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의대에 가려면 꼭 적성에 맞아야 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간혹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으레 ‘아, 의대는 성향에 맞아야 다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내 경험으로 본다면 그 말은 80% 틀린 말이다. 적성에 안 맞아서 의대를 그만뒀다는 학생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람과 어울리는 게 서투른 경우가 많다. 적성보다는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로, 대학에 입학해서도 동급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 여파로 시험에서 낙제하고 결국 유급 당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시험성적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의대는 다른 대학과 비교할 때 공부할 양이 너무 방대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다. 스터디 그룹을 짜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거나, 선배들이 건네주는 족보 등이 꼭 필요하다. 이쯤 되면 동기, 선배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쌓는 게 의대생에게는 생존전략이 되는 셈. 유대관계가 좋으면 그만큼 편하게 진급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힘들게 학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정말 이건 적성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 pp.38-39
만약 조건이 같은 대학이라면 역사가 깊은 곳을 선택하자. 구체적으로 학교 역사가 10년 정도는 된 곳을 권하고 싶다. 의사 생활은 선후배 관계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앞에서 끌어주는 동문 선배가 많다는 것은 의사 생활을 시작할 때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요즘은 신생 의대들도 나름대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약점을 보완하고, 신생 의대만 가질 수 있는 역동적인 장점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많이 시도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부분이 100% 정답은 아니지만 말이다.
--- p.45
이외에 의사 생활을 하면서 다른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의료계에 필요한 전자 차트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보험회사에 취직해서 의료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도 있다. 제약회사 경영진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으며 의료와 관련된 기사를 쓰는 기자나 방송인으로 변신한 이들도 있다. 아예 의사를 하다가 변호사, 정치가, 작가 등 의료계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 물론 다변화된 사회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의과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꼭 임상의사가 될 필요는 없다. 의학지식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의학을 공부했다는 것은 개인에게 엄청난 재산이 될 수 있다. 그 재산을 잘 사용하는 것도 재능이고, 꼭 임상의사로 성공해야 의사로서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 pp.63-64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인기 과였던 외과, 내과의 경우 지금은 힘들다는 이유로 주가가 하락하고 있고 인기 과가 아니었던 정신건강의학과, 피부과, 성형외과와 같은 과들이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다. 물론 ‘의료분쟁이 적고, 힘은 적게 들고, 돈은 많이 벌고’가 요새 인기 과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이 기준도 변할 것이다. 이 기준은 대충 5년마다 한 번씩은 변하는 것 같다. 그러니 5년이나 10년 후면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 p.148
하지만 돈 때문에 지레 겁먹지는 말자. 시도하기 전에 포기하면 평생 후회로 남게 된다.
어디에나 길은 있는 법이다. 일단 6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의과대학이 있다. 현재는 울산대, 성균관대, 가천대가 그런 학교인데, 일정 성적만 유지한다면 학비가 들지 않는다.
또한 어느 학교든 성적우수 장학금이 있기 때문에 공부만 잘하면 학비가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기억하길 바란다. 또한 보통 의대생들은 타과 학생들처럼 방학 때 취업준비를 위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 의대를 졸업하면 임상의사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방학 때는 철저하게 논다. 그런데 만약 형편이 어렵다면 이 방학 기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화끈하게 며칠 쉬고, 그 후부터는 학비를 버는 데 철저하게 투자하면 된다.
--- p.182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바뀌어도 몸과 마음을 고치는 의술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점, 바로 그 점이 의사직의 유일무이한 매력이자 가치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이겨내야만 얻을 수 있는 존귀한 것이기도 하다. 환자가 되어보면 다 알게 되는 일이지만, 아플 때 의사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다.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소중한 의술을 펼치는 데서 성취감을 맛보는 보람되고 축복받은 직업, 그것이 바로 의사다. 그런 보람을 마음에 품고 일하는 의사들은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충만한 자부심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 이만한 직업이 또 있겠는가?
--- p.230-231
… 질문과 토론 시간에 이종욱은 이런 발언을 했다.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장래를 선택하세요. 허나 가장 비겁한 선택은 ‘돈’을 기준으로 한 선택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되겠다고요? 그럼 당장 그만두고 경영인이 되는 공부를 하세요.”
---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