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은 강하다. 불안을 이겨내자는 목소리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야 이길 수 있다. 고양시가 처음 선보인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안심카 선별진료소)는 전 국민이 희망을 가지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2020년 2월 26일 전국의 수많은 미디어와 CNN 등 세계 여러 언론이 구입가 1,500만 원 남짓의 몽골텐트 여러 개를 연이어 설치한, 다소 투박해 보이는 고양시 안심카 선별진료소를 주목했다. 그날 이후 지난 1년의 모든 순간이 2월 26일이었다. 2020년 2월26일은 세계가 두려움을 딛고 용기를 낸 첫날이었으며, 이후 시간은 헌신과 혁신의 역사였다.
--- p.6, 「프롤로그」 중에서
이재준 시장은 아직 국내에 첫 환자 보고가 나오기도 전인 1월 6일부터 방역대책반을 꾸려 감염 사태를 대비했던 일, 첫 번째 지역사회 환자를 맞아 지역 보건소에서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접촉자 조사, 시설방역, 자가격리 등을 처음으로 진행했던 일 등 코로나19에 대응했던 지난 1년에 대하여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매일 아침 9시에 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아직 누구도 코로나19에 대한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행정조치들을 결정·집행하고, 바이러스와의 속도 싸움에서 발목을 잡는 제도와 법,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소외되고 생계를 위협받게 된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한정된 자원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시도하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시민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수정 보완해 나갔던 과정들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시 행정이 종합예술 같다는 생각이 든다.
--- p.11, 「추천의 말」 중에서
우리나라는 2002년 사스,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초동대응의 중요성을 뼈아프게 배웠다. 초동대응은 실천이 어려울 뿐, 의외로 명확한 원칙 몇 개만 지키면 된다. 그중 하나는 ‘당장 가능한 일을 당장 하는 것’이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갖고, 고양시는 아무도 준비하지 못한 코로나19라는 격류를 가장 먼저 막는 도시가 되었다.
먼저 모든 부서를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했다. 제1부시장이 이끌었던 방역대책반은 첫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바로 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했다. 지자체 중에서는 가장 빠른 대응이었고, 감염병 위기경보단계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된 날보다도 하루 빨랐다. 이틀 뒤에는 의료인과 전문가가 가세한 민·관의료협의체도 구성했다. 필요한 조직을 빨리 구성하면서 초기 대응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 p.21~22, 「고양시 첫 번째 확진자 발생」 중에서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 속에서, 고양 안심카에는 이 호국의병에 버금가는 ‘방역의병’들이 자발적으로 응전했다. 먼저 30여 명의 보건소 직원들이 번갈아 진료소를 지켰다. 여기에 군인, 간호장교, 모범운전자회, 해병대, 자원봉사자까지 총 500여 명이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시민들은 음료, 간식, 마스크, 방호복 등 각종 격려물품을 보내왔다.
가장 감동을 주었던 것은 병원 문까지 닫고 선별진료소로 달려온 의사들이었다. 고양시의사회 소속 회원 65명이 자발적인 참여 의사를 밝혀왔고, 나중에는 너무 신청이 폭주해 대기 순번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회원들은 십시일반 모은 3,000만 원을 운영비용으로 보탰다. 다른 지자체들은 고양시의 사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폭발적인 참여는 심욱섭 고양시의사회 회장의 간절한 읍소 덕분이었다. 그는 회원들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전염병과의 사투에서 의사가 숨는 것은, 전쟁 때 군인이 숨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안심카 의료봉사를 독려했다.
--- p.59, 「드라이브 스루 진료의 시작, 고양 안심카」 중에서
전통시장의 QR코드 관련 문제점 속에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안심콜 출입관리시스템’이었다. 공용폰으로 대표 전화번호를 만들고, 방문자들이 각자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해서 휴대폰번호를 남긴다면 복잡한 QR코드를 입력할 필요가 없다. 8월 27일 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 내용을 제안했는데, 별도 시스템 없이 공용 전화번호만 만들면 끝이고 정보는 고양시 서버에 저장하면 되니 바로 시행이 가능했다. 9월 2일부터 고령층이 많은 전통시장 3곳과 일산 상점가 1곳에 안심콜 출입관리시스템을 시범 운영했다. 시장 입구는 한 곳만 개방하고, 가게에서 현금 결제하는 사람은 수기로 연락처를 남겨 사후 추적의 정확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방문자가 전통시장 입구 배너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면, 발신자의 전화번호와 출입시간이 자동으로 시청 서버에 저장된다. 신호음도 없다. 전화가 끊기면 출입인증에 성공한 것인데, 단 10초면 끝났다. 기록된 정보는 4주 후 자동 삭제되는데, 정보는 모두 시청 서버에 저장되기 때문에 유출 우려도 없었다.
