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기나긴 역사는 신들이 정말로 자기네 백성들을 저버릴 수 있다는 걸 입증해줬다. 이집트 인들이 유일신의 편에 서서 전통적인 신들을 의도적으로 거부했던 시대인 단명한 아마르나 시대는 하나의 실험이었으며, 이후 이집트 사람들은 다시는 그런 실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 왕의 통치력이 제힘을 발휘했던 고왕국ㆍ중왕국ㆍ신왕국 시대를 가르는 역할을 하는 혼란스런 중간기들은, 신이 없고 왕이 없는 나라에 어떤 재앙이 밀어달칠 수 있는지를 좀더 분명하게 보여줬으며, 작가들은 그런 재앙을 목도하고 깊은 슬픔과 비탄에 빠지곤 했다. "보라, 도처에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여자들은 불임상태가 되어 수태도 하지 못한다.... 사방이 피바다다.... 부자들은 절망에 빠지고 가난한 자들은 기뻐 날뛰고 있다........
--- P.29
이집트 왕조가 막 자리잡기 시작한 초창기에서만 우리는 왕을 위해 하인들과 노예들을 의도적으로 희생시켰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집트 초창기 군주의 무덤은 보조적인 무덤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무덤들에는 높은 직급의 신하들이 묻힌 게 아니라, 왕의 측근들, 곧 하인과 후궁, 난쟁이, 애완용 개들이 묻혀 있었다. 우리는 황의 시중을 들었던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사후의 삶에서도 계속 주인의 시중을 들 수 있게끔 살해당했거나 자살하라고 강요당했을 수는 있다. 이와 비견되는 사례로 메소코파미아 우르에 있는 '거대한 죽음의 구덩이' 를 들 수 있다.
--- P.114
오늘날 일괄해서 <무덤 절도 파피루스들>로 알려진 람세스 왕들 치세 후기의 재판기록들은 바로 이런 불안정한 시대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다. 절도 용의자들의 이름, 그들이 훔친 품목들의 목록, 신전과 묘지들에 대한 조사보고서들이 망라된 이 기록들은 람세스 9세로부터 11세에 이르는 시대에 왕가의 네크로폴리스와 그 일대에서 저질러진 범죄들 가운데서 사건이 해결된 극히 일부의 사례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 p.190
여자들은 정절을 지켜야 했던 반면 남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고고학적인 기록들에는 매춘에 관한 대목이 잘 나오지 않는데, 이는 수긍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매춘은 합법적인 거래로 간주되었으며, <투린 에로틱 파피루스>에 나오는 아름다운 창녀가 그런일에 종사하는 유일한 여자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 작가들은 젊은이들에게 품행이 방정하지 않은 여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훈계하고, 또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다 말고 딴전을 팔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멀리하라고 조언했지만, 과연 그 젊은이들이 그들의 마을 귀담아 들었을지는 의문이다.
--- pp.236~237
여기서부터 진짜 추리가 시작된다. 출혈 부위로 추정되는 곳은 그냥 우연히 넘어졌을 경우에는 좀처럼 타격을 입을 성싶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의적인 것이든 우연한 것이든 간에 폭력에 의해 생긴 것인 듯하다. 그런데 그것이 살해의 의도를 실증해주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부상 부위 자체는 타격을 가하기 힘든 자리에 위치해 있다. 투탕카멘 왕은 밥 브라이어 박사가 말하는 것처럼 '모로, 혹은 반듯하게 누워서 자고 있는 동안' 위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 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