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혜숙 ruru100@yes24.com
유럽의 문화를 이해할 때 축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어원적으로 볼 때 축제는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종교적 의식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들에게 축제는 일상의 연장에 선 하나의 생활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 15개국의 축제를 다루고 있는 『유럽의 축제』는 축제를 통한 유럽 문화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축제에 얽혀 있는 유래와 전통, 분위기를 스케치하면서 각 나라에서 행하는 다양한 종류의 축제를 소개하고 있다.
머리말에 있는 편집자의 글에서 보이듯 이 책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축제 문화를 다루어 보겠다는 기획 아래에서 출발하여 민속학자, 저널리스트, 사학자, 작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다수 집필에 참여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축제의 양상과 볼거리를 저자의 입담으로 맛있게 양념한 개성 있는 문화에세이가 아니라 각 축제에서 보이는 일반적 사실을 간략하게 정리한 다이제스트 판에 가깝다. 각 축제에 대한 설명이 짧은 편이어서 많은 것을 읽어내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유럽의 다양한 축제 문화를 비교해가며 가볍게 훑어 나갈 수 있다. 또한 올 컬러로 수록된 현장 사진들이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유럽 각국의 축제를 둘러 보는 데 쏠쏠한 재미를 더한다. 더불어 각 장 끝에 축제가 열리는 지역과 기간이 실려 있어 유럽의 축제 현장에 몸소 가 보고 싶은 사람에겐 유용한 자료가 된다.
이 책에서 보이는 유럽 축제는 '일상성'과 '기독교'를 공통 분모로 삼고 있으며 세례, 결혼 등 조촐한 가족 축제, 성탄절, 부활절, 성령 강림절과 관련된 종교적 축제, 각 나라에서 행하는 독특한 민속 축제로 크게 나뉜다. 특히 성탄절과 부활절, 성령 강림절을 기본 축으로 하는 다양한 종교적 축제는 오랜 기간 기독교의 세례를 받아 온 유럽 역사의 흔적을 보여준다.
각국의 축제가 제각각 흥미로운 특성을 띠고 있지만 스페인만큼 흥미로운 나라는 없다. 스페인에는 `축제 속에 산다(vivia la fiesta)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상과 축제의 구분이 없으며 전 지역을 통틀어 축제가 열리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을 만큼 축제에 열광한다. 또한 몇 년에 걸쳐 이곳 저곳의 축제를 찾아 다녀도 똑 같은 축제를 두 번 보는 일이 없을 정도로 내용도 풍성하다. 스페인 사람들은 휴일을 전후로 하여 며칠 동안 축제 행사를 하는데 축제일이 화요일인 경우, 월요일부터 노는 것이 보통이며 일요일에 설날이나 노동절을 맞으면 월요일까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노동과 축제가 동시에 존재하고, 휴일과 평일 사이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은 스페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축제를 조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축제라고는 먹고 마시는 것밖에 없는 덴마크와 비교할 때 무척 대조적이다.
미약하나마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편집자의 논조가 있다면 유럽의 축제는 고유한 전통성으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상당 기간 유지되리라는 낙관적 해석이다. 물론 이러한 전통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 싹튼 문화 형식과 융합하면서 나름대로 변화하겠지만 유구한 문화권으로서의 오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적 자긍심이 대단한 유럽 국가들의 축제를 살펴보는 동안 우리의 축제 문화도 한 번쯤 되돌아 보게 된다. 축제가 생활화되어 있지도 않지만, 기획되는 축제 역시 전통과 연결되지 못한 채 일회성 이벤트에 머물고 맘은 전통에 대한 애착이 부족한 우리네 현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