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같이 빛나던 젊은 날들이, 어떨 때는 안개비에 싸인 듯이 막막했던 그런 날들이. 어리석었지만 아름다운 나날들이 모두 이야기 속에 들어있었다. 내 안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이 밀려왔다 부서지고 사라지는 파도와 같았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는 어떤 회한과 슬픔이 내 가슴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눈물과 회한으로 출렁이던 물결이 잦아들고 그 물기들이 어떤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느낌말이다. 마음속의 물길은 처음에는 급류였고 탁류였지만 이제 범람하지는 않을 듯했다.
누나는 어떤 슬픔도 그것이 이야기가 된다면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어떨 때는 짙은 단풍이 들듯이 색깔을 얻은 추억이 생생해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색이 바래고 말라서 낙엽처럼 바스러지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하나의 여행과도 같았다.
--- p.13
사랑하는 당신.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요?
언젠가 내가 말했던 적이 있는 얘기도 있고 또 내가 한 번도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얘기도 있어요.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나 역시 당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얘기, 그리고 내가 보고 듣고 만나고 겪은 당신에 대한 이야기 말이에요.
그러나 미안하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내 첫사랑이 아니에요. 당신도 아시겠지만요.
--- p.14
백골단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순간에 나도 무언가 둔탁한 물체로 어깨를 맞았습니다. 곧이어 정강이에도 몽둥이의 충격이 오면서 앞으로 쓰러졌습니다.
“학생들 좀 그만 때려!”
기자들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앰뷸런스의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점차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나도 쓰러져서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늘게 감기는 실눈 사이로 우리가 뿌린 유인물 중에서 아직도 수거되지 않은 몇 장이 그때까지 길거리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날카로운 앰뷸런스 소리와 숨 가쁜 무전기 소리. 웅성거리며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 눈꺼풀이 무거워졌습니다. 쓰러진 내게는 소리가 점차 잦아드는 듯했습니다. 우리를 그 무자비한 폭력의 자리에서 그나마 막아준 것은 사람들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가을날 같은 그날의 높고 푸른 하늘이 감기는 눈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가물거리는 의식 사이로 그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무거운 눈꺼풀이 감기면서 내 의식은 포근하고 아련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일 년여 전의 그 서늘하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로.
1988년의 어느 가을날, 불빛이 따뜻했던 그 저녁의 학교 앞 술집. 맞은편에 그네가 웃으면서 앉아있었습니다. 맑고 귀엽고 고운 그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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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학교 밖 제기동의 이웃들은 무거워 보이는 잿빛 하늘에 눌린 야트막한 낮은 지붕을 이고 있었습니다. 사적(史蹟)으로 지정된 그 고딕식 석조 건물은 녹지를 배경으로 마치 고성처럼 하늘을 뚫을 듯 멋지게 솟아있는데 주변은 옹색한 개천이 갈라놓은 삐뚤빼뚤한 골목길을 품속에 웅크리고 안은 가난한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입니다. 마치 크나큰 사찰 아래 가난한 사하촌(寺下村)이 있듯이 고려대학교라는 그 대학 캠퍼스와 제기동이라는 그 동네는 일종의 부조화(不調和)를 연출하며 막걸리 장사와 막걸리 손님 정도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 부조화의 공간 안에 지금으로 본다면 다소 촌스러운 차림의 젊은이들이 불같은 정열을 품은듯한 형형한 눈빛으로 마치 출세욕에 불타는 표정을 하고는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 p.29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러저러한 학생운동에 대한 것이 아니고 내가 보고 듣고, 만나고 겪은 미혹한 열정과 어리석은 감정의 나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부서지는 밤바다의 포말(泡沫)과 같은 사랑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우리가 맺었던 시절과의 인연이 또 그런 상황이라 역시 학생운동의 그 환경과 조건에서 쉬이 벗어날 수는 없네요. 사랑이란 온전히 둘만의 게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가 놓였던 시대와의 연인과 완전히 떼어놓을 수 없는 산물이기도 합니다.
--- p.32
사랑이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그 시절 분단된 조국의 불우한 운명 운운하며 사랑과 연애를 어떤 퇴폐성으로 간주하는 유아적 단상(斷想)을 가지고, 또는 ‘진보주의자는 그래도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도의 그런 앙상한 테제만을 가지고 현실과 욕망의 불길 속에서 너울대며 춤추는 우리의 사랑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사랑에 대한 학습의 부재, 커리큘럼의 부재, 나아가 사랑에 대한 의식화의 부재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대의 정치 사상적 문제,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에 대한 견해 차이와 이에 대한 집단적 논의 과정의 반의반만이라도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탐구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유용하고 가치 있는 어떤 결론과 ‘사랑의 의식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하여튼 우리는 혁명사는 읽었지만 사랑에 대해서 별로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 p.36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네가 어느 순간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내 팔을 조금 더 당기더니, 그대로 살며시 뒤꿈치를 들고 입술을 가져왔습니다. 그네의 입술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렇게 눈을 감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붉은 입술이 장난처럼 또는 운명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 세상의 많은 남자들은 어떤 태도와 행동을 보일까요? 나는 저절로 입 속이 벌어졌습니다만.
