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옆을 보세요. 흰둥이가 있을 거예요. 다름 아닌 내 친구, 내 형제의 모습으로 말이죠. 그러니 우리 가끔은 옆을 보고 살아요, 윤필 작가님처럼요!
주호민 (만화가)
나는 오래전부터 혹자들이 이야기해온 “노동의 신성함” 따위는 믿지 않는다. 원하는 보람을 위해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좋든 싫든 그저 하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연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감동이 있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언젠가는 잘 살 수 있다”는 자의적 판타지로 해석하시는 보수적 사고의 소유자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감동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어떻게든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존엄이다. 힘든 상황일수록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작은 기쁜 순간에 더욱 기뻐할 줄 알고, 또한 비슷하게 최선을 다해 노동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기쁨이 되어준다. 감동의 정체는 바로 살아가는 의지 그 자체다.
또한 나는 “베품”도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베품은 어떤 고귀한 마음가짐을 갖추어 부족한 이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담긴다. 그런 것의 가치를 폄하할 이유는 없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이 그저 나눔이다. 나눔은 상대를 돕는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가는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같이 쓰고, 먹을 것이 생기면 같이 먹는다. 서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감을 알기에 같이 나누는 방식이다. 이런 그저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나눔이 더 큰 사회적 차원에서는 연대 같은 개념으로 풀이된다.
『흰둥이』에는 내내 한마리 강아지가 인간들의 사회에서 노동하고 주변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만 줄기차게 이어진다. 단순한 그림체와 상반되는 세부적인 노동현장의 모습들, 사람들의 착한 마음만큼이나 일상적으로 비정한 사회관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개처럼 일한다”는 말을 되새기게 만들 정도로 열심히 노동하는 흰둥이는 신파적이지 않게 우리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이가 흰둥이처럼 힘들어도 구김살 없이 최선을 다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노동과 나눔으로 소박하게나마 가꾸어가는 사람 사는 환경에 함께 미소를 지을 수는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격렬하게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희망을 주는 이런 작품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김낙호 (만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