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어째서 그렇게 다양한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들이 육상생태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이유는 뭘까? 과학자들은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데 골몰해 왔다. 곤충의 번성을 둘러싼 이야기는 수억 년 지구사와 맞물려 있으며, 그 실마리는 암석, 숲, 곤충의 몸에 드문드문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나 이 기록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며, 오직 읽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읽힐 것이다. --- p.16
지금까지 수백 종의 곤충들이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되었고, 지난 한 세기 동안 특정 해충들을 박멸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멸종한 곤충은 단 한 종도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우리가 박멸하고 싶어 했던 곤충들(말라리아 모기, 몸니, 쥐벼룩, 집파리 등)은 집중포화를 받고도 멀쩡히 살아남았는데, 인간의 환경파괴로 인해 수백만 종의 애꿎은 열대곤충들이 멸종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는 살충제보다 환경파괴가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곤충의 종류가 100만 가지 이상이라고 하면 매우 인상적으로 들린다. 우리는 평생 100만 가지 물건을 가져보지 못했고 가져볼 일도 없으며, 일상생활에서 100만까지 세어볼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충의 종 다양성이 대단한 것은 천문학적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곤충의 종 다양성을 논할 때 그 독특함과 상이함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 p.25
캄브리아기는 일반적으로 ‘무척추동물의 시대’라는 별명으로 불려 왔다. 그건 애초에 누군가가 우리의 무척추동물 조상을 찬양하려고 붙인 이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척추동물 조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이름일 것이다. 내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캄브리아기를 ‘절지동물의 시대’나 ‘삼엽충의 시대’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사실 그렇게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무척추동물의 시대’라는 말은 ‘무척추동물이 번성하던 시대’보다 ‘척추동물이 없었던 시대’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사실 ‘무척추동물의 시대’라는 조어법에는 ‘외골격의 진화’보다 ‘척추동물의 부존재不存在’를 강조함으로써, 절지동물의 성공을 과소평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p.45
동물이 처음으로 육지에 진출한 사건은 일반적으로 4억 4,400만 년 전부터 4억 1,900만 년 전 사이의 실루리아기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육지에 동물이 존재했던 증거는 존재한다. 심지어 ‘육지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는 일단, 육상동물과 육상식물의 화석이 처음으로 풍부하게 발견되는 시기가 실루리아기라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실루리아기 말기가 되면, 최소한 주변부의 습지에서 육상동물과 육상식물이 모여 육상생태계를 형성한다. 비록 단순하기는 하지만, 이 생태계는 궁극적으로 모든 육상생물계를 탄생시키는 모태가 된다. --- p.78
늘 느끼는 거지만, 인간의 척추동물 조상들은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나 데본기의 해변가를 거닌다면, 나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산호 부스러기를 주워 호주머니에 한가득 집어넣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그따위 돌멩이로 뭘 하겠냐고? 가만히 눈을 감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기 바란다. 나는 곧장 바다로 달려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폐어나 양서류를 겨냥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며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오지 말고 그냥 거기서 살아!” 양서류나 폐어와 같은 훼방꾼들은 굳이 육지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육지는 그들이 없어도 절지동물과 식물들이 잘 꾸려 나갈 수 있었을 테니까. --- p.111
쥐라기 동안 로라시아와 곤드와나 대륙이 더욱 분리되면서, 해안선이 증가함과 동시에 기후가 습윤해졌다. 이에 따라 트라이아스기의 사막들이 촉촉한 숲으로 바뀌고, 삼나무와 비슷한 침엽수들이 디플로도쿠스보다 더 높이 치솟았다. 고사리가 우거진 초원과 은행나무 숲에서는 거대한 공룡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활보했지만,
쥐라기의 종 다양화를 주도한 것은 딱정벌레, 말벌, 파리 등의 곤충들이었다. 그들은 식물의 잎과 가지와 줄기에서(기생말벌), 흙더미 속에서(흰개미), 공룡과 새의 깃털 속에서(새이) 쥐라기 숲의 숨은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악기 초기로 접어들며, 중생대 숲 속에서는 곤충과 식물이 손을 잡고 화려한 새 시대의 막을 열었다. 최초의 꽃들이 등장하면서, 최초의 벌, 꽃등에, 나비도 등장했다. 최초의 식물이 육지를 뒤덮은 지 무려 3억 년 만에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 p.258
백악기의 세상은 아름다웠다. 꽃이 만개한 초원에 나비, 벌, 새가 날아다니고, 숲에서는 공룡들이 활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아름다움이 파괴되었다. 공룡들이 충돌 즉시 죽었는지, 얼마 동안 버티다 죽었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6,600만 년 전 북아메리카 어딘가에서 최후의 티라노사우루스
가 숨을 거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얼마 후 인근의 딱정벌레와 파리들이 몰려들어 공룡의 시체를 파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중생대의 종말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은 ‘지구에 충돌하는 소행성’이 아니라 ‘공룡의 사체에 내려앉은 딱정벌레와 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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