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돌포 : 그러니까, 우리한테 어떤 장면들을 준비해 보라든가 어떤 장면들을 공연하라고 제시해 준다든가 하는 게 전혀 없다고. 있긴 있지, 무슨 소린지 알아? 형식은 있어, 그런데 내용이 없다고! ?그래서 우린 엔리코 4세의 진짜 비밀 고문들보다 상황이 더 나빠. 왜냐면, 그래, 이거야, 아무도 그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연기하라고 맡기지 않았다는 거지. 그 친구들은 적어도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 그 친구들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표현했고, 때문에 표현하는 대로 행동이 나타난 거니까. 즉 그 친구들이 표현한 건 어떤 역할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생 그대로라고. 요컨대 내가 알기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자기들 이익을 챙기고, 관직을 팔아먹고 했던 그자들 인생 말이야. 한편 우린 여기서, 이 멋진 궁정 안에서, 그자들처럼 그렇게 옷을 차려입고 있긴 해… ?뭔가 해 보려고? 아니 전혀 안 해… 넌 마치 벽에 걸린 꼭두각시 같아, 꼭두각시는 누군가가 집어다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주고 몇 마디 말을 하게 만들 때까지 그저 기다릴 뿐이야.
--- pp.18-19
란돌포 : 아, 설명해 줄게, 잘 들어 봐! 내 생각이 맞을 거라고 믿는데. 그 사람한테 저것들은 이미지야. 이미지, 마치… 그래 그거, 마치 거울이 도로 내비치는 이미지들 같은 거, 알겠어? 지금 그 사람은 바로 저기 저 그림을 (엔리코 4세의 초상화를 가리킨다.) 표현하고 있어, 그 사람은 지금 이 왕실에서, 저 모습대로 살아 있는 거야. 이 왕실 역시 그 시대 모습이어야 하니까 분명 그 시대 스타일로 되어 있고. 뭐가 그리 놀랍니? 사람들이 너를 거울 앞에 세워 놓으면, 넌 살아 있는 바로 지금 네 모습을, 하지만 이렇게 옛날 의상 차림으로 있는 네 모습을 보지 않겠니? 자, 그러니까 저기에 마치 두 개의 거울이 있는 것과 같아, 그 두 개의 거울이 살아 있는 이미지들을 비쳐 주는 거지, 여기 이 세상 한가운데로. 염려 마, 이제 눈으로 보게 될 테니까, 우리랑 지내면서 알게 될 거야,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소생하는지!
--- pp.22-23
엔리코 4세 : 바로 그거야! 진짜처럼! 그렇게 해야만 진실이 더 이상 놀림거리가 되지 않아!
--- p.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