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가(家)는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이민자였다. 부두 노동자로 시작한 케네디의 고조부는 가족을 이끌고 미국에 도착하자 가족들에게 “내가 이 땅에서 3대 안에 이 나라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그 후 3대째에 케네디 대통령이 탄생했고, 케네디가는 미국의 정치계에 일가(一家)를 형성했다. 다윈이 종(種)의 기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할아버지 에라스무스의 영향이라고 한다. 물리학자이자 동식물학자였던 에라스무스는 진화에 대한 이론을 탐구했다.
진화론의 아버지 다윈은 홀로 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를 잇는 진화에 대한 관심이 손자 다윈에게서 꽃을 피웠을 뿐이다. 사임당이나 율곡도 3대에 걸친 노력 끝에 나온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임당은 외조모부터 모계혈통의 가르침을 받아왔고 율곡 또한 외조부모의 사랑과 사임당의 교육으로 3대에 걸쳐 키워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 pp.29-31
교육은 교육자의 질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부모는 자녀의 첫 스승이자 평생스승이며, 가정은 교육의 장소다. 부모가 철학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은 물론 자녀가 살아갈 삶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것과 같다.
사임당이 가졌던 ‘인간의 본성은 어질다’라는 공자의 사상은 일곱 자녀를 기르는 사임당의 교육관이 되었다. 공자가 살던 시기에 제자백가 사상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병가는 무력으로, 법가는 법으로 다스렸다. 우리 부모들 또한 대부분 자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병가처럼 무력으로, 때로는 법가처럼 잣대를 휘두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때로는 병가처럼 또 때로는 법가처럼 대한다면 자녀들은 더 이상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그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사임당은 철저하게 인간의 본성을 믿었고, 자녀의 본성이 어짊을 믿은 어머니였다. --- pp.51-53
엄마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삶의 크기가 아이가 펼칠 미래의 크기다. 대한민국의 엄마와 유대인 엄마는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서 자라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난다. 세계적인 리더나 노밸상, 학계/정재계를 쥐락펴락하는 유대인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이런 세계적인 리더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엄마가 추구하는 삶의 크기 때문이 아닐까?
전 세계의 리더를 키우는 사립학교는 반마다 반드시 장애아를 둔다고 한다. 적어도 세계적 리더가 되려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대한민국 엄마들은 내 아이 반에 장애아가 들어온다면, 나아가 내 아이의 짝이 된다면 아마 당장 학교에 건의를 하고 담임을 찾아가 짝을 바꿔달라고 할 게 분명하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들은 자신의 크기만큼만 자라도록 강요한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엄마들이 하는 교육이다. 아이를 큰 인물로 키우려면 엄마 자신의 크기를 키우든가 아니면 작은 교육을 거두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 pp.70-72
사임당의 자녀교육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엄마가 먼저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읽었던 사서삼경은 요즘으로 말하면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읽으면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거를 수 있는 사고의 필터가 생겨 사고의 거름망 역할을 하여 생각과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치통감 같은 역사서를 읽으면서 사회와 시대에 대한 통찰력을 가졌으며, 이러한 통찰력으로 현실인식이나 문제해결과 자녀교육에 현명하게 대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생을 사는 것이나 자녀교육 모두 자신의 생각에 기인한 판단의 연속이며, 사임당에게 공부는 주체적 삶을 추구하는 실천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사임당에게 여성이란 성의 구분이지 삶의 방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pp.90-93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gues Attali)는 21세기는 창조적 이타주의자들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보았다. 이제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살아나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얼마 전 발생한 땅콩회항사건이나 크림빵 아빠 사건들은 개인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창조적 융합과 도덕성이 능력이 되는 사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래사회의 인재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도 경쟁으로 살아남던 산업사회와는 달리 지식창조사회는 협업과 공유경제로 들어섰다. 누군가를 밟고 넘어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을 제공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 pp.172-178
사임당의 자녀들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부모와의 친밀감은 자녀의 학업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창의성과도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외국의 경우 부모와 관계가 좋은 자녀가 창의성을 발휘하여 억만장자가 된 사례도 있다. 왓츠 앱(WhatsApp)의 창업자 얀 쿰(Jan Koum)이 그 예인데, 얀 쿰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뒤 고향의 가족들과 너무 연락을 하고 싶어서 카카오톡 같은 무료 모바일 메신저 앱을 만들었고, 이것을 페이스북이 220억 달러에 인수하여 억만장자가 되었다.
왓츠 앱을 인수한 페이스 북의 저커버그도 그런 경우다. 저커버그의 아버지 에드워드는 치과의사였는데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일이 끝나면 늘 가족과 시간을 보냈고, 엄격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아이들과 격의없이 장난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했던 아버지는 진료시간에도 병원보다 살림집에 있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저커버그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마침내 가족용 네트워크 ‘저크넷’(ZuckNet)이 탄생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페이스북의 전신이 만들어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의 친밀한 관계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자녀는 그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으로 창의력을 발휘하게 된다. --- pp.196-200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사심, 즉 욕심이 들어가게 된다. 사임당이 달랐던 점은 자녀들에게 벼슬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군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율곡이 벼슬에 대한 집착도 없었지만 벼슬을 한 후에도 최선을 다해 백성을 위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을 계속 선조에게 건의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지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은 욕심이 없을 때 영감이나 창의성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이 영감과 창의성을 갖기 위해 욕심이 없는 어린아이 마음을 그토록 갖고자 노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선의 다른 신하들이 조선의 쇠락을 느꼈을지라도 주변 정세가 조선을 위협하고 있다는 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벼슬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집착은 공포를 낳고, 위기의식에는 감을 발휘하기보다는 그 공포를 해소하는 데 자신의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창의성이 관건이 될 것이다. 창의성은 욕심이 있는 한 창조적인 영감의 끈을 내려주지 않는다. 수많은 화가들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고자 그토록 노력한 것도 이러한 창의성의 비밀을 알았음을 의미한다. 평생을 노력해도 아이의 마음을 갖기 힘들었다고 고백한 피카소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자녀를 창의인재로 키우고자 하는 엄마라면 욕심을 줄이고 인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새로운 철학을 가져야 한다.
--- 사심없는 교육이 창의인재를 만든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