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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
중고도서

배한성

: 열정을 담은 천의 목소리

배한성 | 예문 | 2006년 11월 0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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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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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6년 1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47쪽 | 444g | 153*224*20mm
ISBN13 9788956590875
ISBN10 8956590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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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이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비교적 유복한 유년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 최고의 학교라고 인정받던 경기중학교와 서울대학교를 나온 아버지 그리고 서울여상을 나온 어머니 덕분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서울 장안에서도 알아주는 풍족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은 평화와 행복이 넘치던 우리 가정에도 재앙의 포탄을 뿌리고 지나갔다. 역사의 수레바퀴란 그토록 비정한 것이었다. 한 개인, 혹은 한 가족이 그들을 둘러싼 사회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영원히 무사태평할 것 같았던 우리 가정은 동족상잔의 참화로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풍비박산. 그 말이 꼭 맞았다. 당시 많은 인텔리 계층이 그랬던 것처럼 좌익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는 퇴각하는 인민군과 함께 월북하셨다. 남겨진 것은 손에 물 한 번 묻혀 본 적이 없었던 어머니와 어린 동생이었다. 이제 겨우 십대의 문턱을 넘어섰던 나는 집안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가족 부양의 책임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말로 소년가장이 된 것이다.
힘들고 암울했던 그 시절, 그나마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이 바로 어머니가 들려주는 영화이야기였다. (…) 어머니는 고된 피난생활에 지친 가운데에서도 내게 밤마다 처녀 시절 즐겨 보았던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생들이 모두 잠든 밤, 혹시라도 동생들이 깰까 봐 목소리를 낮춰 나지막이 풀어놓던 영화 속 세계는 잠깐이나마 암울한 현실을 잊게 했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는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를 정도로 나를 푹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성우의 길을 택한 것도 어쩌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싶다는 욕망이 그때부터 마음 속 깊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삶에서 ‘빵’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욕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에 못지않게 ‘예술’도 현실을 지탱시켜 주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를 통해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 pp.23 ~ 24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내가 세 번이나 더빙을 한 작품이다. 천재의 광기가 돋보이는 이 작품에서 모차르트로 분한 톰 헐츠의 신경질적인 연기는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 처음 개봉할 당시 명보극장에서 그 작품을 보고 이 천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죽기 전에 이 작품만큼은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웃음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모차르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모차르트의 웃음을 연구했다. 너무 시끄럽고 괴기스러워서 집에서 연습할 수 없어 차 안에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어떤 톤이 맞을까, 어떤 색을 입혀야 할까,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
녹음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함께 더빙에 참여했던 후배들도 모두 긴장한 채 온 힘을 다해 연기했다. 나 역신 혼신을 쏟아 나만의 모차르트를 연기했다. 녹음이 끝난 뒤에는 손에서 흘러나온 땀 때문에 푹 젖은 대본을 들고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눈은 뜨고 있지 못할 정도로 따가웠고 내 귓가에는 모차르트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연기를 마치고 난 후에도 시원하고 후련한 감정보다 어딘지 모르게 허탈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모차르트의 너무나 섬세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서 마치 나노(nano)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다시 더빙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네 번째, 다섯 번째 모차르트를 또다시 연기하고 싶다. 그때 발견하지 못했던 세세한 감정까지 잡아낼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다그치고 닦달하고 싶다.
--- pp.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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