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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
남녀열전 : 나의 편견으로 인물을 보다 책 구성에 대하여… 제1장 소통 … 당신이 즐겁다 김수현 vs. 셰익스피어 통속通俗하는 대사의 마술사 오프라 vs. 김용옥 무대 위의 스타 커뮤니케이터 마돈나 vs. 앙드레 김 섹스어필 패션의 프로와 안티 애거서 크리스티 vs. 히치콕 살인을 즐기는(?) 추리 인간 어우동 vs. 카사노바 섹스 스캔들의 대가 박세리 vs. 히딩크 꿈★을 이루는 승부사 한비야 vs. 이원복 대한민국의 명랑 남녀 제2장 권력 … 당신이 흥미롭다 대처 vs. 마키아벨리 악역을 맡은 현실 인간 시오노 나나미 vs. 강준만 권력과 한판 겨루는 작가 힐러리 클린턴 vs. 앨버트 고어 1인자를 꿈꾸는 2인자 오리아나 팔라치 vs. 체 게바라 반反 권력의 마이너리티 마타하리 vs. 오스왈드 운명적인 스파이와 암살자 서태후 vs. 정주영 제국의 창립자와 파괴자 콘돌리자 라이스 vs. 롬멜 같고도 다른 여女장군과 남男장군 엘리자베스 1세 vs. 세종대왕 르네상스 국가의 CEO 강금실 vs. 고건 정치 경계상의 공직자 제3장 유혹 … 당신에게 끌린다 전혜린 vs. 미시마 유키오 신화를 남긴 자살 인간 레니 리펜슈탈 vs. 미켈란젤로 신의 세계를 넘본 거인 예술가 나혜석 vs. 이상 불멸의 신新여성과 신新남성 박경리 vs. 이어령 내 안의 뿌리 인간과 미래 인간 마더 테레사 vs. 법정스님 세속을 넘나드는 신앙 인간 황진이 vs. 피카소 위험천만한 풍류 남녀 올란도 vs. 동방불패 상상 속의 양성 남녀 책꼬리 인물의 매력과 쓸모를 찾아서 : 우리 자신의 매력과 쓸모를 찾아서 (남녀 46인 매력지수|쓸모지수|20자 평) 남녀 46인 프로필 및 참고 자료 |
저김진애
김진애,金鎭愛
시오노 나나미(1937-, 이하 시오노)와 강준만(1956-)의 이름조차 모르는 식자층은 없으리라. 설령 그들의 책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로마인 이야기』 모르면 ‘교양인’ 축에 못 낄지 모르고, 『인물과 사상』 모르면 ‘지식인’ 축에 못 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시오노와 강준만. 이들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이 별로 재미없는 시대에 ‘약속한 읽을거리’를 기다리게 해주는 인물이 있다는 것만도 썩 즐겁다. 두 인물 모두 ‘지적 오락’에 별 알레르기가 없음을 미루어본다면, 시오노와 강준만을 ‘새로운 종의 지적 엔터테이너’라 일컬어도 좋지 않을까? ‘권력 동경’과 ‘권력 혐오’의 짝 시오노와 강준만은 왜 어필할까? 그 으뜸 이유야, 우리 사회 특유의 ‘권력 동경’과 ‘권력 혐오’를 대변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권력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뜨거우면서도 다른 한편 권력을 전혀 못 믿어하는 우리 사회 특유의 이중 심리, 권력을 향한 스토리는 그리 흥미진진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그렇게 통쾌한 것이다. 시오노는 유쾌하게 뒤통수를 쳤다. 동양인이 서구 역사를, 그것도 서구인들이 끔찍이 자랑해마지않는 르네상스와 로마의 역사를 천착하여 작품으로 쓴다는 것도 신선하려니와, 자기는 역사학자가 아니니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며 역사의 빈 곳까지 나름대로 해석하는 호방함도 유쾌하고, ‘리더십, 영웅, 전쟁, 권력 쟁탈’과 같은, 소위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코드를 여자가 다루는 것도 통쾌하다. 강준만은 불쾌하게(?) 뒤통수를 친 셈이다. “성역은 없다, 금기는 없다.”는 선명한 깃발과 ‘실명 비판’이라는 칼을 들고서, 방패 따위는 아랑곳 않는 투사로서 등장한 것이다. 몰라서라기보다 도사려서 못하는 민감한 시사 주제를 다루는 것도 충격이었으려니와 이른바 ‘유명 인물’에 대해 그러토록 직설적 비판이 등장한 것은 한국 유사 이래 처음일 것이다. 