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야근을 하고 밤늦게 귀가하는데,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 어느 고층집 베란다에 누런 조등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 속을 딱 때렸다. ‘아, 정신없이 살다가 아파트 안방에서 죽으면 저렇게 베란다에 조등 하나 걸고 끝나겠구나.’ 밥벌이에 파묻혀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 안방에서 죽는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박정만 시인은 ‘나는 사라진다/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終詩’ 전문)라는 절명시를 남겼지만, 나는 우주로 사라지기 전에 내가 어쩌다 우연히 태어나 살게 된 이 우주란 동네를 좀더 알아보고 싶었다.
--- p.21
약 300년 전인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물리학자?역사학자이기도 한 팔방미인형의 천재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1646~1716)는 “왜 세상은 텅 비어 있지 않고 뭔가가 가득 차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미적분의 발견 업적을 놓고 뉴턴과 다툰 것으로도 유명한 라이프니츠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이 세상이 환상일 수도 있고 모든존 재는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들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우리가 환상에현혹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말하자면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 곧 만물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하는 원초적인 물음이었지만, 이런 천재도 끝내 그 정답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만 물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 p.34
허블의 발견에 따르면, 우주 팽창은 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만약 이웃 안드로메다 은하로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곳을 중심으로 모든 은하들은 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을 것이다. 우주의 모든 은하들은 이처럼 서로 후퇴하고 있다. 이 경우 은하들이 스스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팽창은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에 은하 간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은하들은 늘어나는 우주의 카펫을 타고 서로 기약 없이 멀어져가고 있는 셈이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그러므로오늘 우리가 사는 우주는 어제의 우주가 아니며, 내일의 우주는 오늘의 우주와는 또 다르다는 얘기다.
--- pp.44-45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몸이나, 흙, 나무, 공기, 물 등등 원자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과학지식을 단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자의 종류가 100여 가지 되는데, 양성자 1개를 가진 원자번호 1번인 수소에서부터 시작해 94번인 플루토늄까지 94종이 자연에서 발견되며, 나머지는 실험실에서 합성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이런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다.
--- p.60
베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8년, 별 속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는 핵융합으로 별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수만 년 동안 별이 반짝이는 이유를 궁금해 했던 인류는 베테 덕에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별이 반짝이는 이유를 처음 알아낸 베테에게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다. 32세 노총각인 베테가 애인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 때, 여친이 문득 서녘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저기 저 별 좀 봐. 정말 예쁘지?” 그러자 베테가 으스대면서한 대꾸가 정말 놀라운 내용이었다. “응, 그런데 저 별이 빛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지.”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마침 그때가 논문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베테는 별의 에너지원 발견으로 196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 p.71
만고에 변함없이 보이는 별자리도 사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모습이 바뀐다.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저마다 거리가 다를 뿐만 아니라, 항성의 고유운동으로 인해 1초에도 수십~수백 km의 빠른 속도로 제각기 움직이고 있다. 다만 별들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그 움직임이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별자리가 정해진 이후 별자리의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별의 위치는 2천 년 정도의 세월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더 오랜 세월, 한 20만 년 정도가 흐르면 하늘의 모든 별자리들이 완전히 변모한다. 그때까지도 지구상에 인류가 생존한다면 그들은 지금 밤하늘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별자리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별자리마저 덧없다고 여기지는 말자. 기껏 해야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에겐 그래도 별자리는 만고불변의 하늘 지도이고, 당신을 우주로 안내해 줄 첫 길라잡이니까.
--- pp.90-91
밤하늘에 동서로 길게 누워 가는 이 빛의 강, 은하수를 서양에서는 밀키웨이milky way라 일컫는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은하수는 제우스의 부인 헤라 여신의 젖이 뿜어져 나와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은하수를 미리내라고 불렀다. ‘미리’는 용을 일컫는 우리 고어 ‘미르’에서 나왔고, ‘내’는 강이란 뜻이므로, 한자로는 용천龍川, 곧 용의 강이다. 미리내란 우리 이름이 밀키웨이란 말보다 훨씬 멋지고 품위 있어 보인다. 태양계가 있는 우리은하를 그래서 미리내 은하라고도 한다. 흔히 ‘우리은하’로 부르는데, 우리나라처럼 붙여 쓰는 게 자연스럽다. 영어로는 밀키웨이 갤럭시라 하고, 또는 머리글자를 대문자로 써서 그냥 갤럭시The Galaxy라고도 한다.
--- p.100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km다. 이걸 1천문단위 AU라 하여 태양계를 재는 잣대로 쓰인다. 이게 대체 얼마만 한 거리일까? 천문학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가장 간단한 답으로는,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도는 초속 30만 km인 빛이 8분 20초 걸려 주파하는 거리다. 초로는 약 500초인데, 달까지의 거리의 약 400배에 달하며, 시속 100km의 차로 달리면 무려 170년이 걸린다. 우리가 해바라기처럼 올려다보는 태양이 실제로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먼 거리에서 내뿜는 별빛이 이리도 뜨겁다니 참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것이 태양 표면 온도 6천도의 위력이다. 태양이 만약 10%만 지구 가까이에 위치했다면 지구상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부디 태양이 그 자리를 지켜주기만을 기도해야 한다.
