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최근까지도 생텍쥐페리가 마치 ‘독신’인 것처럼 포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독자들은 대부분 그가 혼자 살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행방불명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행방불명 된 후에도 그가 돌아오기만을 한결같이 기다린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br/>아내 콘수엘로를 처음 만났을 때,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아르헨티나 항공우편회사의 지사장이었다. 또한 『인간의 대지』를 쓴 작가이자 모험가, 영원한 어린아이, 고지식하고 다혈질적인 남자였다. 콘수엘로 순신 산도발은 스물일곱에 벌써 두 번이나 남편을 잃은 상태였다. 작가 고메스의 미망인으로 부와 명성을 모두 소유했던 그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미녀이며, 예술가이기도 했다. <br/>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공중에서 나눈 키스와 40페이지에 달하는 연애편지와 함께 시작된다.<br/>“당신에게 청혼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 손이 좋아요. 이 손을 나 혼자 간직하고 싶어요.”<br/>“하지만 이것보세요. 날 알게 된 지가 몇 시간이나 됐다고요!”<br/>“두고 봐요. 나랑 결혼하게 될 겁니다.”<br/><br/>그들 부부는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였으며, 쉴 새 없이 여행을 다니면서도 호텔에서는 늘 각방을 썼다. 꿈결 같던 시작은 이내 파탄을 맞았다. 앙투안은 도망갔다가 돌아오고, 또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멀리 떠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콘수엘로는 소동을 벌이면서 떠나 보기도 하고, 남편에게 애원하기도 한다. <br/>1942년, 콘수엘로는 남편을 좇아 뉴욕으로 간다. 널따란 통나무집에서 그녀는 『어린 왕자』를 쓰는 남편을 내조한다. 앙투안은 그런 아내를 장미에 비유한다. <br/><br/><콘수엘로 내 아내가 되어 줘서 고마워. 나는 부상당해도 돌봐 줄 사람이 있고, 죽더라도 내가 영원히 기다릴 사람이 있으며, 돌아가더라도 돌아갈 사람이 있는 거잖아.><br/><br/>“고집스런 작은 게처럼 날 꽉 잡고 있어줘서 고마워.” 실종되기 전 앙투안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콘수엘로는 그 후 30년 동안 자신의 ‘영원한 남편’을 기리며 살아간다.<br/>이렇게 일생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던 두 사람의 사랑이 잊혀졌던 것은 콘수엘로를 못마땅해 했던 시댁 식구들에 의해 그 존재가 감춰졌기 때문이다. 콘수엘로 사후 그녀의 비서였던 호세 마르티네스 프룩투오조의 자료 협조로 생텍쥐페리 부부의 전설적인 사랑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br/>앙투안과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의 커다란 여행 가방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뉴욕에서 파리로 가는 배에 실려서 돌아왔다. 그 후 60년 가까이 이 가방들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가방 속에는 부부의 사랑이 담긴 편지, 서류, 가방, 수채화, 옷, 지갑, 쪽지, 스케치북, 자필 원고, 시 등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은 그 자료를 모아서 만든 것이다.

생텍쥐페리에게 아내가 있었고, 그리고 그가 그 아내를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일생동안 사랑했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지방 귀족 출신인 그의 가족이 남미 출신의 발랄한 아름다운 이혼녀를 며느리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두 번 잊혀진 여자가 되어 오래 고독 속에 살아야 했다. 그녀의 사후에 마치 뒤늦은 오마주처럼 발간되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고 가슴 아프다.
그 사랑은 다른 여느 사랑들처럼 백열처럼 빛나는 정열로 시작되어 서서히 사그라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연인이 그들의 최초의 사랑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구조는 도식적이다. 도망치는 데 성공한 남자와 기다리는 여자, 그리고 남자의 주기적인 귀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식성 안에서 두 사람은 가능한 한 크게 움직인다. 사랑을 갉아먹어 버리는 모든 일상적 조건들과 피나게 싸우는 것이다. 마치, 뻔하게 보이는 시시한 결말, 즉 사그라든 사랑과 그 대신 찾아온 편안해진 일상이라는 부부 사이의 결말을 만들어내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기적인 결별과 만남을 되풀이하게 만든 운명적 사건들은 모두 두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낸 사건들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두 사람은 고독 속에서만 사랑이 온전히 유지된다는 것을 깊이 알았는지도 모른다. 단지, 오로지, 생의 모든 것을 본질적 차원에서 바라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보이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일상의 건너편에서 그 졸렬함의 파괴자로서만 생명을 유지하는 특별한 사랑. 홀로 생의 깊은 곳으로 내려갔을 때, 존재의 이상으로 생생하게 늘 최초의 모양으로 빛나는 사랑. 실존적 현실성이 상상적 현실성에게 늘 자리를 뺏기는 사랑. 그래서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 맺어졌으면서도 일생 동안 연인으로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생텍쥐페리에게 사랑은 비행기와 똑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존재의 비속함으로부터 탈출하게 해주는? 그러므로, 사랑이여, 몰락하지 말라, 그대의 고도를 유지하라.
김정란(시인,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