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여기는 이스탄불
이스탄불.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네 글자 도시이름. 그 옛날 화려했던 비잔틴 제국의 수도이자 오스만 제국의 수도. 수천 년의 문화유산과 역사의 영광과 오욕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 아시아 대륙의 끄트머리와 다리 하나로 이어져 있는 기가 막힌 지형. 더 이상은 터키의 수도가 아니지만, 수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곳. 이스탄불은 이름만으로도 드라마틱한 도시이다. 거기 지금 내가 왔다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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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사프란볼루
부끄럼타는 새색시 이름 같기도 한 이 자그마한 도시는 오스만터키 시대 때 지어진 붉은 지붕의 오래된 옛집들이 정겹게 자리한 마을로 199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중동의 낙타상인들이 오가던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당시 대상(캬라반)들이 묵었던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사프란볼루라는 이름은 염색제와 향료의 재료로 쓰이던 귀한 꽃인 ‘사프란’이 많이 피는 지역이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름처럼 어여쁜 포근한 정취의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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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앙카라
터키의 수도로 다시 태어난 터키 중부의 이 도시는 사실 터키공화국의 설립자이자 아직도 터키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터키의 아버지’ 케말 아타튀르크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망한 지 오래 되었으나, 시내 곳곳 건물에는 아직도 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고 동상을 볼 수 있으며 아타튀르크 추도원은 앙카라에서 손꼽히는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이다. 앙카라, 올까 말까 살짝 고민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정말 오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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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반
터키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이 도시는 거대한 염수호인 반 호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앙카라에서는 너무 멀기에 버스 대신 비행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반은 또한 고양이의 도시로 유명한데 두 눈 색깔이 서로 다른 반 고양이는 엄격하게 반출이 통제되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바다보다 넓어 보이는 호수, 그 가운데 섬, 그리고 고양이.... 반의 추억은 이렇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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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디야르바르크
터키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마을이라고 해서 찾아가기로 했다. 알고 보니 반에서도 가까워서 예정에 없던 디야르바르크 일정을 포함시켰다. 이럴 때 안 가보면 언제 가보누. 크루드족도 보고. 하지만 그들도 여타 터키인들과 다름없었고 디야르바르크 또한 매우 현대화된 도시였다. 뜻밖에도 우리는 여기서 터키 여행 중 가장 비싼 호텔에서 숙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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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카파도키아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이래서 터키는 축복받은 나라인가보다. 나도 그냥 여기 아무 곳이나 동굴을 파고 한 1년 살면 안 될까?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을 것 같은데. 여행을 와서 한국 사람을 가장 많이 본 곳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열기구. 그리고 로즈밸리. 그 광활함이란. 그리고 그 황홀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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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안탈리아
터키는 무엇보다 지중해의 나라다. 아름다운 지중해의 도시 안탈리아는 팜필리아의 유적지와 아스펜도스를 두루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거기다 지중해에 발을 담그기까지. 유람선을 탄 서양인들은 모두 수영복을 입고 지중해에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즐겼지만 나는 그냥 지중해를 바라보며 해변에서 낮잠을 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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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파묵칼레
그 유명한 온천도시 파묵칼레는 온통 하얀빛 일색이었다. 우윳빛 산과 거기에 담겨진 에메랄드 빛 물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관광 행태(?)를 유유히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고대 도시 유적인 히에라폴리스를 같이 관광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죽은 자의 마을이 유명하다. 발을 어루만지던 따뜻한 온천물의 감촉이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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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셀축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셀주크투르크족이 과거 정착했던 곳이다. 에페소스 유적지로 유명한 이 도시는 한편 성 요한교회가 있는 등 기독교 유적지로도 꽤 유명하다. 우리는 인근의 해안 휴양지인 쿠샤다시에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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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다시 이스탄불
근 한 달 만에 찾은 이스탄불은 마치 친정집을 찾은 듯 반갑기만 하다. 한 번 본 것은 이렇게 나도 모르게 기억에 새겨지는 것일까? 전에 본 거리와 건물과 풍물들은 어쩜 이렇게 낯익게 다가오는지.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찾은 블루모스크는 마침 너무나 고요하여 이방인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그 뜨겁던 여름도, 터키도, 이스탄불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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