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리스트와 ‘전라도 빨갱이’ 댓글의 깊은 곳에 흐르는 논리는 단순하다. 부당하고 불편한 진실을 대놓고 말하면 빨갱이고, 진실을 외면하고 눈감으면 애국자라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의 출발점이 바로 지연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연을 알아야 한다.
나의 경우, 2008년 3월 MBC 9시 뉴스데스크 앵커를 시작하자마자 빗질이 시작됐다. 클로징멘트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청와대로부터는 반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청와대 정무와 홍보팀은 노골적으로 불평불만을 표했다. 총리실에 근무하던 지인은 청와대 모니터와 별도로 총리실이 언론 모니터를 하고 있으며, 특히 내 멘트는 자세히 기록해서 총리가 어디에 있건 즉각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말해주었다.
민주주의의 저해 요소는 수없이 많다. 그중 최악을 꼽자면 인연 따지기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 파생한 간판주의와 성형주의, 외형주의가 사회 곳곳에 해악을 끼친다. 성형주의의 폐해는 한둘이 아니라 고상하고 근사한 쓰레기와 예쁜 공해 인물, 피부 관리에만 열심인 미남미녀들이 주목을 받는다. 좋은 간판은 얼마나 많고 그런 간판 뒤는 또 얼마나 부실한가. 권력과 출세, 결과를 성공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생각 곧 위니즘(Winism)은 정의를 짓밟는다. 정도령 주의, ‘후딱후딱’ 조급주의, 얼렁뚱땅 혹은 어영부영 적당주의가 지배한다. ‘설마’, ‘웃기네’라는 냉소주의, 편 가르기, 왕따, 이분법, 다름이나 차이(Difference)를 틀리다고 보고 차별(Discrimination)하는 판단, 냄비 근성이 맴돈다. 우리 사회에는 인도에나 있을 법한 카스트제도가 있어서 나와 남을 끊임없이 나누고 비교하면서 나는 예외가 되려고 한다. 대화와 토론보다는 지시와 눈치가 지배한다.
지금 20대만 아픈 게 아니라 30대, 40대, 50대, 60대가 다 아프다. 전 국민이 아프다. 그것도 많이 아프다. 사교육을 받고 스펙을 쌓으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시민들의 총합계가 이렇다면 개인적·집단적·국가적으로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특히 교육, 주택, 직업 문제에서 치명적으로 실패했다. 정의와 공정에서 원칙을 세우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돈 문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재벌에 대한 정치권, 정부, 시민사회의 감독과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재벌이 얌전히 앉아서 감독과 규제의 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위를 차지한 입장에서 불편하고 불리한 위치를 감수할 리 없다. 재벌의 정치권, 관, 전문가, 언론에 대한 로비와 설득은 상당히 진전돼 있으며, ‘경제와 성장을 생각하라’라는 재벌 두둔 구호는 언제든 준비돼 있다.
대통령이 된 이후 그(MB)의 재능 중에서 새롭게 눈길을 끄는 것은 교사의 자질이다. 일반적인 학교나 학원에서 말하는 훌륭한 교사라기보다 기술적 측면에서 유능한 교사의 자질을 지녔다. 특히 설명하기 난해한 개념과 사건을 쉽게 알려주는 재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갔을 상당히 많은 인물과 사안들이 중요한 것으로 부각된 데에는 MB의 교사적 자질이 기여했다. 그래서 MB ‘때문’이 아니라 ‘덕택’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안철수 교수는 MB가 지닌 특성을 일정 부분 공유하지만 대부분의 면에서 정반대에 서 있다. 출발점인 집안의 배경이 전혀 다르다. 머리 좋고 똑똑한 점은 비슷하지만 사람됨은 전혀 다르다. 안철수 교수는 머리가 좋은 동시에 인간성도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에서 고위직을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지만 공통점은 여기서 끝이다. MB는 사적인 성공과 이익을 추구했지만 안철수 교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써야 하는 컴퓨터 백신을 개발하고(c) 큰돈을 벌 수 있는 제품을 공짜로 사회에 나눠주어(d) 공적인 목표를 좇았다. 모은 재산에 대한 평가에서 맑은 재물을 지녀 대비s가 된다. MB가 재벌과 기업에서 한 일에 대한 설명에는 진정성을 부여하기 어렵지만 안철수는 의사와 기업인, 교수로 변신을 하는 동안 진정성을 지켜왔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으로 재벌을 이겨내고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성과를 거둬, 재벌의 반대편에서 싸우고 이겨낸 용기와 지혜를 증명했다. 마지막에는 MB처럼 구차한 조건을 걸지 않고 거액을 그대로 기부함으로써 멋스럽게 마무리했다.
대선과 그 이후 행보를 통해 MB가 보여준 가장 큰 공로를 들라면 지도자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뀔 때 온 사회가 얼마나 깊고 넓게 변할 수 있는지 실증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보여줬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