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흘려 가며 처절하게 모은 종자돈 5,000만원을 250만원만 남긴 채 날려본 사람 있는가?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했겠지만 터팬도 역시 그 주인공이다. 부끄러운 전과지만 터팬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달라는 갸륵한 뜻으로 공개할 터이니 못된 과거를 손가락질하지는 말아달라.
8년 전 첫 직장인 은행에 입사하고서, 3년간 갖은 핍박과 설움을 이겨내고 정기적금으로 대략 5,000만원 정도의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 순진한 터팬은 그 3년 동안 월평균 200만원의 수입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기껏해야 주거비와 동료와의 술값, 한 달에 한두 차례의 여행경비 그리고 책값 정도 들었을까? 매월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리고도 120만원 가량을 저축할 수 있었다.
아무튼 30세 나이에 결코 적지 않은 돈 5,000만원을 만지게 되니 가슴 떨리는 전율과 함께 벌써 부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조만간 부자의 상징적 수준이었던 '1억'까지도 어렵지 않으리라는 발칙한 목표도 세웠다.
계속 그런 패턴으로 순진하게만 저축했더라면 1억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이런 순박한 터팬을 망가뜨린 것은 다름 아닌 '주식'이라는 상습전과범이었다.
IMF사태 직후 'Mr. 깡'이 한동안 왔다 갔다하고 'Buy Korea' 어쩌고 하면서 주식시장이 한창 살아날 조짐을 보였다. 또 이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도 한몫 했었다. 아마 터팬이 그 시점에서 제대로 된 곳에만 투자를 했더라도 지금 한창 잘 나가는 K씨나 C씨처럼 유명한 재테크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의 터팬은 삼국지의 조자룡처럼 '도시담(都是膽:온 몸이 간덩어리)'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개의 어설픈 개미들처럼 터팬도 대학 시절부터 5년 동안 틈틈이 실전과 이론도 겸비했다고 건방을 떨면서 살벌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역시나 개미 투자 성공율 5퍼센트 범주에 들지 못했다.
당시 전문가들 말로는 삼성전자만큼이나 괜찮을 거라는 종목에 '올인'을 했었는데도 말이다. 결과는 글자 그대로 '쪽박'이었다.
쪽박을 차는 기간이 1년 이상 길었던 만큼 손절매의 기회도 있었건만, 미련스럽게도 '최소한 원금회복'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오매불망 기다렸다가 결국 250만원만 남긴 채 게임오버 되고야 말았다.
터팬또한 어리석은 패배자들이 늘 그러하듯이
"전세보증금과 그 5,000만원을 더해서 직장 근처에 작은 아파트라도 샀더라면?"
"그 돈으로 땅을 사거나 정기예금에 담근 채 푹 절여두었더라면 또 어떠했을까?"
등의 자책과 후회로 범벅이 된 채 통한의 세월을 지냈었다.
패배의식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잃은 돈말고도 그 경제적, 정신적 공황상태 또한 말로 표현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물론 구질구질한 생활과 지하 골방 신세도 1년 연장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은 최소한 5년은 늦춰진 것이다. 재테크 수업료치고는 너무도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터팬은 그 일을 겪고 나서 종자돈에 대해서 평범하지만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농사꾼은 굶어 죽더라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씨 나락 만큼은 소중히 다룬다는 뜻이다. 터팬은 농사꾼은 아니었지만 그 종자돈만큼은 지켰어야 했다.
그렇다면 '종자돈'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농사꾼의 씨앗'처럼 미래를 향한 희망과 눈물의 '엑기스'일 것이고, 근면하고 성실한 '우리 농사꾼의 씨앗'은 다가올 파종기에 고이 심어 수 백 배의 열매를 얻게 할 '고귀한 생명체' 이고, 나 아닌 후손을 위해서라도 온전히 보존해야 할 '위대한 유산'이다.
터팬은 애써 모은 이 귀한 씨앗을 땅에 뿌리지 않고 투전판에 내던졌다. 딴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은 틀림없이 한몫 챙길 것이라는 어리석은 확신을 가지고서 말이다.
재테크 게시판을 보면 "종자돈을 어떻게 할까요?"라는 식의 질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게시자가 그 돈을 모으느라 적잖은 세월을 얼마나 애태웠을지, 그 얼마나 가치 있는 씨앗인지 잘 안다.
그렇지만 소중한 그 돈의 비사(秘史)를 상당 부분 공감하기 때문에 다음과 질문을 접하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3,000만원을 모았어요. 어느 종목에 투자하면 좋을까요?"
"수익률 빵빵한 펀드를 추천해 주세요"
"대출을 끼더라도 유망한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은데요"
"A카드 전환사채 지금 사도 될까요?"
"10억을 빨리 만들려면 어떻게 하죠?" 등등.
왜 많은 사람들은 종자돈을 모으던 그 착실했던 초심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할까? 왜 목돈 좀 생기면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지 못할까? 자신의 실력을 키울 생각도 없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서도 왜 절대 책임 안져주는 타인을 더 쉽사리 믿을까?
씨앗은 농사꾼의 마음처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안전하게 지키고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말 그대로 뿌리고 나서 병충해 없이 더 크게 키우기 위해 갈고 뽑고 거름 주고, 기후나 환경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가며 신중하게 판단해 더욱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기 위한 안목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노력조차 게을리 한 채 누군가가 대박 투자정보를 안겨주기만을 바란다면 당신도 쪽박 0순위 후보자일 뿐이다.
그러면 안전한 고수익 투자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삼성전자나 SK텔레콤 주식? 요즘 뜨는 리츠? 천안/아산 지역 부동산?? 이들 말고 또 어떤 것이 더 좋을까?
당신이 어디선가 '절세무공비급'을 손에 넣어 몇 년간 상당 수준의 내공을 키운 후에 세상에 출사표를 던져 봤자 당신같이 순진한 초보자들만을 노리며 도와주는 척 손을 뼏치는 하이에나들의 '밥'이 될 뿐이라는 현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냥 본인 스스로 초보자임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말고. 몇 템포만 더 참고 기다리면서 기초상품에 차곡차곡 저축하고 예금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좀더 모이거든 점 찍어둔 집도 장만하고, 또 더 모이면 사업 밑천도 장만하고, 위험에 대비할 수 있게 암 보험이나 종신보험도 들고…. 그렇게 그냥 여태 하던 대로 살면 안될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때가 되어 당신의 안목과 관심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여태 하던 기초상품말고도 안전하고 고수익인 투자상품이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전문가들이나 주위에서 추천하는 투자처에 맹목적으로 믿고 올인 했다가 손실이 나면 정부 탓, 전문가 탓, 금융기관 탓 안 할 자신 있는가? 뉴스에 소개된 '성공스토리'처럼 당신도 그대로 따라 했다가 그 사람처럼 못 벌면 팔자려니 하면서 쉽게 잊어 줄 수 있겠는가?
종자돈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난무하고 종자돈 굴리기에 대한 조언도 수 억 개는 될 듯 하다. 틀린 말 거의 없고, 잘 찾아보면 고마운 조언도 있다.
그렇지만 조만간 단돈 100만원이라도 종자돈을 만지게 될 것이고, 종자돈 굴리기에 머리털 빠지도록 고민하게 될 초보자 여러분만큼은 누가 뭐래도 잊지 말고 지켜야 할 '종자돈의 철학'이 있다.
바로 '굶어 죽더라도 머리에 베고 죽는다'는 농사꾼의 그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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