그네도 나도 술이 있어 그런 용기를 내었다고 할까요? 술이라는 참으로 귀중한 정신의 음료가 있어 욕구는 좀 솔직하게 표현되고 책임은 좀 가볍게 다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 p.78
아아, 그러나 나는 ‘결사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약하게 흔들렸던 그때의 청년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20대란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자꾸만 미끄러지는 얼음판 위의 발걸음과도 같은 시간이에요. 돌이켜보면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날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손에 쥐지 못하고 빠져나간 모래와 같은 시절입니다.
무엇이든지 온몸으로 부딪쳐서 한번 붙어볼 만한 나이이기도 하지만 망망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보석 같은 젊음이 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준비해야 할 연대(年代)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20대는 인생에 있어 봄날처럼 환하게 피고 쓰러져간 꽃의 연대와 같은 아련한 청춘이기도 하잖아요.
--- p.165
“임수경 지원 투쟁이라고…. 끝내주는데… 대찬성이야.”
하태식을 대장으로 하는 우리 전대협 결사대에게 구체적인 투쟁 계획이 전달되었는데 이름하여 ‘임수경 지원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통일의 꽃’ 임수경 동지의 정당성과 무사 귀환을 외칠 것입니다.
기왕 구속을 각오한 정리 투쟁에서 그 투쟁의 상황과 내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장을 하겠지만 ‘임수경 지원 투쟁’이라고 대제목이 부쳐질 그 결사 투쟁이 내심 자랑스러웠습니다. 가까이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는 못하겠지만 멀리서나마 조직적이고 정치적으로 함께 한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었어요.
--- p.172
역내 약속한 장소로 한 사람씩 결사대원들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작은 가방을 하나씩 등에 메었습니다.
“여기 오늘 관악산 등반가는 분들이죠?”
“예. 어디까지 가실 건가요?”
“예. 저는 연주암까지 갈 겁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번 산행 대장입니다.”
말은 그렇게 나누었지만 우리는 그날 관악산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관악산’과 ‘연주암’은 일종의 암호였습니다. 서로 초면은 아니었지만 ‘관악산’ 등반과 ‘연주암’이라는 단어를 마지막 인식 암호로 설정해놓았습니다.
“저 친구는 연주암까지 가는 건 아니고. 밑에서 우리 상황을 지켜봐 줄 거야. 베이스캠프하고 계속 연락을 해주는 친구야. 그래야 곧바로 학교에 대자보라도 붙일 수 있지.”
전대협 투쟁국에서 나온 한 친구는 우리 결사대의 상황을 지켜보아 주는 연락망의 역할을 맡은 이였습니다. 그는 가방을 메지 않았고 신문 한 부를 손에 말아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일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 p.177
그때쯤 나는 ‘매미’의 생애로 서술된 중의적 표현을 눈치챘다고 할까요?
그건 양질전화의 변이를 위해 땅속이나 어둠 속에서 길고 지루하게 기다리며 성장해야 하는 오랜 준비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결정적 시기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올 정도의 힘과 집중력을 발휘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야 하며 그 이후 자신을 버리고 전체를 위해 용맹한 외침을 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혁명이란 것이요.
그 여름 내내 귓전에 울렸던 매미 울음소리는 인내의 세월을 견디고 어떤 결정적 시기에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혁명과 사랑의 고고성(呱呱聲)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 p.190
그렇게 자고 일어나 아침이면 우리는 모두 주르륵 앉아서 아침 점호를 받을 것입니다. 별다른 보고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인간의 머릿수가 몇 개인지만 확인받으면 그뿐입니다. 그러면 바삐 지나가는 교도관들이 재빠르게 지난밤 우리의 삶과 죽음을 살펴줄 것입니다.
사방에 잡물(雜物)이 별로 없어 작은 소리도 울리듯 잘 들려오는 그곳의 복도는 길고 아련한 울림통과 같았습니다. 덜커덩하는 소리가 먼 복도에서부터 울려오며 부산스런 소리가 들리면 구수한 밥 냄새가 먼저 코에 닿습니다. 그때쯤 ‘배식’하는 소지의 즐거운 알림이 들려오면 벽 밑에 있는 조그마한 식구(食口)통을 열고 그 앞에 마른 수건을 한 장 깔아놓습니다.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이 있다는 것은 끼니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하루의 징역을 접어주는 표시와 같은 것입니다.
