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매듭 유물을 그대로 재현해서 만들며 이 유물을 가졌던 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상상하며 즐기는 일도 매듭의 재미 중 하나이다. 시댁에 있는 안경집에 매듭을 세심하게 맺은 작품이 있다. 시어머님께서 아끼시던 안경집을 선뜻 내주어 작품을 하게 해주신 것도 고마웠지만, 그 안경집에 대해 설명해주시던 말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시아버님께서 모본단에 글을 써주신 것에 시어머님께서 수를 놓으셔서 시할아버님에게 만들어드린 안경집이었다. 안경집을 보다가 조선시대 선비들의 매듭 장신구 일 습을 할 생각이 떠올라 도포끈, 귀주머니, 부채 끝에 다는 선추, 호패 등을 만들어보았다. 지금의 주민등록증 대신 호패를 가지고 다니게 하면 어떨 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양복에는 역시 안 어울릴 것 같다. 요즘 남자들은 정장에 넥타이, 셔츠, 커프스 정도로나 멋을 내지만, 조선시대의 남자들은 구석구석 얼마나 멋지게 치장하고 다녔는지 모른다. 지금 남아 있는 유물을 보거나 혜원의 풍속도에 나오는 그 시대 한량들의 옷, 장신구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남자들의 도포끈도 색상이 화려해서 당상관은 도홍띠, 선비들은 초록띠, 주사나 참봉은 회색띠, 초시는 보라색띠를 사용했다. 조상들의 물건들을 만지고 볼 때마다 그 분들은 참 멋을 알고 생활하신 것 같아, 그것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참 괜찮은 일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조선시대의 남자나 여자 장신구에도 매듭이 많이 사용되었다. 남자용 도포끈과 술은 외출용 의상인 도포의 모양을 끝맺음해주었으며, 지금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도 술과 끈목이 있어야 허리끈에 달 수 있었다. 또 벼슬을 한 사람만이 달 수 있었던 부채의 선추(扇錘) 매듭, 주머니 끈술, 안경집 끈목, 붓을 넣던 주머니, 담배쌈지 등 다양한 매듭과 술이 필요했다. 무관들의 매듭 장식도 많았는데 칼이나 검, 또는 대장기, 화약통에도 매듭과 술이 장식되어야 했었다. 여자용 매듭에는 노리개, 귀걸이술, 주머니 매듭, 조바위, 남바위에 장식했던 잔술, 아얌의 술장식, 허리끈, 향을 넣던 향낭, 결혼을 앞둔 처녀들이 준비하던 수저집 매듭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악기에는 장식으로 유소(流蘇, 깃발이나 가마 따위에 달던 술과 매듭)를 달았고 금관조복에는 딸기술이나 후수(後綬, 옛 복식 뒤에 드리우는 비단 끈으로 짠 장식) 같은 것들을 달았다.
++++++++++
매듭의 이름은 모두 우리가 늘 보고 사용하는 온갖 물건, 꽃, 곤충에서 따온 것이다. 즉 생강, 나비, 잠자리, 국화, 벌, 병아리, 꼰디기, 매미, 콩, 적삼, 단추, 연꽃 봉오리 등이며, 석가무늬의 ‘석’자를 따서 지은 석씨매듭은 주로 절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매듭의 명칭에서도 우리의 전통 매듭이 사람들의 생활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생쪽매듭은 작은 원이 3개 있는 모습이 생강 모양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구나 남원지방에서는 정자(井字)매듭이라 불렀다. 가지방석, 석씨, 삼정자, 장구, 병아리, 벌매듭 등의 기본이 되는 매듭이며, 오른쪽 끈목만 사용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계속해서 옆으로 맺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한자(壽, 福)를 매듭으로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사색판매듭이나 난간매듭도 같은 원리이다.
++++++++++
가락지매듭은 동?서양 모두에서 사용되는 매듭으로 가락지처럼 둥글게 만들거나 펼쳐서 꽃 모양으로 만들어 커튼 장식에 사용한다. 보색이 되는 색으로 만들어 구슬을 끼워놓은 것 같은 장식 효과를 내기도 하며, 끈목이 짧아 다른 끈목으로 이어서 맺을 때 매듭과 매듭 사이의 연결 부분을 가려주는 역할도 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