그러니 통쾌하게 강준만의 글을 읽는 독자들도 기분만큼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권력 동경’과 ‘권력 혐오’로 시오노와 강준만을 가르는 것은 공평치 않다. 이들은 공히 ‘건강한 권력에 대한 부끄럼 없는 갈구’를 공유한다. 시오노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갖춘 엘리트 권력을 선호하는 반면 강준만은 권력의 도덕성과 접근성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여하하든 권력 지향에 대해 내숭을 부리지 않는 것, 그 자체가 건강하다. 그 배포가 시원하다. ‘사람, 호불호, 복권(復權)’ 전략 시오노와 강준만이 공유하는 매력적 특징이라면, ‘이야기로 만드는 파워’다. 시오노는 2천 년 전 로마든 5백 년 전 르네상스든 당장 일어나는 일처럼 그리는 힘이 있다. 마치 신문을 보는 듯, 뉴스를 듣는 듯하다. 강준만 경우야 살아 있는 인물을 다루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자의 이슈와 독자의 이슈를 공명하게 하는 힘’이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이런 파워는 세 가지 전략 덕분에 강해질 게다. ‘사람을 중심으로 쓰는 것, 호불호가 뚜렷한 것, 그리고 복권(復權)에 대한 집념’. 사람에게 사람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 있는가. 역사적 사실을 묘사해도 사람 중심으로 전개하고 특정 이슈나 세력의 비판도 사람 중심으로 쓰니, 역시 ‘주인공’이 생기고 감정 이입이 생기고 드라마 같이 흥미진진해지는 것이다. 사상이라는 딱딱한 주제 역시 주인공이 되는 인물과 연관될 때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호불호’가 뚜렷한 것, 특히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우리 사회 정서로서는 결점으로 꼽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한계를 넘어섰다. 예컨대, 기독교(또는 유일신교)에 대한 시오노의 불호나 끼리끼리 기득권에 대한 강준만의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그렇게 명쾌하게 밝혀져서 오히려 편하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 재미도 있다. 시오노가 카이사르를 애무하듯, 마키아벨리를 친구처럼,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를 젊은 연인처럼 그리는 방식이나, 강준만이 보수적 주류에서 무시되거나 거부되거나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논쟁적 인물들을 감정 대입하여 그리는 방식의 흡입력은 강력하다. --- p.104 |
서른한 살 편집자, 저자 김진애를 만나다
나는 출판일을 하고 있는 서른한 살 먹은 여자다. 지난 수년간 무수한 일들을 벌이고, 수습하고, 매진하고, 버리고 취하기를 반복하며, 다큐멘터리PD, 잡지기자, 방송작가, 대학강사, 출판기획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내왔다. ‘한결같은 방황’ 속에 지내온 시절이라고, 도대체 이 복잡한 시절은 언제쯤 끝나는가 라며, 나 자신에게, 때로는 세상에 화를 냈다가, 화해했다가 하며…. 그러던 어느날 건축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진애 씨의 글을 만났다.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물론 그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여자 30대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라는 즉, “너 잘 살고 있는 것이다”는 요지의 글이었더랬다. 갑자기 힘이 솟았다. 김진애,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그렇듯, 서른한 살 출판인 구모니카, 일을 벌인다.