--- p.121
리비트는 수백 개에 이르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광도를 측정했고 여기서 독특한 주기-광도 관계를 발견했다. 일 주기를 갖는 세페이드의 광도는 태양의 800배이다. 30일 주기를 갖는 세페이드의 광도는 태양의 1만 배이다. 1908년, 리비트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 연구결과를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 천문학연감」에 발표했다. 리비트는 지구에서부터 마젤란 성운 속의 세페이드 변광성들 각각까지의 거리가 모두 대략적으로 같다고 보고, 변광성의 고유 밝기는 그 겉보기 밝기와 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에서 유도될 수 있으며, 변광성들의 주기는 실제 빛의 방출과 명백한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 p.136
우주에 관해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과연 우주는 끝이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이 우주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우주의 끝이라고 할 만한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의 경험칙에 비추어보면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우주에 적용하면 ‘에러’가 뜬다. 끝이 있다는 것은 그 바깥으로 다른 무언가가 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끝이 없다면 크기가 무한대라는 뜻인데, 일찍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대는 상상의 산물일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삼단논법으로 멋들어지게 증명한 바 있다. “무한대라 하더라도 유한한 것들의 집합일 수밖에 없다. 유한한 것들은 아무리 합쳐봐야 그 결과는 유한하다. 그러므로 무한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 p.150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1882~1970)은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우주의 개념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의 하나”라고 평했다. 현재 우주의 크기는 약 930억 광년이라는 NASA의 계산서가 나와 있다. 138억 년 전에 태어난 우주가 이처럼 큰 것은 초기에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팽창했기 때문이다. 이를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하지만, 우주는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쨌든 현대 우주론은 우주의 끝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우주는 유한하나 그 경계는 없다.”
--- p.158
블랙홀에 관해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만약 내가 블랙홀 안으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문제다. 일견 무시무시한 상상이긴 하지만, 이 문제는 변함없이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이 바로 ‘스파게티화spaghettification’다. 블랙홀 가까이 접근하자마자 모든 사물은 가락국수처럼 길게 늘어져버린다는 얘기다. 이유는 이렇다. 블랙홀의 가공스런 중력이 당신 몸의 각 부분에 작용하면서 그힘의 차이로 인해 몸이 길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중력의 크기가 당신의 지금 키만큼 유지되게 해주고 있는 정도지만,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먼저 당신의 발이 블랙홀로 접근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블랙홀의 엄청난 조석력이 머리보다는 발쪽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 발끝과 머리에 가해지는 중력의 차이는 이윽고 지구의 총중력과 동일하게 된다.
--- p.183
갈릴레오가 천동설을 깨뜨린 이후의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비로소 인류는 근대과학의 문을 열고 참다운 과학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진리를 밝히기 위해 갈릴레오 자신은 숱한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했지만, 인류의 머릿속에서 천동설의 굴레를 벗겨준 과학자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진리에 이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철학은 우주라는 드넓은 책에 써졌다. 그것은 수학의 언어로 써졌으며, 그것의 문자는 삼각형, 동그라미와 그 밖의 기하학적 수치들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수학에 더욱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pp.193-194
태양계를 한번 둘러보면, 이 동네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지구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도 하늘에서 빛나는 저 태양이야말로 태양계의 지존이다. 무엇보다 태양계 모든 천체들이 가진 전체 질량 중에서 태양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무려 99.86%다. 나머지는 고작 0.14%다. 놀랍지 않은가? 여덟 행성과 수많은 위성, 수천억 개에 이르는 소행성, 미행성, 성간물질 등 태양 외 천체의 모든 질량을 합해봤자 0.14%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그 부스러기 중에서 목성과 토성이 또 90%를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70억 인류가 아웅다웅 붙어사는 지구는 태양계라는 큼직한 곰보빵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 하나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태양의 실체이고, 태양계라는 우리 동네의 놀라운 실제 상황이다.
--- pp.209-210
지금 이 바다가 마구 우리 인간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 핵폐기물이 바다에 그냥 버려지고, 사람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온갖 쓰레기들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 한복판에는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같은 쓰레기들이 한반도보다 더 큰 면적의 쓰레기 섬을 만들어놓았다. 이것은 지난 40년간 100배나 커진 거라 한다. 석기시대, 철기시대를 살아온 인류가 20세기 후반부터는 ‘플라스틱기’에 살고 있다고도 할 수가 있다. 함부로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우리 몸으로 되돌아온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조각을 먹은 바다 동물들이 지금도 수없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어느 한 나라, 국제기구 하나도 이 문제에 손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유엔이나 선진국들이 발 벗고 나서서 바다를 치료하지 않으면 곧 큰 재난이 닥칠 것이다.
--- p.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