하던 엿 한 조각 입에 물고 동네 뒷산이라도 걸으며 웃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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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에도 많은 신경이 뻗쳐 있습니다. 그런데 사는 동안 수십 만 마디의 말을 하고 먹고, 뜨거운 물과, 찬 물과, 폭염과, 자외선과, 동짓달의 칼바람을 맞고, 친구들이랑 싸움박질 하느라 얻어터지고, 예뻐지겠다고 바르고 문지르고, 그러는 사이 감각이 무뎌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무뎌져야 살아남는 신경계의 시스템이 그렇게 얼굴 감각을 무디게 만든 것이겠죠.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역치가 계속 올라갑니다. 그런데 신경계뿐 아니라 마음의 역치점도 계속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고, 어지간한 일에는 슬프지 않고, 어지간한 일에는 웃지도 울지도 않고……. 그렇게 얼굴을 움직일 일은 점점 줄어듭니다. 얼굴 근육과 혀가 가장 섬세한 운동을 하는 근육이라는데, 움직이지는 않고 무뎌지기만 하니 어느 날 입가에 묻은 밥풀을 인지하지 못하는, 당연한 결과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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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칫솔을 밀어 넣어도 부은 목구멍까지 구겨 넣을 수는 없습니다. 위를 꺼내 흐르는 물에 헹궈내고 싶을 만큼 간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바로 구취를 가진 자신일 겁니다. 그래서 얼마간 포기하는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기 몸이 썩어가고 있다는 오싹한 절망감……. 그 감정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게으르다는 비난을 쏟아붓는 것은 잔인한 일이지 않을까요? 꽃향기 내뿜던 시절에 만나 사랑을 했던 부부는 그 기억으로 서로의 구취를 염려하고 끌어안아줄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튼튼하고 건강했던 부모의, 선배의, 상사의 젊음을 발판삼아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 세대라면 어르신들의 구취를 연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연민받을 시기를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p116
젊은 사람들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어깨에 내려앉은 비듬을 비웃고 외면하기 전에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잠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어른들도 그런 상태를 처음 겪고 있어 해결방법을 모르는 것이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게도 곧 그런 시간이 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에게 결코 그런 세월이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인생이 그렇게 뜻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소화 기능이 약한 자식 걱정으로 정성껏 냄새나는 기저귀를 갈아가며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 어깨 위의 비듬을 보았다면, 지저분하다고 고개를 돌리기 전에 화장대에 둥근 빗과 헤어드라이어를 놓아드리고, 식탁 위에 견과류를 주전부리로 놓아드리면 어떨까요? 어떻게 할 수 없이 생기는 비듬에 대해 우리는 서로 간 그런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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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툭하면 대청마루에 다리를 뻗고 앉아 주먹으로 두드리며, 한창 놀이에 빠져 있는 막내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가 말했던 그 저린 느낌을 뼈저리게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온종일 고무줄놀이를 한 탓에 다리가 뻐근해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던 시절을 지났습니다. 이 카페의 아가씨들처럼 ‘빼딱구두’라 불리던 하이힐을 신고 버스를 쫓아 달릴 수 있던 시절도 지났습니다. 언젠가 동네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무료 운동 강좌를 수강했다가 제자리걸음 10분 만에 나가떨어진 후로는 ‘나도 이제는 늙은 거야’라고 인정을 해버렸습니다. 제자리걸음은커녕 이젠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당기고 퉁퉁 붓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새삼 중늙은이 짓을 하며 구박을 받고 보니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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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꽃향기 피우며 세상에 왔다가 몹쓸 냄새를 남기고 가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꽃향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제 예쁜 것을 자랑하며 사랑으로 자라는 유년기가 있었다면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요하게 혼자의 시간을 가지는 세월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을 지는 저녁 시간에 숲길을 걷고 돌아와 무향 무취의 물로 몸을 씻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인생을 돌아보는 여유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비록 유아의 꽃향기를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성숙한 노년의 지혜가 담긴 향기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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