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늘 그런 공포가 있었어요. 그래서 글씨 쓰는 것도 잘 하지 않았어요. 연필을 쥐고 글을 쓰려면 굉장히 많은 관절을 써야 하잖아요. 손가락 마디마디, 손목의 복잡한 관절, 그리고 팔꿈치…… 정확히 그게 그것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연필로 글씨 쓰는 것조차 꺼렸던 것 같아요. 책을 그저 눈으로 보고 소화하려 했어요.” 줄 하나 긋지 않은 깨끗한 책은 실은 현묵이 가진 병의 무게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 p.46~47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열여섯 살 현묵은 선수를 빼앗기기 싫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이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너의 꿈이 뭐냐 고 묻는다면,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죠.”
--- p.66
상황이 발생하면 혈액 응고 인자를 투약한다. 점차 지혈이 된다. 강한 진통제와 소염제로 염증에 대응한다. 염증이 가라앉으면 물리치료 등을 통해 관절이 훼손되는 것을 막는다. “후유증이 남지 않게 대응해야 한다는 이런 설명이 저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게 된 사건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고관절 출혈이 멎는다 해도 내 육체는 더 좋아지지 않을 거란 냉엄한 현실 인식…… 그런 것이죠. 열여섯이었는데.”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혈우병 환자의 수명이 일반인보다 크게 짧은 건 아니에요. 죽을 만큼 아플 때는 많아도 실제로 죽기는 쉽지 않죠.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죠.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파서 잠이 안 오니까 더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 p.69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는 늘 침대 위에서 끝났어요. 그렇다고 해도 아프다는 것으로 나를 정의하거나, 무엇을 못 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못 했다면 그것은 나태함 때문이에요. 장애 때문이 아니죠.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는 상태였어요. 혈우병도 장애도 저의 주인은 아니었어요.”
현묵의 말을 들으며 ‘정말 저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 걸까, 저 말은 진심일까’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묵은 ‘아무리 아파도 고통의 중간에 틈은 있었으므로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 그 틈이 너무나 짧았지만 사실 그건 나태함만 제거하면 별 문제가 아니었다고 현묵은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극강의 내출혈이 양쪽 고관절과 장기를 공격한 2015년 하반기, 현묵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기어코 읽어 내려갔다. 아프거나 혹은 읽거나. 그러다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봤고. 병원에 실려 간 중에도 카페 정팅에 참여함으로써 멤버가 됐다.
고관절 훼손이 심해져 의자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아졌기 때문에 현묵은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배 위에 올려 놓고 거의 모든 일을 처리했다. 이 자세가 목에 부담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옆으로 누워서 하기도 했다. 노트북을 ㄱ자로 꺾어 옆으로 세우면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느리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
--- p.83~84
이렇게 번역 업데이트는 수년간 이어졌다.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 실종되기도 했으므로 어떨 땐 두 달 만에 글이 올라 오는 일도 있었지만 현묵은 멈추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게시판을 본 사람은 이것이 오직 현묵 혼자의 미션이고 홀로 뛰는 마라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묵은 2016 년부터 2019년까지 총 93건의 번역 원고를 올렸다. 놀라운 지구력으로, 씩씩하게 탑을 쌓으며 암흑기를 걸어왔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전진했지만 그 결과물은 스트라이더다운 것이었다.
--- p.87
나는 테시가 현묵에게 톨키니스트가 되겠다는 동기 부여 그 이상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공자가 말한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쳐 주기도 했겠으나, 때론 가장 세속적인 목표를 제시 한 것은 아니었을까. 현묵은 카페 ‘중간계로의 여행’에 존재하는 몇몇 고수들을 언급하며 말할 수 없는 존경을 표했으나 ‘아이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테시가 유일하다. 테시는 10대 현묵의 아만이 아니었을까. 톨킨의 세계에선 최고의 실력자, 현실 세계에선 멋진 직업을 가졌으며 취향 또한 다채롭고 고급스러운 어떤 어른. 그것은 난치병과 중증 장애를 가진 현묵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며, 그래서 그건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별, 스타,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저렇듯 번듯한 덕후를 보며 열일곱 현묵의 마음은 몹시 뛰지 않았을까.
--- p.97~98
“이미 모든 검토를 마쳤습니다, 부매니저님.”
‘중간계로의 여행 부매니저’. 그것은 생애 처음으로 육성으로 불려진 현묵의 공적인 이름이었다. 2020년,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이 된, 만으로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2000년생 현묵 이 처음으로 공적으로 호명되는 순간이었다.
--- p.106
“고졸 검정고시도 봐야 하고 수능도 치러야 하는데 큰일 났다?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었어요. 수능 따윈 사실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어요. 대입을 준비한다는 건 진로를 고민한다는 거고, 어떤 인생설계를 한다는 의미였는데, 주구장창 방구석에만 있던 내게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겠어요. 무려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국내 최초의 번역가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저에게 벌어졌는데요. 정말 행복했어요.”
--- p.108~109
원문의 일관성을 확인하고, 기존 번역서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묵이 작업하고 있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한국인 독자 기준으로 ‘최신 톨킨 번역작’이 될 것이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현묵은 신인 중의 신인이었다. 등단하지도 않은 작가가 소설을 출간한다고 달려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번역 실수가 신인의 어설픔으로 이해되는 상황을 현묵은 원치 않았다. 적게는 여섯 개, 많게는 열 개의 윈도우를 띄운 채 작업을 해 나갔다. 그렇게 2020년 한여름의 밤은 하얗게 밝혀졌다.
