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군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했을 때 다하우에 있었다. 죽음의 열차 시신더미 속에서 살아났던 폴란드인 남자가 여전히 반나체 차림으로 의사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폴란드어로 말했는데 속삭임보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폴란드인 의사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브라보!” 나는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전쟁이 끝났다. 독일이 졌다.” 우리는 저주받은 죽음의 수용소 안에 있는 그 방에 둘러앉았다.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다하우가 승리의 소식을 듣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전쟁은 다하우와 다하우 같은 다른 모든 곳들, 그리고 다하우가 상징하는 모든 것을 영원히 없애기 위한 것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하우, 죽음의 수용소’(마사 겔혼 씀)」중에서
매카시 상원의원의 방법에 반대하는 사람이든 찬성하는 사람이든 침묵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유산과 역사를 부인할 수는 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책무를 포기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 국가로서 우리는 어린 나이에 상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렇듯이, 우리가 자유의 수호자임을 스스로 선언합니다. 그러나 나라 안에서 자유를 저버리면서 밖에서 자유를 수호할 수는 없습니다. 위스콘신 출신의 초선 상원의원의 행동이 해외의 우리 동맹들에게 불안과 실망을 안겨준 반면 우리의 적들에게는 상당한 위안을 선사했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정말 그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는 이 같은 공포 상황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시저가 옳았습니다. “사랑하는 브루투스, 잘못은 우리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네.”
---「‘매카시즘의 광기’(에드워드 머로 씀)」중에서
나는 이 같은 ‘정상’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모노롬 호텔에서 열린 ‘디스코 나이트’에서 알게 되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댄스홀 같은 방 한쪽에 앉고, 남자들은 맞은편에 앉았다. 아주 재미있었는데, 특히 옆방의 재즈 밴드가 ‘사보이에서 스톰프를 추다’를 연주할 때는 흥이 넘쳐났다. 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크메르 가수 신 시사뭇의 카세트가 연주되자 사람들은 춤을 멈추고 창가로 걸어가서 울기 시작했다. 시사뭇은 자기 무덤을 파고 나서 피와 죽음에 관한 크메르 루주 찬가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매를 맞고 죽었다.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폭격과 대학살과 봉쇄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노력을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러러보아야 한다는 것을. 적어도 우리의 대표자들이 그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 기꺼이 돕기를 바랐다.
---「‘캄보디아의 조용한 죽음’(존 필저)」중에서
우리는 공군 비행사들이 평화로운 주민들을 폭격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마을 외곽의 강물에 폭탄을 떨어뜨린 사례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정반대의 것들도 알고 있다. 로스토프-바쿠 고속도로를 따라 전쟁 지역에서 달아나는 피난민들을 총격하고 한 번, 두 번, 심지어는 세 번이나 다시 날아와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총격한 비행사들도 있다. 전쟁은 빠르게 두 얼굴을 익혀가고 있고, 잠재적인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이 전쟁의 ‘친절한’ 얼굴을 마주하길 바라고 기도한다.
---「‘체첸, 더러운 전쟁’(안나 폴리코프스카야 씀)」중에서
포르투갈령 티모르 상황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되어가는 대로 놔두겠다는 것이 미국의 분명한 입장으로 생각된다. 뉴섬은 인도네시아가 개입을 한다면 ‘효과적으로 재빠르게 하되 우리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하길 바란다고 빈정대듯 내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포르투갈령 티모르 상황에 호주의 국가 방위의 이익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호주 광물에너지부의 이익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외무부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광물에너지부는 현재의 해양경계 문제에 관심이 많을 것이고, 우리는 포르투갈이나 독립한 티모르보다는 인도네시아와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내가 원칙보다는 실용을 중시한 입장을 권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것이 국익과 외교 정책의 본질이다.
---「‘티모르 보고서’(브라이언투히, 매리언 윌킨슨 씀)」중에서
처음에 우리는 대학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파리 떼가 어김없이 입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지만, 곧 코도 감싸야 했다. 시돈(Sidon: 베이루트 남쪽의 항구 도시로 12~13세기에 십자군 원정의 주요 격전장이었다)의 죽은 이 냄새가 역겨웠다면, 샤틸라의 악취는 우리를 토하게 만들었다. 곧 우리도 죽은 이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살인자들?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를 쓸어버리겠다”고 하면서 난민수용소들에 투입한 기독교 민병대원들?이 막 떠난 뒤였다. 아직도 땅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곳도 많았다. 우리는 1백여 명의 시신을 헤아린 다음 세는 것을 멈췄다. 골목 어디에나 여자와 아이, 젊은이, 노인들의 주검이 칼에 찔려 죽거나 총격을 당해 죽은 자리에 끔찍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테러리스트’(로버트 피스크 씀)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언제나 모든 땅을 자신들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들은 지금 히브리어 이름이 붙여진 들판을 되찾겠다는 열망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계속된 상실의 첫 고리인 추방의 고통을 잊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자지구에서 살면서, 그들은 마음속 바람을 평화로운 정치적 해결의 필요와 구분할 능력이 있고 또 그러길 진심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라를 공유할 용의가 있음을 설명하면서 솔로몬 왕의 판결을 암시하여 “어쨌든 우리는 아이들의 엄마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궁극의 해결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 땅에 살면서 이곳을 고향이라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기본적 권리들과 자격을 지닌 사람들로 정중하게 대우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점령된 땅의 낮과밤’(아미라 하스 씀)에서
암과 백혈병과 악성 종양이 걸프 전쟁 이후 급증했는데, 전문가에 따르면 주로 영국과 미국이 사용한 열화우라늄(DU) 무기가 나라 전체에 방사성 먼지를 퍼뜨렸으며 그것이 지하수면과 흙을 통해 먹이사슬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스라에서 우리는 조용한 홀로코스트를 목도한다. 굶주림과 다중 선천성기형, 암, 심장병, 나병, 수인성 질병 등이 바스라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따라붙는 죽음의 그림자들이다. 유엔 사무차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7월에 ‘무차별 파괴’에 항의하여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 자리에서 물러난 데니스 할리데이는 “달마다 6,000~7,000명의 다섯 살 미만의 아이들이 통상금지와 관련된 이유로 죽어간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전쟁’(펠리시티 아버스넛 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