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마.”
기어코 그는 힘겨운 속을 토해내는 목소리였다. 막연한 불안에 힘겨워하는 남자를 보는 것이 이리도 가슴 아프다니. 저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미안하면서도 손을 놓을 수 없는 마음이라니. 미어지고 찢어지다 뭉개져버려 형체가 엉망이 되는데도, 그래도 그걸 주섬주섬 쥐고는 놓지를 못하는 마음이라니.
해인은 아주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시율에게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있잖아. 나…… 포기하면 안 돼.”
“……찾으러 가도 돼?”
전에는 찾을 생각일랑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없어지거든 얼른 새 애인을 찾으라고 핀잔했는데. 저를 찾지 말라고. 그냥 잊으라고. 그렇게 수십 번 말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억지라는 걸 알지만 해인은 시율에게 조르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찾다가, 이제 없나 보다 하면 안 돼. 잘 찾아서, 나 데리러 와야 해.”
작은 몸으로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매번 도망치기 바빴던 해인이 제 손을 붙잡자 시율의 눈이 크게 변했다. 말을 바꿀까 봐 얼른 해인의 손목을 붙들며 되물었다.
“정말 찾으러 간다?”
“……강, 강. 꼭 찾으러 와야 해. 꼭이야.”
“응.”
“안 오면…… 막 울 거야.”
전과 달라진 마음은, 전보다 아프고 쓰라렸다. 전보다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더 소중해졌다.
“약속할게. 계속 찾을게.”
그가 너무도 기쁜 듯 속삭여서, 해인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길 조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얼마나 힘든 바람인지 알면서도. 시율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에 눈물을 묻고 숨을 참는 듯 말했다.
“미안해, 힘들게 해서…….”
“널 찾지 못하게 하면, 그게 더 힘들 거야.”
“……응.”
“네가 날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을 거야.”
눈물이 참아지는 게 아닌 것처럼, 이 마음도 넘치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구나.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어. 그가 너무 좋아서, 당신이 없으면 내 앞은 평생 허전하고, 버림받은 기분일 것 같아서. 결국 잊어버린 뒤에도 기억 못 하면서도 하염없이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오길 기다리게 될 것 같아서.
“우린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그럼.”
이루어지길 바라며 되지 않은 소원을 비는 수밖에 없어. 이 손이 나를 잃어버리더라도, 다시 잡아주리라 믿고 바보같이 기다릴 거야. 그의 얼굴을 잊어도, 모습을 잊고 체취와 목소리를 전부 잊어도.
나는 계속 기다릴 거야.
바보같이 기다릴 거야.
“……강, 정말 좋아해. 아니, 사랑해.”
내 영혼에도 심장이 있어서, 그 주인을 기다릴 거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