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여기 선과 악 따위를 박차버리고 질주하는 대지의 피안이 펼쳐진다. 들어라, 오직 저 야생의 무대만이 연주하는 운명의 서사가 폭풍으로 혹은 미풍으로 날 새는 줄 모른다. 김형수는 몇십 번의 방문과 체류로 몽골 일대의 고금을 체화한 나머지 이 경탄의 기록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나는 그가 무섭다.
고은 (시인)
『조드―가난한 성자들』은 인류가 기록으로부터 배제시켜버린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다. 정복이란 어휘 속에 감춰진 비밀, 중국사와 로마사로 상상되는 역사의 결정론 한복판을 번개처럼 꿰뚫는 절정의 서사다. 12-13세기 지구의 절반을 휩쓸어버린 고원의 에너지는 어떻게 생성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면 우리가 머릿속에 구성하고 있는 인류사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10년이 넘도록 몽골 고원 구석구석을 발로 답사하며 준비해온 김형수의 『조드―가난한 성자들』은 인류학적 디테일과 생활사의 실감으로 이 의문에 답하고 있다. 깊은 역사의 지평에 떠오른 주인공들 자무카, 보오르추, 젤메, 모칼리, 수베테이, 주치 등이 『삼국지』나 그리스 신화의 낡은 인물과 사건들을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신화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영진 (시인)
한겨울의 메마른 초원을 엄습한 ‘조드’를 생각한다. 강추위와 찬바람이 몰아치는 대지 위로 눈이 내린다. 습기가 없는 눈은 쌓이지도 않고 바람에 휩쓸려 허공의 모래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대지는 삭풍에 메말라 간다. 동북아시아 변방의 버려진 황야에서 늑대처럼 살아남은 한 사내가 징기스칸이 되어 초원길을 잇고 유라시아 대륙을 통합했던 사실은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분단된 남북 코리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세계의 모든 사회적 영역을 포괄하는 상호작용과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고립된 작은 공동체는 존재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문화 경제 생태적 문제가 전 지구화하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는 지금, 지역화 통합 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영토성의 정치와 결부되어 있다. 김형수의 이 책이 그냥 막연한 문화적 코드로서의 노마드가 아니라 대륙과 동북아의 새로운 시스템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황석영 (소설가)
몽골에 다녀간 외국 작가는 많다. 그러나 유목민에 대해 김형수만큼 아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가 『조드―가난한 성자들』을 쓰는 동안 광활한 초원과 사막이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는지 모른다. 마지막 장을 끝냈을 때, 자무카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 봐요, 했다가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바로 그것이다! 몽골의 일간지에서 연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서 번역본이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뭉흐체첵 (시인, 몽골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