늘 일관되게 불안한 채로 흐르는 내 마음,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은 지 올해로 31년 째. 그 의문을 쪼개고 또 쪼개고 쪼개 보니,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는 위인도 있었고, 타인도 있었고, 지인도 있었고, 가족과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유영하는 내가 있었다. 내 주변에 인간이 없었다면, 난 결코 방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김진애 박사를 만나고 난 후에, 그녀의 원고를 받아 든 후에, 긴긴 방황을 끝낼 답을 찾았다. “인간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것! 그래서 <남녀열전 : 파트너일까, 라이벌일까?>, 바로 그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과 탐구”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만들게 된다. 구모니카 :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나와 같은 족속들, 흔들리는 자아를 가진 인간들에게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하기가 가장 힘들다. 그런데 김진애 박사님이 그간 하신 일들, 책이나 건축, 도시설계, 나아가 정치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본인의 의견은 어떤가? 김진애 :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사람을 흥미로워한다. 가까운 사람에게야 ‘좋다’, ‘아니다’ 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흥미롭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왜 그 사람은 그 사람일까, 궁금증이 많다. 무엇이 그 사람을 만들고 있는 걸까, 호기심이 난다. 더불어 결점이 없는 인간은 별로 재미없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물론 없지만, 그 인물의 행적 중에 결점, 갈등이나 딜레마를 찾을 수 있다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인간은 흠이 있기에 인간이다. 그만큼 나는 인간의 한계, 인간의 모자람에 너그럽다고 할까? 나아가 나는 사람의 ‘매력’을 찾는 데 열중하는 편이다. 뭔가 좋은 점, 뭔가 긍정적인 점, 뭔가 잠재력이 없을 리 없지 하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 사람만의 특징, 그 사람만의 매력을 정의하고 나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만큼 나는 사람에 대해서 긍정적인 셈이다. 또한, 나는 그 사람이 한, 또는 하고 있는 ‘일’에 주목한다. ‘실적’을 중시한다고 할까? 더 정확히는 ‘쓸모’를 찾는다고 할까? 그 사람의 심리나 개인적 면모보다는 왜 그 사람은 그 일을 할까, 어떻게 그 일을 할까, 왜 그 역할을 할까, 왜 그러한 선택을 할까 등에 관심이 많다. 말하자면 나는 ‘사적 인간’ 보다 ‘공적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내가 존재하는, 내가 일을 하는 저력이자 이유이자 목적이다. 구모니카 : 인간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부럽다. 그 중에서도 말씀하신 “매력”과 “쓸모”라는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하다. 설명 해달라. 김진애 : 우리들 모두는 나름의 인물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매력”과 “쓸모”는 나의 개인적인 인물 평가 기준일 뿐이다. 각론에 들어가면 아주 복잡하겠지만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하나, 만나보고 싶은가? 둘, 일을 맡겨 보고 싶은가? 쉽게 얘기하면 “매력”과 “쓸모”다. 만나보고 싶으면 여하튼 매력적인 인물일 것임에 틀림없다. 일을 맡겨 보고 싶다면 여하튼 쓸모 있는 인물일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매력의 종류도 가지가지이고 쓸모의 종류도 가지가지이므로 그리 간단치는 않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머릿속에 떠올리기조차 싫은 인물도 있잖은가. 그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싫은 인물도 있잖은가. 같이 일할 상대로 전혀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있잖은가. 하물며 그 존재 자체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고민한다. 나는 매력 있는 존재인가?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 바라기야 이 두 가지를 다 가지면 좋겠지만, 그 중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무관심의 대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대상이 된다면 최고이겠고,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된다면 더 말할 것 없이 좋다.(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양면성이 있으므로 여기서 제외하자.)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차라리 괜찮은 편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고, 더 나아가 무관심의 대상이라면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매력”과 “쓸모”를 가진 인물이라 평가되는 것만큼 보람찬 인생이 또 있을까? 구모니카 : <남녀열전 : 파트너일까, 라이벌일까?>에는 총 46인의 인물이 나온다. 인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야 박사님의 개인적인 기질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인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광범위한 정보가 놀랍다. 평소 인물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고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는가? 