--- p.112
현묵은 그날 얘기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준범 임팩트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날은 어떤 특이점이었어요. 대전환이 이뤄진 날이죠.” 김 교수를 만났다고 현묵의 상태가 바뀐 건 없었다. 지혈을 돕는 인자를 공급해 주는 약이 거의 듣지 않는 현묵에게 맞는 어떤 치료법을 김 교수가 가진 것도 아니었다. 대신 김 교수는 “혈우병은 개인마다 다 다르다”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현묵에게 던졌다. 그러므로 모든 접근은 개인 맞춤 치료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현묵에게 먼저 제안한 것은 ‘기록’이었다. “교수님은 저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라고 했어요. 아픈 증세뿐 아니라 아프기 시작한 후 약의 처방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 아주 작은 변화라도 기술해 놓자고 했어요. 그리고 제가 아픈 패턴도 모두 기록해 놓자고 했어요.”
--- p.194
그 전까지 현묵은 세상에서 계속 추방당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추방당했고, 동네에서 추방당했으며, 결국 집에 갇혔다. 관절이 더 이상 가동하지 않았으므로 거실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방으로 추방됐다. 그 방에서도 침대 위가 전부가 돼 버렸다. 하지만 현묵에겐 그 추방된 세계를 역으로 거슬러 갈 힘이 생겼다.
현묵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발로 바닥을 밀었다. 바닥을 밀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생겼다. 방을 나와 부엌을 들러 거실로 갔다. 거실의 끝에 도달해서는 보행보조기로 옮 겨 탔다. 옷이 땀에 흥건할 정도였지만 아프지 않았으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기어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거실의 벽을 넘어 베란다에 혼자 힘으로 갈 수 있게 됐다.
보행보조기에 기대 베란다에 서서 창밖을 내다봤다. 엄마 나 아빠에게 도움을 구하지도 않고 홀로 그곳에서 창밖 너머의 세상을 봤다. 현묵이 4층 집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광활하고 디테일했다. 여자애와 남자애 들이 뛰어다녔고, 동네 아저씨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총총 걸음을 옮겼으며, 방금 단지로 들어온 차는 주차할 곳을 찾았다. 어떤 기적이었다.
--- p.204
지원자를 치료한 의사 선생님의 추천서가 입시원서에 첨부됐다. 김준범 교수의 추천서는 면접관들에게 일종의 결정타가 됐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 뒤에 등장한 실물(實物) 현묵은 그것이 모두 사실임을 그 존재 자체로 증명해 냈을 것이고. 현묵은 인문대 신입생 중 유일한 장애인이었다. 2013년 2월 초등학교 졸업식을 끝으로 중단됐던 학창 생활은 만 8년 만인 2021년 3월에 다시 시작됐다.
--- p.233
인터뷰는 2021년 여름을 관통해 넉 달 가까이 이어졌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현묵에게 무언가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어떤 태도의 문제’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 같았다. 어떤 강론 보다 강렬했다. 그것은 ‘진짜 실물’, ‘진짜 이야기’였기 때문에.
--- p.245
공부라고 표현하면 적확한 것일지 모르겠으나, 현묵의 이야기는 어떤 공부가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매우 오랫동안 일관되게 지속된다면 그것 자체가 살아 있는 것이 되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어려움, 아니 어려움이라기보단 비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묵의 사례는 비극과 마주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비극 안에 양념같이 희극을 넣는, 비극에 함몰되지 않고 그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유연함을 배우는, 그래서 어느 순간 그 비극을 역전시킬 기회를 얻는, 그런 이야기일 수 있다.
--- p.246
현묵은 2021년 여름방학에 어떤 목표를 세웠다. 전동휠체어로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간다! 거창하지 않지만 그것은 현묵의 화려한 버킷 리스트였다. (…) 네온사인이 많은 밤거리를 비지스(Bee Gees)의 〈나이트 피버(Night Fever)〉를 들으며 정처 없이 쏘다니는 것이다. (…) 이어폰을 끼고 네온사인이 넘실거리는 밤길로 떠났다. 목적지도 없고 네온사인만 있는, 계단이 없다면 그곳은 모두 〈나이트 피버〉로 흘러넘쳤다. 비지스는 쉼 없이 현묵을 부추기고 네온사인은 유혹했다. (…) 이미 현묵의 영혼은 네온사인을 뚫고 들어가 클럽의 무대 위에 있었다. 그 밤은 뜨겁고 화려했다.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다 닳도록 현묵은 그 속을 방황하듯 배회했다.
--- p.257~259
현묵에겐 장 팀장이 임팩트였고 장 팀장에겐 현묵이 임팩트였다. ‘김준범 임팩트’가 삶 전반에서 강력한 지각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장현주 임팩트’는 공적인 세계로의 데뷔 같은 것이리라. 그 사이 테시의, 베렌의, MW의 임팩트가 현묵의 경로에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어코 현묵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임팩트는 작용과 반작용이다. 현묵은 자신이 받은 작용을 마치 물리학의 세계처럼 상대에게 되돌려 주고 있었다.
---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