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단일가의 막강한 조직력은 심지어 그들과 절대적 모순 관계인 불가촉천민(달리뜨)까지 포섭하기도 한다. ‘달리뜨’는 전통 힌두교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핍박당한 불가촉천민이 종교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계급적 용어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의용단이나 의용단일가와 절대 연대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의 보수 집단은 그 세를 이들에 까지 뻗쳐 형제애를 나눈다. 보 진영이 학생 운동의 목표를 직접 정치에 간여할 이념형 투사의 양성으로 삼은 반면, 보수 진영은 학생과 교수 사이의 인간적 관계 형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에게는 논리나 이념이 아닌 감성과 공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p.50
인도에서 수구 세력이 반무슬림 감정을 자극하면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성장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수구 세력은 반북反北 감정을 이용해 무서운 속도로 그 힘을 키워 가는 중이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자유북한운동연합과 같은 우익 시민 단체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학생 운동이나 노동계와 같이 과거 진보 진영의 고유 영역에까지 그 세력을 넓히고 있다. --- p.52
해방 공간에서 제주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벌어진 양민 학살이나 5.18 광주 학살은 권력이 바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미국이라는 탄탄한 배경은 난동의 기획자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그 자신감은 군인과 경찰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권력은 영원하니 알아서 행동하라는 메시지보다 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가스통 노인들은 그런 역사에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권력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서북청년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두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 p.79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0년대 이후 인도의 재벌은 국가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로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국가 발전은 개혁, 자유화, 유연화, 민영화 등 얼핏 들으면 민주화와 동일한 의미로 오해받을 수 있는 어휘들이 뒷받침했다. 이제 시장은 사람들이 일상 용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기업들이 거래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거래는 손에 쥐는 상품이 아닌 주식이나 선물과 같이 보이지 않는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가 되었고 그 주도적 역할을 재벌이 한다. 미래의 청사진은 재벌들의 머리에서 나왔고,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었으며, 그것을 거스르는 자들은 사회 자체적으로 제거되게 만들었다. 사회 정의와 경제 민주화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정작 모든 이득은 재벌들 배로만 들어갔다. 그 사이 생태계는 파괴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집이나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 또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 p.97
가난한 사람들을 죽이고, 빼앗고, 쫓아내기 위해 법이 만들어지고, 군대와 경찰이 동원된다. 언론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지는 자로 매도하고, 사람들은 자기에게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 저항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오로지 이윤만을 위한 주식회사 인도 공화국이다. 그 주식회사 안에서 재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데, 그 권위를 국가가 위임해주고 그 대가로 엄청난 돈이 국가 권력을 쥔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들어간다. 그리고 돈의 위력에 짓눌린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그 모든 행위는 정당화된다. 그 사이 국민만 죽어나고, 국토만 파괴된다. 이것은 최근 10년 동안 인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인도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딱 한국에서 일어난 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당연히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신자유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재벌이 국가고, 국민은 그 노예다. --- p.98
인도의 수구 세력들은 최하층 인민들의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종교 갈등으로 포장해 적을 다른 데서 찾게 만드는 데 능수능란했다. 수구 세력이 가난한 인민들에게 현재와 다른 미래에 대한 꿈을 보여주며 그들을 속이는 데 열중한 반면, 좌파 정치인들은 현실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자신들의 꿈만 꾸면서 주위를 차단한 채 고담준론에 몰두했다. 그 사이에서 가난한 인민이 자신들에게 꿈을 보여준 수구 세력에 기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p.126
인도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수구 난동의 역사는 주도면밀하게 진행된 우파의 역사 교과서 문제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인도 우익의 역사 교과서는 역사가 더 이상 과거를 설명하거나 분석하는 담론이 아니라 정치의 최전선에서 권력을 가져올 수 있는 무기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우파는 조직에 강하고 좌파는 논쟁에 강하다. 조직은 사람을 끌어들이지만 논쟁은 사람을 멀리 하게 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좌파는 순수하나 무능하고, 우파는 사악하나 유능하다. 어린 학생들이 힌두 공동체주의에 기반해 민족의용단이 만든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후, 종교 공동체 갈등을 일으킨 수구 난동 세력이 성장했고, 그 10년 뒤 인도국민당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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