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간행해오는 박인환 전집 시리즈 중에서 올해는 『박인환 평론 전집』을 내놓는다. 그동안 『박인환 번역 전집』, 『박인환 시 전집』,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을 간행했다. 내년에는 『박인환 산문 전집』을 간행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2008년 『박인환 전집』을 간행한 뒤 보충 및 수정해온 작업이 마무리된다. 1940~50년대의 자료를 발굴하고 입력하고 읽어내는 일은 수월하지 않지만, 박인환의 작품 연구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에 보람을 느낀다.
『박인환 평론 전집』에 수록한 글은 총 61편이다. 그중에서 문학 분야의 글이 25편으로 가장 많다. 그다음으로 연극 4편, 여성 3편이고, 그 외에 영화를 비롯해 미술, 사진, 문화, 국제 정치, 기사 등을 수록했다. 신문기사를 평론으로 분류한 데는 이론의 여지가 있으나, 박인환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평적 의견을 제시했기에 포함했다. 영화 분야를 마련한 것은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을 간행한 이후 새로 발굴한 자료를 넣기 위해서였다.
---「책머리에」중에서
처음부터 시단을 부인하지 못한 나로서는 주관만 세워가지고 시단과 타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선 시단이 가장 젊은 세대의 시인의 독점 아래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쁜 반면 시의 시련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싶다. 안일하게 지낸다는 것이 생활에 위기를 빚어내듯이 시의 위기 직전에는 감상적인 안일성이 있다. 시단 시평이라는 제(題)를 들고 이러한 글을 쓰게 되었다. 재래적인 시인의 나열만으로, 작품의 인용구만으로서는 도저히 엄정한 성질의 시평이 되지 못한다. 시대 조류 속에서 똑바른 세계관과 참다운 시정신을 망각하고서는 현대시의 필수조건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시단 시평(詩壇時評)」중에서
다다이즘이 부서진 후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고 쉬르레알리스트의 혁신 시인들은 불란서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건설적인 노동자의 계급으로 달려갔다. 그것은 문학인뿐만이 아니고 화가 피카소, 알베르 마르케도 참가하였다. 루이 아라공, 엘뤼아르는 대독전(對獨戰)에 있어 영웅적인 투쟁을 하여온 초현실주의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반파시즘 항전(抗戰)이 격렬하였을 적에 나타난 J. P. 사르트르는 철학적 회의와 현대 인텔리겐치아의 취약한 정신과 사고(思考)의 입장에서 실존주의를 내세웠다. 앞으로 이 고독한 실존주의 주창자는 어떠한 방향으로 전진할 것인가. 혼란된 불란서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어 실존주의는 과연 존재하며 육체를 만들지? 예렌부르크가 말한 반동적인 무신론자들은 오늘 자유의 포물선상에서 괴기한 절망을 바라볼 날도 멀지 않았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중에서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영, 불, 이, 독 등 16개국의 무대에서 현대인에게 센세이셔널한 공감을 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영화는 고사하고 연극에 있어서만이라도 이만한 인기를 집중한 원인이 어디에 있나? 원작자 테네시 윌리엄스는 그의 소(小)자서전에도 써 있는 바와 같이 미국의 “북부 청교도의 피와 남부 왕당(王黨)의 피를 받고 태어난 순전한 아메리칸”이다.
따라서 그의 작중인물 중에도 흔히 상극되는 두 개의 인간형이 나오는데 이것은 역시 원작자가 타고 난 ‘피’가 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안에서는 이 상극적인 두 개의 타입이 주인공인 블랑시와 스탠리를 통하여 나오고 있으며, 윌리엄스는 미국의 극작가다운 강렬한 시추에이션을 두 개의 대립을 통하여 서막에서부터 전개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극이 테마 연극이나 문제극 같은 것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은 작자의 예민하고 엄격한 관찰력과 애절하고 아름다운 시정(詩情)에 의뢰되는 바 적지 않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무대는 작자가 1938년 이후 정착하고 있는 뉴올리언스이다. 이 거리가 작가에게 퍽 마음에 든 모양으로 그는 “미국의 어느 지방보다 쓸 재료를 제공하여준 곳”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현대인을 위한 연극」중에서
박인환은 1948년 4월에 간행된 『신시론』 제1집에 「시단 시평」을 발표한 이후 왕성하게 평론 활동을 했다. 「시단 시평」은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시 운동의 근거와 지향을 나타내었다. 해방 이후 시인들이 쓴 시가 현실적이면서도 시대를 극복하는 작품이 드물다고 진단하고, “시대 조류 속에서 똑바른 세계관과 참다운 시 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창조 정신이란 곧 인민의 것”이라는 인식도 보여주었다.
박인환은 「김기림 시집 『새노래』」(『조선일보』, 1948. 7. 22), 「김기림 장시 『기상도』 전망」(『신세대』, 1949. 1)이란 평론에서 보듯이 김기림의 시 세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새노래』에 대해서는 유쾌한 매혹의 시집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하면서도 “지적 정서를 아직도 상실하지 않은 시인 김기림 씨는 시사(時事) 문제를 정리 못 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기한 내일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상도』에 대해서는 시의 형식과 사고를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의 복합작용으로서 반작용을 일으켜놓고 새로운 정통을 발견하려고 노력했으므로 가장 국제적인 조선 시가 되었다고 호평했다. 보수적인 시의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난 요소의 혁신과 창조를 통해 정치, 경제, 과학, 문학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평가한 것이다. (중략)
박인환은 해외 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 문예사조, 시인과 작가, 그들의 작품 등을 소개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신천지』, 1948)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인 불안과 동요 속에서 일어난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문학의 운동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고찰했다. 키르케고르가 인간 실존의 불안과 공포로부터의 구원을 신에서 찾았지만, 사르트르는 행동에 의한 자유에서 찾은 점을 높게 평가했다. (중략)
박인환은 시 창작과 소설 등의 번역뿐만 아니라 영화평론, 연극평론, 문학평론, 미술평론, 사진평론, 사회평론 등 다양한 평론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그의 평론들은 박학다식한 면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고,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평론가 박인환의 열정과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작품 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