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근대성을 떠받치는 중추적 제도들인 법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깊은 탐구와 통찰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저자인 재서노프 교수는 법률가로 훈련을 받은 이후 코넬대학교의 과학기술학(STS) 학과를 창설하여 키웠으며, 학문적 생애의 대부분을 과학과 법, 그리고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바쳤다. 유전공학, 화학 독성물, 태아 권리 등의 법적 논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담은 이 책은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에게 필독서일 뿐 아니라, 미국의 과학과 법에 관심있는 연구자들이 꼭 봐야 할 핵심적 텍스트다. 이 분야의 세계적 학자인 재서노프 교수의 첫 한글어판 출간이라 더 의미가 깊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
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독립적일까? 과학자들의 말은 대개 이렇다. “과학적 결론은 주장이나 의견이 아니라, 반드시 자료에 근거한다.” 다른 한편, 법원이 과학적으로 근거없는 두려움이나 반대에도 귀기울임으로써 과학을 위협하고 있다는 견해도 많다. 그러나 맹목적인 과학의 만용에 개입해 윤리 원칙을 확립한 게 법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쉴라 재서너프의 『법정에 선 과학』은 실제 사례를 통하여 과학기술과 법 사이의 긴장관계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황우석 사건, 광우병 파동에서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쟁점을 둘러싸고 폭발적인 논란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은 합리적인 논의를 위한 출발점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발전과 법의 역할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금태섭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디케의 눈』저자)
진실과 허위가 명백히 구분된다는 전제 아래, 사람의 말이 허위란 이유만으로도 형사처벌될 수 있다고 믿는 법관들과 정치인들에게 권한다. 이들은 법의 권위를 세우기는 커녕 법을 사이비과학의 제단에 바치려는 자들이다. 이 책 『법정에 선 과학』이 보여주듯, 법의 권위는 ‘진실’에 대한 굴종을 포기하면서 나온다. 법원은 스스로도 과학적 분쟁을 해결하거나, 과학적 분쟁과 전혀 관계없이 사물들에 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실리콘과 그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명백한 입증 없이도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거나, 산모의 태아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진실의 조건을 규명하려는 노력들은 ‘재판’이라는 또 하나의 진실추구의 장에서 그 사회의존성과 시대성을 확인한다. 토마스 쿤, 칼 포퍼 등이 이룬 연구성과들이 어떻게 미국 재판의 사실인정 기준에 영향을 주는가에 관심 있는 과학철학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법)
20세기를 통해 사람들은 과학과 법 모두 인간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 이전까지 과학은 신이 부여한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며, 사법체계도 보편적인 자연법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으로 믿었다. 과학과 법이 인간이 만든 것임이 밝혀지면서, 과학과 법의 불확실성과 모호함도 부각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회를 끌고나가는 원리로서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 과학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법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지금, 과학기술이 새롭게 야기하는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는 어떤 원리에 근거해 그 해법을 모색해야 할까? 이젠 과학기술학(STS) 분야의 고전이 된 이 책에서, 재서너프는 과학기술과 법이 만나고 충돌하는 지점들을 탐구하고, 미래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둘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다. 이 책은 ‘사회’에 관심 있는 과학기술자들은 물론, ‘과학기술 시대’에 법을 공부하려는 법학도와 사회과학도들의 필독서이다. 비록 다소 늦게 번역된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이 이곳의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과학사 및 과학철학)