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에, 켄드릭의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모르는 어느 집의 어두운 복도에 놓여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어. 내 주변엔 장화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고, 축축한 비 냄새 같은 게 나는 것 같았어. 복도 끝 쪽으로 난 문이 열려 있어 빛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아주 천천히 소리를 죽여 문가로 가서 안을 들여다봤어. 방안은 새하얬고, 아침 햇살이 들어와 눈이 부셔 뜰 수 없을 지경이었어. 창가에는 한 여인이 산호색 카디건 스웨터를 입고 하얗게 센 긴 머리를 등 뒤로 늘어뜨린 채 나에게 등을 지고 앉아 있었어. 바로 옆 탁자에는 찻잔이 놓여 있더군. 내가 무슨 소리라도 냈는지, 아니면 등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감지했는지… 여인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는데, 그건 바로 당신이었어, 클레어. 먼 미래의 나이 든 당신이었던 거야. 정말 황홀했어, 클레어.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당신을 안아볼 수 있고, 당신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느낌이었어. 더 이상은 말하지 않을 테니, 당신이 상상하도록 해. 그래야 그 때가 왔을 때, 미리 다 알고 있어서 맥 빠질 일 없이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잖아. 클레어. 그럼 그 때까지 너무도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현재를 충분히 누리며 살도록 해.
이젠 어두워졌고, 나도 몹시 피곤해졌어.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야.
--- p.
다급하게 내게 손을 뻗는 아이의 손을 잡는 순간 헨리는 사라지고 없다. 내 손에는 헨리가 입고 있던 따뜻한 티셔츠만 남아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위층으로 올라가 홀로 미라 사이를 걸으며 생각했다. 어린 나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오르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아침에 깨어난 나는 모든 것이 멋들어진 꿈이었다고 여겼다. 엄마는 시간 여행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엄마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