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보았던 책들은 여행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주 지적인 것에는 소양도 관심도 별로 없었고, 무협지나 연작소설은 한 번 읽으면 금요일뿐만 아니라 주말까지 감당할 수 없이 스케줄을 잠식할 것이 뻔했다. 에세이들은 읽다 보니 그게 그것 같았다.
반면 여행책들은, 여는 순간부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줄 것만 같은 환상이 있었다. 직접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비행기를 보거나 공항에서 누군가를 배웅하면 느끼는 기분. 금요일 오전 반나절 세계여행. 휴대전화기를 끄고, 밥을 먹지 않고도 떠날 수 있는 여행. 그」중에서도 인도는 대학입시와 고시 공부에 찌든 나를 정말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줄 것 같은 곳이었다….
---「‘왜 인도였을까?’」중에서
예전 유럽 여행 때도 삼등석 침대에 익숙해진 나였고, 인도에서도 몇 차례 삼등석 침대칸을 탔지만, 유럽보다 쿠션이 딱딱하다는 정도일 뿐 그래도 견딜 만하였다. 그렇지만 이건 내 침대칸을 오롯이 나 혼자 쓸 때의 이야기였다. 무슨 외계 생명체가 인류를 침범하는 영화와 같이 순례객들이 삼등석 침대칸에 하나둘씩 들어와 바닥에 자리를 잡고, 바닥이 꽉 차니 아래서부터 1층, 2층, 3층을 점령해 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 제발. 피부병도 미칠 것 같은데. 동행 때문에도 거의 이성을 잃은 상황인데. 저 순례객들까지 내게 와서 살을 비빈다고! 그렇지만 내게는 이들을 물리칠 기운도 없었고, 무엇보다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자칫 이들에게 화를 냈다가 어떠한 집단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고.
그들은 기어코 내가 누워있던 3층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아…. 내게 일어나란 말은 안 했지만, 그 몸 하나를 누일까 말까 한 침대 한 칸에 열 명이 겹치고 매달리고 앉고 하다 보니 자연히 내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슨 자벌레처럼 벽에 착 붙어서 뒤척일 여유도 없어졌다.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자리를 뺏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 사람들을 뚫고 나간다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바닥은 전시상황이었다. 덥고, 습하고. 무엇보다 냄새가 미칠 지경이었다. 살이 닿는 것은 더 끔찍했다. 이 나라 물 한 번 잘못 마시고 이 꼴이 났는데! 몇 달 동안 씻지도 않은 사람들이 떼로 나한테 몸을 비비고 있었다….신에게 공양을 드리러 가면서 나를 제물로 쓸 작정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라나시: 헤리따지 하스삐딸’」중에서
어……………………이게 무슨 일이지?
카메라가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와 가방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쇼핑센터나 카페 근거 길거리에도 없었다. 단체 이동 차량에도, 카페에도, 숙소에도 어디도 없었다. 내 사진뿐만 아니라 친구와 다른 사람들 사진까지 전부 이걸로 찍었는데……황망하면서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추억까지 모조리 날려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또 치기 어린 객기를 부려 사고 쳤구나……라는.
친구의 괜찮다는 위로가 들리지 않았다. 그날 호주와 가나 경기를 어떻게 봤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함과 허탈한 마음으로 독한 위스키를 잔뜩 들이켜고 나서야 술기운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요하네스버그: 카메라는 돌고 돈다’」중에서
가까이서 본 분리장벽은 막막함이었다. 뚫려 있는 하늘로 공기 한 조각조차 장벽을 넘어갈 수 없는 위압을 주고 있었다. 완벽한 단절이었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었구나. 커다란 수용소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좌절을 맛보는 기분은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역사의 순환과 인과가 단단히 꼬인 매듭이 되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절망적인 느낌이었다.
장벽에는 온갖 낙서가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과 서구권을 저주하는 문구, 피의 보복을 다짐한 문구, 해골이나 무기 그림들, 서구권에 도움을 청하는 내용들. 하지만 그중에 가장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peace’라고 쓰인 그림이었다. 평화. 너무 당연하지만, 방법을 도무지 찾기 어려운 귀결. 욕망, 신뢰의 부족, 불안이 결합하여 손에 얻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외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베들레헴: Peace‘」중에서
“세우라고. 이 XXX!!”
“뭐?!”
“당장 세워! 이 XXX!!”
요르단의 황당한 시스템과 이런 X에게 걸렸다는 분노가 폭발하면서 나 역시 이성을 잃고 택시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로 조수석 앞부분을 쿵쿵 그러고 난리를 부리고 있었더니,
‘끼익~’
이 X가 갑자기 길에서 차를 틀어서 사막 속으로 들어가 차를 세우더니, 갑자기 운전석 옆에서 뭔가를 꺼냈다. 과일 깎는 데 쓸 법한 길이의, 그렇지만 아랍의 문양과 혼을 담은 듯한, 초승달 모양의 칼이었다. 쨍쨍한 햇빛에 칼날이 더욱 반짝거리는.
“너, 이 XX 죽고 싶어! 내가 이 사막에서 너 하나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너 여기서 죽여버리면 누가 알기나 할 것 같아. 진짜 죽고 싶어! 이 XX.”
---「‘페트라/암만: 아, 요르단. 요르단. 요르단’」중에서
지쳐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 개인 시간이 거의 없음에도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 로펌 변호사라고 해서 경제적 안정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도 자전거를 타고 비행기보다 빨리 갈 수는 없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판검사 임관을 권유하였는지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으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생각들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자유가 너무 그리웠다. 쫓기듯 혼나고 또 일로 돌아가는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세렝게티(Serengeti).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가 아무런 걱정 없이 뛰고 싶어했던, 세계에서 가장 넓은 초원. 여행 후기들을 읽어보니 휴대전화기가 잘 터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더 좋았다. 잠깐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
초원에 와 보기 전에는 사자가 부러웠었다. 사회에 나오자 출생은 평등해도 출신은 같지 않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집안, 넉넉한 경제적 여건, 많은 지원. 그들이 사자라면 나는 잠을 잘 때도 서서 자야 하는 기린쯤 되어 보였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할까? 나도 사자처럼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휴가 때라도 사자에 나 자신을 이입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초원에서 본 사자의 삶은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사자뿐만 아니라, 생태계 먹이사슬 상층에 있다는 다른 동물들도 비슷했다. 치타는 잡은 먹이를 빼앗길까 나무에 걸어 놓았으며, 하이에나는 남은 사체들을 찾아 끊임없이 두리번거린다. 다치거나 허약한 자는 여지없이 무리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처절하였다.
---「‘세렝게티: 배고픈 사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