김진애 :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이번 책을 쓰면서 각 인물의 모든 면면을 다룬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물 평전적 시각에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필자의 ‘주제 제기’ 시각에 따라 각 인물의 특정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음을 집고 넘어가고 싶다. 모든 인물에 대하여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대상도 만나 볼 수 있는 대상도 아니었으므로…. 다만, 흥미를 끄는 인물들에 대해서 나는 평소 귀를 열어 두고 인터넷 서핑도 꽤 한다. 새로운 사건과 뉴스가 등장할 때마다 나의 인물 파일에 그들이 만든 새로운 사건을 추가하며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나는 평소에 관심이 가는 인물들이 행한 작업들을 부지런히 찾아보는 편이다. 예술인, 문화인, 지식인인 경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작업 자체가 그들을 알기에 가장 귀중한 자료다. 저작, 영화, 기록영화,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예술작품 등, 그들의 작업은 그들을 말해 준다. 사람은 확실히 작업으로 말한다. 정치인, 언론인 등 공인의 경우에는 당연히 그들의 정치 행적, 정책 행적, 현장 행적이 그들을 말한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 뭘 하나. 아무리 수사(修辭)가 좋으면 뭘 하나. 결국 그들이 어떻게 시대를 읽었는가, 어떤 과제를 설정했는가, 중요한 시점에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그들의 인물됨을 나타낸다. 설혹 그들이 현실 정치에서 실패했더라도 그들의 이념과 철학에 귀 기울일 필요는 충분하다. 내가 ‘운명적 행동인’이라 정의하는 인물들, 즉 특별히 뛰어나거나 모라자거나 악해서가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운명의 장난에 걸려들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물들, 예컨대 오스왈드나 마타하리, 전혜린이나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 나는 각별하게 연민을 느낀다. 이런 인물들을 볼 때는 그 시대, 그 공간에 전개되었던 여러 정황에 대한 관심도 함께 작동하게 마련이다. 운명의 장난을 인정한다면 인간은 훨씬 더 겸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이 가는 인물의 행적을 통해서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다. 구모니카 : 하필이면 왜 남자와 여자를 매치했는가? 이런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김진애 : 나는 이 전에 <남자 당신은 흥미롭다>, <여자 우리는 쿨하다>라는 두 권의 책을 동시에 낸 적이 있다. 방송과 잡지 등을 통해서도 이래저래 5년 여 동안 남녀 주제를 다루어 왔다. 그동안 여러 질문을 받았다. 왜 남녀냐? 남녀의 차이를 보려는 것이냐, 남녀의 공통점을 보려는 것이냐? 남녀의 관계를 보려는 것이냐? 남녀 역학, 남녀 사회학, 남녀 정치학에 대한 관심이냐? 나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명쾌한 답이라면, ‘흥미’다. 남녀라는 주제 자체가 흥미롭다. 또한 남녀가 시사하는 모든 이슈들이 흥미롭다. 차이도 흥미롭고 공통점도 흥미롭고 남녀 관계도 흥미롭고 남녀 역학도 흥미롭고 남녀 정치학도 흥미롭다. 그런 흥미는 나의 삶을 흥미롭게 해주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도, 나는 변화하는 이 시대에 남자 여자는 서로에게 이성으로서의 상대 이상으로 인간으로서의 상대, 인물로서의 상대 성에게 각별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남녀가 어깨를 맞대고 자웅을 겨루는 시대다. 상대에 대한 담담한 응시와 창조적인 상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남녀를 대비해 보는 것은 충분히 유효한 발상이다. 그러니 <남녀열전>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자라오는 과정에서 내가 바라볼, 추구할, 지양할, 지향할, 참조할, 이끌리는 어떤 인물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쌓여 드디어 글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좋겠다. 나는 역할 모델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성장에는 특정한 역할 모델보다는 수많은 인물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실제 지향할 사표적인 인물에서 얻는 것만큼이나 지양할 반면교사적인 인물에서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많은 인물들에 자신을 비출수록 자신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은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인전’ 이상으로 ‘인물전’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만큼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거울이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괜찮은 인물들이 많은가를 알면 살맛이 더해진다. 또한 인류의 역사 속에 얼마나 괜찮은 인물들이 많은가를 알면 인간에 대한 신뢰도 더해진다.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알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도 피어오른다. 물론, 우리는 그 인물들처럼 될 수도 없거니와 꼭 되어야 할 이유도 없고 또한 전혀 되고 싶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인물들의 가치에 우리가 눈을 뜬다면, 이 흥미롭고 즐겁고 끌리는 인물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삶은 그리 무료하지도 그리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사람과 사람이 기를 통하는 것은 가장 흥미로운 일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