--- p.118, 「셀프 소독을 도와드립니다」 중에서
고양시는 전국에서 요양원이 가장 많다. 560여 곳의 노인 요양시설에 9,900여 명이 입소해 있다. 때문에 요양시설 방역 정책도 다른 도시보다 한 달 정도 빨랐다. 2월 19일 요양시설장과 요양병원장 회의를 갖고, 23일부터는 매일 모니터링을 했다. 공무원이 매일 직접 방문할 수 없는 만큼, 각 노인요양시설 관리자의 책임 하에 매일 상황보고를 하도록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경우 보건소에서 조치에 나섰다.
감염자가 발생한 건물을 통째로 봉쇄하고 외부와 격리하는 것을 코호트 격리라 하는데, 고양시는 요양시설에 대해 사후 코호트 격리가 아닌 ‘사전 코호트 격리’를 가장 먼저 시도했다. 고양시는 첫 확진자 발생 이틀 후인 1월 28일부터 요양시설에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면서, 보호자나 가족까지 철저히 통제했다. 가족이 면회를 올 경우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별도로 면회장을 만들어서 투명유리를 사이에 두고 대면하게 했다. 식재료는 철저히 검사하고, 외부 반입물품도 소독 후 사용토록 했다.
--- p.198~199, 「요양 시설을 사수하라」 중에서
전쟁에서 주변 지형지물을 잘 활용하는 장수는 승리를 가져온다. K-방역은 모든 국가에 공통되는 성공 모델이 아니다. 우리 실정에 가장 잘 맞춘 방역모델이다. 초기 소수의 감염은 철저한 1대 1 역학조사를 통해 막았고, 소규모 집단감염은 빠른 선별검사와 진료를 통해 막아왔다. 심각단계로 갈수록 공공의 역할은 작아진다. 아무리 잘 갖춰진 병상과 의료진도 그 한계가 존재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병상 수가 적은 유럽 각국은 그 임계점에 빨리 봉착해 결국 의료시스템이 붕괴한 것이다. 대규모 집단유행에서 일상을 봉쇄하고, 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이 장기전에서는 오랫동안 버틸 수 없다. 피로감이 누적되고, 희망은 사그라진다.
남은 답은 시민공동체뿐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이 방역에 성공한 이유도 시민들에 있다. 민주적 시민의식과 적절한 통제 그리고 최소한의 지원이 조화를 이룰 때 방역은 성공한다. 어떤 방역도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감염 확률을 100에서 50으로 낮출 수만 있어도 대단한 성공이다. 시민의식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했다.
--- p.211, 「이기적 감염병과 이타적 공동체」 중에서
3월에 인권위에서 지침을 배포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것 이외에 발표된 동선은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지침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확진자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다보니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공개되는 것은 물론, 비난이나 조롱, 혐오의 대상이 되는 2차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의심 증상자가 사생활 노출을 꺼려해 자진신고를 망설이거나 검사를 기피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어떤 의도를 갖고 찾아오지 않았으며, 사람을 가리지 않는 투명한 전파자였다. 코로나19 그자체는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다른 공격과 혐오의 실체를 찾았다. 안타깝게도 이 혐오의 대상은 코로나19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피해자들이었다.
--- p.246, 「감염병보다 빠른 가짜뉴스」 중에서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민간에서 만들어야 한다. 공공이 만드는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적이고 단순한 업무다. 때문에 고양시는 그동안 직접적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구직자와 구인 기업을 매칭하거나, 취업준비생들의 역량 강화 교육에 집중해왔다. 스스로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도 마찬가지다.
반면 공공 일자리는 큰 장점도 갖고 있다. 투입된 노동력이 공공서비스가 되어 시민들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위기상황에서, 공공일자리는 빛을 발했다.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은 잠시 숨을 돌릴 일거리를 얻었고, 공공은 방역을 얻었고, 시민들은 서비스를 얻었다. 이 세 축의 조합이 고양 희망알바였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속에서, 단기적인 효과가 있는 한두 달 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서너 달 지속할 수 있는 일자리를 주는 것이 이들에게도 힘이 되고 고양시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과감한 일자리 뉴딜정책이 필요했다. 희망알바는 일자리라기보다는 기회이며 공공서비스였다.
--- p.264~265, 「6천 명 일자리의 기적, 희망알바」 중에서
사람을 우선한 정책으로 고양시 ‘양육비 한시적 지원조례’, ‘취약노동자 유급병가 지원조례’가 있다. 코로나19로 부모 두 분이 모두 직장을 잃었다. 어디서도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제까지는 철저히 개인 문제로 여겨졌다. 고양시는 그런 경우 9개월간의 양육비를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또 일용노동자, 비정규직 등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몸이 아파도, 코로나 증상이 있어도 병원 가기를 꺼렸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에도 “일당은 누가 대줄 거냐”며 화를 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취약노동자의 경우 병원진료 기록을 제출하면 1년에 최대 3일까지 일당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좋은 정책은 ‘사람’을 우선하겠다는 자세에서 나온다. 제아무리 수십 억 원의 수익이 발생했더라도 시민 누구도 생활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특정 집단의 배만 불린 사업일 뿐이다. 정책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사람’이다. 그리고 행정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 p.311,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