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편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성인들은 살아 있습니까, 죽었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오래전에 죽었다.”
그러자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왕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이군요.”
무엇이 ‘찌꺼기’인가? 그대가 주워들은 모든 것, 책에서 읽어 집착하고 주장하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찌꺼기’다. 과거의 것에 집착할 때 그대는 찌꺼기를 수집하는 자다. 쓰레기를 모으는 자다. 무덤가를 서성거리는 자다. 생명계는 더할 나위 없이 살아 있는데, 그대는 죽은 과거를 파헤치고 있다. 마치 무덤 파는 자처럼.
환공이 화가 나서 말했다.
“수레 만드는 목수인 주제에 무엇을 안다고 떠드는 것이냐?
네가 지금 한 말에 대해 이치에 닿는 설명을 하지 못하면
목숨이 없어질 줄 알라.”
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수레 만드는 평범한 목수가 왕 앞에서 현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배울 준비가 된 자, 그는 어디서든 누구에게서든 배울 수 있다. 하찮은 목수에게서든 걸인에게서든 배울 수 있다. 그가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러나 이 왕은 죽은 성인들로부터는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살아 있는 한 수레 만드는 목수에게선 아니다.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살아 있는 평범한 목수가 죽은 성인보다 낫다고.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를 숭배하지 않을 것이지만 신이 그를 신뢰한다.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신은 새로운 것을 믿는데 인간은 낡은 것을 믿는다.
신은 언제나 새로운 나뭇잎을 만든다. 그렇기에 낡은 잎사귀는 떨어지는 것이다. 신은 그 자리에 새롭고, 신선하고, 젊은 잎사귀를 탄생시킨다. 신은 여전히 젊고 새롭다. 따라서 종교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종교는 너무 권위적이다. 신은 권위를 믿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라. 신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창조하는지 보라. 그대의 머리로는 신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신의 방식은 이렇다. 인간이 인생을 많이 살아 어느 정도 현명해지면 신은 그를 거두어들인다. 그대가 아흔 살 넘도록 살고, 많은 일을 겪고,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경험을 쌓아 결국 삶에 대한 지혜를 얻을 만하면 신은 그대를 불러들인다. 이제 돌아오라, 너의 생은 끝났다 하고. 그리고 신은 그대의 자리에 한 아이를 탄생시킨다. 그대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한다. 신은 많은 지식보다 순진무구함을 사랑하는 듯하다. 나이 먹고 빛바랜 나뭇잎보다 연약한 새순을 사랑하는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생명은 젊음을 유지해야만 하고, 또 젊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신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곧 영원히 젊다는 것을 뜻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