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와 시녀 단비는 집에서는 예쁜 엄마 때문에 학교에서 예쁜 단짝 혜지 때문에 못난이 시녀 취급을 받는다.
의자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서러운 마음이 왈칵 들었다. 다른 애들은 다자기가 집에서 왕이라는데, 우리 집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왕이다. 이건 다 예쁜 엄마에 비해 내가 못생겼기 때문이다. 엄마가 마님이라면 나는 못난이 하녀다. 학교에서 혜지가 공주, 내가 시녀인 것처럼. 13~14쪽
반짝반짝 얼굴 가게 단비는 얼굴 투표에서 일등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못생긴 여자아이를 뽑는 투표라는 것. 단비는 우울한 마음에 학원에 가지 않고 방황하다가 예쁜 얼굴을 파는 얼굴 가게에 가게 된다. 누구보다 예뻐지고 싶었던 단비는 덜컥 새 얼굴을 산다. 가게 주인은 단비에게 별 세 개가 달린 마법 손거울을 선물로 주면서 한숨을 세 번 쉬면 사람들이 단비를 못 알아보게 될 거라고 주의를 준다.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손거울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손거울 안에 발그레한 볼을 한 여자아이가 들어 있었다. 오뚝한 코, 커다란 눈, 갸름한 얼굴. 내 마음에 쏙 들었던 바로 그 가면이 거울 안에서 살아 움직였다. 아니, 내 얼굴에서. 정말 예뻤다. 혜지보다 아리보다 훨씬 더 예뻤다. 46쪽
우리 반 새로운 공주 예뻐진 단비는 예쁜 여자아이를 뽑는 투표에서 드디어 일등을 한다. 순식간에 단비는 햇살초등학교 공주가 된다. 특히 못생겼다고 단비를 무시하고 괴롭히던 형두는 단비를 공주 모시 듯한다. 주변 여자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예쁜 얼굴을 질투한다고 생각하니 단비는 오히려 더 신이 났다.
나는 짐짓 공주처럼 굴었다. 형두가 굽실거리며 교과서로 부채질을 하자, 형두랑 같이 있던 남자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그 애들에게도 말했다. “무엄하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큰 소리로 웃느냐?”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다들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신이 나서 형두에게 물 한 잔을 떠오라고 했고, 지우개를 던졌다가 가져오라고도 시켰다. 형두는 말 잘 듣는 애완견 흉내를 내며 내가시키는 일을 했다. 63쪽
내가 공주병이라고? 단비는 얼굴 투표에서 혜지를 제치고 일등을 했는데도 예쁜 혜지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단비는 혜지보다 더 예쁘게 보이고 싶어 분홍색 원피스를 입는다. 하지만 원피스로 인해 여자아이들에게 공주병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혜지가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공주병이라고 수군대는 애들보다 말리는 혜지가 더 얄미웠다. 울컥하는 마음에 혜지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혜지랑 더 말하기 싫었다. 이 모든 게 꼭 혜지 탓처럼 여겨졌다. 혜지가 받아야 할 놀림을 내가 받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전에는 모든 여자애들이 혜지에게 공주병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전염병처럼 나에게 그 별명이 옮아왔다. 나는 예뻐졌을 뿐이지 공주병은 아니다. 71쪽
마지막 은빛 별 단비는 얼굴이 예뻐지면 한숨 쉴 일이 없을 거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짝사랑하던 수민이에게 거절을 당하면서 한 번, 여자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 또 한 번,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서 꾸중을 들으면서 마지막 한숨까지 모두 쉬고 만다. 결국 단비는 마법 손거울의 별을 모두 잃고 자신의 자리까지 잃고 만다.
“에후우.” 여느 때보다 더 한숨이 길게 나왔다. 부푼 덩어리가 펑 터져 버린 것이다. 순간 화들짝 놀라 책가방 안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마지막 은빛별도 사라지고 없었다. 서둘러 손거울에 얼굴을 비추었다. 예쁜 얼굴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손거울이 부리는 마법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볼 것이라고 했다. 큰일이다. 엄마 아빠가 나를 못 알아보고 놀라면 어쩌지? 85쪽
일층 할머니의 비밀 한숨을 세 번 쉬는 바람에 엄마 아빠조차 단비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단비는 무작정 집을 나와 등나무 밑 의자에 앉아 울다가 평소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일층 할머니의 집에 가게 된다. 할머니는 단비에게 따뜻한 밥도 차려 주고 단비의 이야기도 모두 들어준다. 할머니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단비가 얼굴 가게에 다시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쩌시려고요?”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할머니가 우리 집이 있는 팔층을 눌렀기 때문이다. “계단에 숨어 있다가 내가 일층으로 내려가면 들어가는 겨. 꼭 너 자신을 찾아와야 한다.” “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도 그랬지만, 할머니가 어쩌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집에는 엄마 아빠가 다 있는 데 무조건 들어갔다가는 일이 더 커져 버릴지도 모른다. 102쪽
가면 깨뜨리기 단비는 반짝반짝 얼굴 가게를 다시 찾아간다. 얼굴 가게 주인은 진짜 얼굴을 깨뜨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속삭인다. 달콤한 유혹 앞에 단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인다. 하지만 단비는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데…….
이건 분명히 나였다. 내가 버린 나. 예뻐지기만 하면 모든 게 멋져질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전혀 멋있지 않다. 예쁜 얼굴만 신경 쓰느라 오히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이 얼굴을 영영 잃는 것도, 즐거운 추억을 빼앗기기도 싫다. 표정 없는 이 얼굴이 예전처럼 즐겁게 웃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