--- p.208
“결국 산개전(散開戰)이란, 각자 맡은 참호 속에 있더라도 중앙과 연결선이 있어야지. 운동도 삶도 개인이 혼자서 계속 밀고 갈 수는 없어. 조직이 있어야 해. 그런 게 없다면 그건 운동이 아니지. 우리는 냉담해지고 쓰러질 거야. 그래서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그네의 이런 말도 기억이 납니다.
애정을 가진 의식화 대상. 우리는 이 존재에 대한 애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삶의 고비에서 일어나는 어떤 결정이란 그걸 맞이하는 개인의 자유의지일까요, 아니면 운명적 인연이 만들어 놓은 강요된 선택일까요?
--- p.258
“NL의 대중노선과 통일전선 노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NL의 사회 지향도 PDR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르주아지 혁명이 아닙니다. 바로 인민민주주의 혁명이오.”
마른 몸매에 안경 뒤의 눈빛이 빛나는 그는 ‘하오, 있소’ 라는 독특한 어체를 썼습니다. 강한 억양이 없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하는 말본새, 하지만 다소 고루한 말투에 딱딱한 한자어를 자주 썼습니다. 그는 레디컬했고 논리 정연했으며 음의 고저가 없는 평탄한 말투에 단어만 딱딱 끊어서 말하는 투였습니다.
“남한 혁명의 모든 운동은 비합(非合)에 뿌리를 두고 반합(半合)에 둥지를 틀며 합법(合法)에 가지를 뻗어야 한다, 이겁니다. 뿌리 없는 가지가 있겠습니까?
만약 합법적 영역에만 활동의 모든 것을 둔다면 그 사람은 활동가일 수는 있겠지만 운동가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운동이란 정당한 목표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어떤 희생도 스스로 각오하는 겁니다. 합법적 영역의 시민운동이나 의회주의 같은 수정주의 운동 이런 걸로만 한국 사회 운동의 전망을 봐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학출들이 이런 성향이 많아요. 학출 특유의 쁘띠성이 만개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소.“
--- p.262
“어머! 비 온다.”
“뛰자. 하나, 둘, 셋! 뛰어!”
여름날 예고 없는 소나기 내리는 그 밤, 우산이 없어서 소나기를 맞으며 우리는 동네 생맥주 가게까지 뛰었습니다. 길거리의 빗물이 튀어 종아리를 적시고 내 슬리퍼를 적시고 그네의 샌들을 적셨습니다. 어느새 비에 젖은 그네의 셔츠에서 붉은 속살이 배어 나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키득대면서 넘치는 생맥주 거품에 입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연인들은 심각한 얘기 잘 안 한대… 세상에 민족, 운동, 통일 이런 걸 얘기하면서 연애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나.”
어느 때 그네가 말한 그 말처럼 우리는 반제애국전선이나 조직 활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동네에 새로 생긴 만두가게에서 김치만두가 좋은지 고기만두가 좋은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식은 밥을 구수한 누룽지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고 어설픈 홍콩영화나 9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에 대해 비평했습니다.
맞아요. 정치적 문제, 사상적 문제 이런 건 모두 삶의 문제로 녹아나야 하는 겁니다. 어떤 사상적 공감을 먼저 내세우면서 ‘동지적 연인’ 뭐 이런 걸 되뇌는 커플은 사랑이 가진 아삭아삭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모르는 것이랍니다.
--- p.285
이별 없는 만남이 없듯 상실 없는 사랑이 또 얼마나 있을까요? 계속해서 채워가고 만족하는 것이 사랑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유치하고 평면적인 망상으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일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잃어버릴 개연성(蓋然性)의 확대이며 언젠가는 ‘사랑’ 그것마저 상실하고 절절맬 그 난감함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p.332
그 시절, 내 기억의 날씨는 명료한 맑음보다 애써 감추려 했던 관성과 무언가를 잊으려 했던 아픔으로 희뿌연 연무(煙霧)에 싸인 흐린 날로 남아 있습니다. 아침 안개 속에 아직 채색하지 않은 회색빛의 웅장한 아파트 숲이 올라가는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았습니다.
반제애국전선에서 비밀 MT를 갔던 능곡 ‘평화의 집’보다 더 먼 곳에 사람들이 살기 위해 회색빛의 아파트 숲을 만들고 있었어요. 신도시가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일산’이라고 불렀습니다.
--- 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