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어디 보자. 자네, 저기에 기러기 무리가 보이는가? 혹시 저기 있는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힐 수 있겠는가?”
왕건의 말을 듣고 삼능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기러기 무리가 높이 날고 있었습니다. 삼능산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향해 활을 추켜들었습니다. 그러고는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습니다.
“피슝!”
삼능산이 쏜 화살은 정확히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에 맞았습니다.
“하하하! 역시 소문대로 대단한 실력이군.”
왕건이 박수 치며 격려했습니다. 삼능산이 고개를 숙이며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 맞힌 것뿐입니다.”
그때 삼능산은 생각했습니다.
‘폐하와도 이랬을 때가 있었지. 아! 그때가 그립구나.’
삼능산이 생각하는 사이 왕건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활 솜씨도 좋고,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흠, 이제 슬슬 말하는 게 나을까?’
왕건은 곰곰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왕건은 삼능산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혹시, 자네 나와 함께 궁예를 몰아내는 것이 어떤가?”
--- p.16~18,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 중에서
“내가 손을 흔들면 그때 화살을 쏘라는 뜻이다.”
“네, 장군님.”
의병들과 곽재우가 미리 신호를 약속했습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되었습니다. 그때 곽재우가 손을 양쪽으로 흔들었습니다. 곽재우가 신호를 주자 화살을 쏠 준비를 하고 있던 의병들은 활시위를 당겨 왜군들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으악!”
“무슨 일이……. 으악!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왜군 장군은 화살 비를 보고 줄행랑을 쳤습니다. 하지만 말의 다리에 그만 화살이 꽂혔습니다. 그 때문에 장군은 진흙탕에 얼굴이 묻혔습니다.
화살이 다 떨어질 때쯤 곽재우가 소리쳤습니다.
“돌격하라! 왜놈들에게 우리의 용맹함을 보여주자. 조선은 우리가 지킨다.”
곽재우의 말을 듣고 의병들은 쓰러져 있는 왜군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뒤늦게 왜군들이 반격하기 시작했지만, 의병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게 왜군들과 첫 번째 전투가 끝이 났습니다.
“우리가 승리했다! 조선은 우리가 지킨다.”
‘홍의장군 ’
곽재우는 전투를 벌일 때 붉은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곽재우는 홍의장군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왜군들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의병들이 죽기도 하고 부상을 입었지만 그럴수록 곽재우 의병군대는 더 강해지고 애국심이 깊어지며 전투에서 거듭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p.56~58, 「나라를 구한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중에서
이상화는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빼앗긴 나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 힘을 키우라는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상화는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 학교에 권투부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상화의 갑작스러운 말에 동료 선생님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권투부라니요? 아이들을 싸움꾼으로 만들려고 하시나요?”
다른 선생님들은 이상화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화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작은 나라에 태어나서 자기 나라를 지키려면 주먹이라도 잘 써야 합니다!”
이상화는 권투를 통해 학생들이 더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중략) 이상화의 노력으로 학교 체육 대회 종목에 권투 종목을 넣을 만큼 권투부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후로 교남학교 권투부 출신들은 훗날 대구 권투 클럽을 결성하여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하였습니다.
--- p.79~8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중에서
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달에 20전씩만 모으면 1,300만 원을 모두 갚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은 서상돈의 뜻처럼 점점 퍼져나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것을 안 일본은 일진회라는 친일단체를 이용해서 국채보상운동을 방해하고 국채보상운동을 하는 지도자들을 체포했습니다.
“이거 놔! 우린 나랏빚을 갚으려고 한 거라고! 빚을 갚으려고 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
“조선이 우리 대일본제국에게 진 빚을 갚는다고? 어림도 없지! 어떻게 해서든 너희의 뜻을 꺾어주마.”
일본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아무 잘못도 없이 강제로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성금을 관리한 양기탁에게 횡령의 누명을 씌워 구속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국채보상운동이 실패하도록 온갖 방해를 했습니다. 결국 일본의 무자비한 방해로 인해 국채보상운동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럴 수가! 나랏빚을 갚자는 운동이 일본 놈들의 훼방에 막혀 이리 허망하게 끝이 나다니!”
서상돈은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 p.102~103, 「나랏빚 갚기에 앞장선 민족 운동가 서상돈」 중에서
사야가는 왜군의 선봉장으로서 맹렬하게 조선 땅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야가는 전쟁 중에 자신의 인생을 바꿀 감동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늙은 어머니를 업고 아이들과 함께 도망치는 한 농부를 본 것입니다.
‘아니! 저렇게 위험한 순간에 자기보다 어머니와 가족을 보살피려 하다니. 저런 효성과 남을 위한 희생이 몸에 배어있다니. 더군다나 저자는 선비도 군자도 아닌 한낱 농부인데.’
사야가는 위험한 순간에도 자기보다 가족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조선인 농부를 보고, 그 효성에 감동하여 싸울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중략)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나라를 어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왜군에 환멸을 느낀다.”
사야가는 도덕을 숭상하는 조선을 정벌할 마음은 없었지만 나라의 명령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고민에 빠져 뜬눈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일본 장수 사야가는 착한 조선 백성들을 죽이는 것은 도리에 알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조선으로 투항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이 거느린 500명의 군사와 함께 자신의 지위와 명성, 그리고 조국을 버려야 하는 힘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사야가는 조선에 투항의 뜻을 담아 편지를 적어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보냈습니다.
--- p.111~113, 「조선의 장수가 된 일본인 김충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