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과 모성애마저 도구로 전락한 비정한 현실과
성공에 눈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녹아 있는 걸작 추리
일본 신기록을 보유한 전 올림픽 스타들이 외딴 저택에 숨어든다. 절박한 심정으로 무엇인가를 찾는 그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의 주인 센도 고레노리에게 발각되고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날 밤, 저택의 비밀 창고에서 감시 카메라로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190미터가 넘는 장신에 초인적인 힘을 가진 육상 7종 경기 선수. 센도가 단련시킨 마지막 선수이자 가혹한 실험의 대상이었던 한 여자가 그의 복수를 다짐하며 범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네 명의 스타와 괴물 타란툴라, 그들 모두를 뒤쫓는 경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지는데…….
갈색 피부, 표범같이 예리한 눈,
야성적이며 또렷한 이목구비, 탄탄한 근육에 감싸인 장신.
준야는 순간 적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주인공 타란툴라는 남편이자 스승인 센도 고레노리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병기다. 집에 숨어든 네 명의 올림픽 스타들이 센도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그때부터 범인들을 쫓아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를 시작한다. 하지만 집밖으로 나온 그녀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폭력이 난무하는 비정한 일본 사회였다. 길도 모르고 일본어에도 서툰 그녀는 때때로 파렴치한 범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잔인한 살인마 곁에 독자들을 세워놓고, 냉정하게 우리 사회의 치부를 꼬집으며 타란툴라를 가여우며 외로운 희생자로 만들어버린다.
센도를 살해한 다쿠마, 준야, 유스케, 쇼코를 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지금껏 힘겹게 얻은 돈과 명예, 가정이 깨질까 두려워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불안에 떠는 나약한 인간들일 뿐이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이 빠르게 교차되는 가운데서도 진지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렇게 양쪽 모두에 공평하게 나누어진 시점 때문이다. 저자는 두 부류의 악인 모두에게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 그런 참혹한 재앙을 만들게 된 것도 성공만을 찬양하는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기인한 것이라는 묵직한 반성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진지함 속에서도 속속들이 파고드는 공포감, 논리적 추리, 반전의 쾌감을 놓치지 않았다. 성공하겠다는 맹목적인 욕심에 영혼을 팔고 또 그것을 숨기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이기적인 스타 선수들과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이들 모두를 쫓는 경찰의 시점을 차례로 교차시키며 빠르고 생동감 있게 사건을 전개해간다. 인물의 심리와 미스터리, 긴박감 넘치는 상황 묘사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재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름다운 흉기》에 나온 올림픽 스타들의 약물복용과 인간 개조라는 소재가 현대 과학에 비춰봤을 때 약간 어설픈 느낌은 있지만, 30년 동안 80편이 넘는 작품을 쓰며 히가시노 게이고가 꾸준히 제기했던 일본 사회 문제에 대한 묘사는 결코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첫 출간 이후 25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법에만 몰두하는 인간의 모습과 약한 자에게 더욱 폭력적인 사회가 주는 섬뜩함은 살인의 잔인함을 넘어서는 충격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일본 최고의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사하는 충격적 반전과 긴장감의 묘미는 물론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그의 고민의 깊이를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배신과 복수로 점철된 이 피 튀기는 혈전을 숨죽여 따라가다 보면 인간성과 모성애마저 도구화하는 비정함과, 성공지상주의에 눈멀어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끝내 풀지 못하는 개인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목격하게 된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팽팽하게 가로챌 뿐 아니라 사회와 인간에 대한 묵직한 성찰까지 선사한다는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잊지 않고 있다. _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